오랜만에 퍼오기다.  

 

[고성국의 박근혜論]<5>박근혜와 '친박계' 

 

박근혜는 생래적으로 '패도정치'를 경계한다. 권력을 두고 벌이는 측근들간의 암투와 경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도 결국은 측근들간의 암투로 비극적 최후를 맞지 않았던가.

박근혜는 누군가를 중용하고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순간 '패도정치'의 메커니즘이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가 정치권의 상식과는 달리 어떤 경우에도 '좌장',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는 모든 정치인을 여러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대한다. 나의 정치가 있으면 그의 정치가 있을 것이고, 각각의 정치는 존중되어야 한다.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각자의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각자가 지는 것이므로.

박근혜와 다른 정치인들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일을 매개로 하는 공적이고 기능적이고 일시적인 관계다. 정치 자체가 공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그 이상을 넘어서는 순간 '패도정치'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박근혜의 생각인 듯하다.

박근혜의 이 같은 관계 설정 방식은 본능적으로 권력의 독점을 지향하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이고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특히 자신의 선택에 충실한 올인형 정치인인 김무성 같은 승부사에게 박근혜의 일응 무미건조한 공식적 관계맺음은 기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와 김무성의 결별은 어느 정도 예정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무성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드러내는 순간 두 사람은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 지난 2월 '세종시 정국' 당시 친박계 의원(왼쪽 현기환, 오른쪽 구상찬)들의 '엄호'속에 취재진을 피해 국회로 들어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연합

'박근혜 정권'이 나와도 '친박계 정권'은 아닐 것

박근혜는 조직을 믿지 않는다. 조직보다는 대중마음을 믿고 정치적 세보다는 바닥의 민심을 믿는다. 박근혜는 시골장터에서 만난 이름 모를 아주머니들을 믿는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아버지가 죽었을 때 뜨거운 눈물을 같이 흘렸던 저자거리의 장삼이사를 더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는 본질적으로 대중 정치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대중 정치인이다. 이는 박근혜가 겪어온 곡절 많고 굴곡진 정치역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제 2의 천성과 같은 것이다.

박근혜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인생철학으로 생각한다. 그가 청와대를 나와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어려운 시기동안 썼던 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바로 신뢰다. 이는 그만큼 그가 많은 배신을 보고 겪었다는 뜻이고, 배신과 모멸의 참담한 세월을 견뎌냈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겪은 배신은 대중의 배신이 아니었다. 바닥 민심의 배신이 아니었다. 배신은 늘 높은 자리, 조직의 위세를 즐기던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

박근혜에게 친박계는 길을 함께 가는 좋은 동반자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길을 가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같은 길을 가는 한 서로는 존중의 대상이고 '상의'의 상대다. 그러나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하관계는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친박계가 곧 정권의 주체세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친박계 중 여건이 맞는 사람들은 역할을 하겠지만 그저 그 뿐, 더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곧 친박계 정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제기한 문제, 즉 박근혜와 함께 할 사람들의 면면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가 가진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

권력은 다른 사람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강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도하는 것이다. 앞에 것을 권력(power)라 하고 뒤에 것을 영향력(influence)라 한다.

권력(power)은 직접적이고 영향력(influence)은 간접적이다. 권력(power)은 단도직입적이고 영향력(influence)는 우회적이다. 역대 대통령들이나 제왕적 총재의 권력은 '파워'(power)였다.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는 물리력과 정보기관의 동원력이 있었고 정치자금과 정치인에게는 생사여탈권이나 다름없는 공천권을 독점했다. 이들의 권력은 매우 직접적이고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러나 권력(power)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권력을 휘두른 역대 대통령이나 제왕적 총재들의 말로가 비극적이고 허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의 힘은 권력(power)이라기보다는 영향력(influence)에 가깝다. 그는 대통령도 아니고 제왕적 총재도 아니기 때문에 권력(power)을 행사하려야 행사할 권력(power)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대로 수십명의 국회의원들이 움직인다면 그에게 어떤 형태로든 힘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는 이를 영향력(influence)이라 부른다.

영향력(influence)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그가 제시하는 길이 옳은 길이고 이기는 길일 때 영향력(influence)은 커진다. 영향력(influence)을 통한 힘은 언제든 회수될 수 있으므로 힘의 유지를 위해서는 늘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의 합리적 핵심을 움켜쥘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패도가 아니라 왕도로 간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영향력(influence)은 좋은 의미의 권위(authority)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와 친박계의 관계를 주군과 신하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박근혜의 힘이 권력(power)이 아니라 영향력(influence)이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박근혜의 '문제점'을 보는가, 보지 않는가

박근혜가 친박계 의원들과 맺는 관계 양식은 통상적인 권력정치에서 보여지는 계파정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은 계파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집단적 행동, 이벤트, 모임, 회의체계가 없다. 친박계 의원들끼리 자주 만나고,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 의논도 하겠지만, '계파 보스'라 할 박근혜가 이들과 함께 회의를 하거나 어떤 입장을 정해 통보하고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우 예민한 문제, 예컨대 세종시 문제나 미디어법 같은 문제 또는 친박계 의원의 입각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박근혜는 개인 의견을 밝히거나 물어오는 의원들의 질문에 짧게 답하는 정도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친박계 의원 누구라도 박근혜를 만날 수 있고 어떤 문제든 얘기할 수 있으나 최종적 판단과 선택은 철저하게 각자의 몫이다.

박근혜에게는 통상적 의미의 캠프도 없고 계보도 없다. 박근혜는 계보관리를 위해 돈을 쓰지 않으며 그들의 공천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거나 한 두마디 하는 것이 고작이다. 재미있는 것은 친박계 의원들도 박근혜에게 그 이상의 적극적 행동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가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자신의 관심을 표현할 때는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박근혜의 표현은 단순 명쾌해서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다. 경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수성 후보출판기념회에 참석하거나 경쟁자였던 정종복 후보가 청하는 악수를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처럼. 친박계 의원들은 이런 정도의 행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법 절충안을 낼 때나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할 때나 박근혜는 친박계 의원들과 사전에 상의하거나 입장을 조율하지 않았다. 단추만 누르면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역량 있는 전문가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박근혜가 이 문제들과 관련해 적어도 친박계 의원 모두와 직접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친박계 의원들이 박근혜의 이 같은 태도를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박근혜의 생각과 가치동의해서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므로 박근혜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고 또 구체적인 부분에서 약간 이견이 있더라도 큰 방향에서 문제가 없으면 함께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친박계 의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관계가 사실이 아니거나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논박하기 어렵다. 실제로 친박계 의원들은 이런 방식의 의사소통과 행동 통일에서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 생각이 있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박근혜의 생각과 판단을 공유하고 박근혜와 함께 행동하는데 부자연스러움이나 억지스러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친박계 인사개별적 입각 같은 매우 예민한 사안의 경우에도 박근혜는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고 나머지 친박계 의원들도 찬반양론이 있을 경우 대체로 본인의 최종적 선택을 존중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친이계, '느슨한' 친박계 비웃을 때 아니다.

친이계는 친박계의 이 같은 행태를 비웃는다. 제대로 된 회의체계 하나 없는 집단이 무슨 세력이며 계보냐는 비아냥을 보내기도 하고, 모든 의원들이 오로지 박근혜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고 공박하기도 한다. 친이계는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간의 이러한 관계를 소통부재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규정하길 좋아한다. 박근혜는 다른 의원들과 일체의 대화와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며, 한 번 박근혜가 결정하면 친박계는 그걸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박계의 이 같은 행태를 소통부재라 공격하는 것은 다소 작위적인 정치공세로 보인다. 소통부재라기 보다는 소통방식이 다른 것이다. 적어도 친박계 의원들은 이러한 소통방식 즉 일종의 텔레파시 소통이라 할까, 이심전심의 소통 방식에 별로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이 그렇게 느끼는데 그걸 밖에서 아무리 아니라 한들 이들에게 무슨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 것인가.

정치인들에게 회의란 어떤 것일까? 여야 최고위원회의 광경을 보면 회의란 정치인들이 언론을 향해 자기 얘기를 하는 자리지, 열린 마음으로 안건을 토론하고 차이를 해소해가는 통상적 의미의 회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회의건 회의에는 입장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정치권에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치권에서는 회의의 결론이 표 대결로 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설사 표 대결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점검해보고 불리한 쪽이 고집을 꺾는 방식으로 회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계파회의도 그렇고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구성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도 그렇다. 다시 말해 정치권에서는 회의를 통해 순수하게 화쟁적 방식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결정은 최종적으로 힘 있는 사람 또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에 대한 조언과 직언, 충언과 간언의 형태로 정치인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계급장 떼고 토론하는'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의 관계를 회의체계가 없음을 근거로 소통부재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정략적 공세다. 친이계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토론형 회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 않았던가 말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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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국의 박근혜論]<4>박근혜 '불가론'의 허와 실

2007년 경선 당시 박근혜에게는 세 가지의 '불가론'이 있었다.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 그리고 '베일에 싸인 박근혜가 검증과정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 불가론'이 그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새롭게 제기된 '불가론'이 있다면 아마도 "권위적, 독단적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 4불가론은 각각 따로 돌아다니지만 때론 결합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가 그렇게 간단하게 권력을 넘겨주겠느냐', '현직 대통령은 누굴 대통령으로 만들 힘은 없어도 대통령이 못 되게 만들 힘은 있다'는 자못 설득력 있어 보이는 현실론과 결합되어 유포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성 대통령 시기 상조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진영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대목은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이었다. 박근혜가 그 바쁜 와중에도 독일까지 가서 여성 총리 메르켈과 회동을 가진 것도 그렇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가렛 대처를 롤모델로 설정한 것도 그렇다. 성공한 여성 리더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성대통령 불가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각설하고.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은 시대착오적인 데마고그다.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는 호남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만큼이나 그리고 상고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만큼이나 악의적인 선동이다. 그럼에도 '여성대통령 불가론'은 지역에 따라 2012년 대선에서도 상당한 힘을 발휘할지 모른다. 유교적 전통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경북 북부지역 같은 곳 말이다.

그러나 '불가론'의 강도는 이 지역에서조차 매우 약화될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모든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여성 대통령 불가론'을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여성대통령 불가론'은 박근혜 대세론이 취약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을 때 다른 이유들과 결합돼 '박근혜는 안 돼'라는 여론을 만드는 매개변수적 역할을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형성되어 있는 대세론을 꺾을 만큼 위력적인 불가론은 이미 아니다. 8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얼마 전 퇴임한 칠레의 바첼레트 대통령이나 룰라 대통령을 이어 브라질을 이끌 지우마 호세프 새 대통령,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핀란드의 국격을 높이고 있는 할로넨 대통령의 사례를 잠깐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독재자의 딸은 안된다'…안될까?

'독재자의 딸은 안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 또한 그렇게 위력이 클 것 같지 않다. 박근혜가 막 정계에 입문할 무렵에는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 입문 10년이 지난 박근혜를, 그리하여 박정희의 딸이라는 과거의 스토리 못지 않게 박근혜 자신의 스토리를 많이 갖게 된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이 '경제성장 주역의 딸'이라는 또 다른 프레임보다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독재자의 딸은 안 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2009년 1월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은 누구인가'란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는 박정희, 18.3%는 김대중, 7.9%는 노무현을 응답했다. 박정희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50%를 넘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3.4%는 박정희, 25.4%는 김대중, 12.4%는 노무현을 꼽았다.

박정희는 남성, 여성 모두에서 그리고 모든 세대에서 1위로 꼽혔다. 이렇듯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거의 모든 조사에서 박정희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의 절반 가량이 박정희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와 같은 여론 지형에서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기도 하지만 '육영수의 딸'이기도 하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어찌됐든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라도 있지만 육영수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란이 없다. 육영수는 모든 조사에서 바람직한 영부인상으로 꼽히고 있다. 그것도 압도적 1위로. 박근혜가 충청권에서 강한 지지세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충북 옥천이 육영수의 고향이라는 사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박근혜가 세종시 전선으로 영남과 충청을 정치적으로 아울렀다면 박정희와 육영수 또한 영남과 충청을 묶어내고 있다. 참으로 좋은 '가정환경'이자 '출생배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광주 민주화 운동영화를 통해 '역사'로 알게 되는 20~30대가 유권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그야말로 오래 전 역사의 인물이다. '역사'가 된 박정희를 설명할 때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강한 소구력을 갖지만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 박정희'는 설명이 필요하다. 문제는 설명을 해야 할 '역사적 현실'의 '비현실성' 때문에 설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쿠데타'를 영화에서나 접하는 젊은 층에게 5.16 쿠데타와 10.26 까지의 비극적 역사를 체감도 높게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죽은 사람과 싸워 이긴 장사는 없다. 박근혜를 대적하기도 벅찬 박근혜의 경쟁자들이 박정희와 육영수까지 싸움터로 불러내는 무모함을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의 사생활'?

'박근혜의 사생활'이 박근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절반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 2007년 경선에서 나올 얘기는 대부분 다 나왔기 때문이다. '숨겨둔 아이'얘기까지 나왔고 "아이를 데리고 오면 DNA 조사라도 받겠다"는 박근혜의 강경한 대응까지 나왔으므로 더 나올 얘기가 뭐가 있겠는가.

'최태민 목사 관련 논란'도 그 사건 자체가 30년도 더 된 것인데다가 당사자도 세상에 없고 설사 제기된 의혹들이 일부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대규모 권력형 부정부패로 번질 일은 없는, 말하자면 법률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공소시효소멸된 지나가 버린 에피소드가 아닌가 말이다. 그 밖에 육영재단 관련 논란이나 동생 근령 씨와의 불화를 둘러싼 얘기들이 거론 될 수는 있으나 비극적 가족사에 대한 동정심을 자극할 뿐 불가론으로까지 비화될 그런 수준의 문제라 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박근혜의 사생활 관련 논란은 이미 58세에 이른 박근혜의 '여성적 매력'을 환기시키고 동정심을 자극하면 자극했지 그의 이력에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는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뒤늦게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박근혜 비키니' 사진에 대한 대중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박근혜의 롤모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국가 간 정략결혼이 가장 중요한 외교수단이자 집단 안보체제의 보증서로 작용했던 시대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각국 국왕들의 청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는 말로 품격을 유지하면서 담백하게 청혼을 물리쳤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독신생활까지 영국국민들의 사랑을 끌어내는 인간적 요소로 활용할 줄 알았다.

박근혜가 결혼과 독신생활에 대해 어떤 속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나 독신 생활까지 포함한 그의 인생 궤적이 외형상 엘리자베스 1세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약점보다는 강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노년의 엘리자베스 1세가 행한 마지막 의회 연설이 박근혜의 심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전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신께서 나를 여왕으로 만들어 주신데 감사하지만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영광은 백성의 사랑을 받으며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나보다 더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는 이때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이 국정운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네 번째 불가론은 주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친이계로부터 제기되었다. 친박계 인사들의 복당문제나 세종시 문제 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친이계는 '박근혜의 높은 벽'에 번번이 무릎 꿇었다. 그 과정에서 터져나온 불만들이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지금껏 어떤 경우에도 박근혜가 직접 지시하고 줄 세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주위의 의견을 경청하고 결정하되 그 결정을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의 생각을 이심전심으로 따라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친박계의 이런 설명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토론 부재의 친박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황을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크다.

박근혜의 리더십이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의 긴박하고도 각박한 정치 현실이 친박계를 움츠리게 만들었고 방어적으로 만들었으며 그 상황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박근혜의 강한 카리스마와 돌파력이 결과적으로 부각되었다는 것이 사실에 근사한 설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불가론은 '박근혜 불가론'이라기보다는 '박근혜 경쟁력'으로 읽힐 수도 있는 양면적 성격을 갖는다.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란다. 역지사지.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대목이 바로 이런 대목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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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철학'은 존재하는가?

[고성국의 박근혜論]<3> 계파 정치 던지고, '포용'과 정치력 보여야

 

적이 강하면 피하고 적이 약하면 공격한다. 전쟁이나 정치나 공방기본 원리는 다르지 않다. 정치에서는 상대의 약점을 집중공격 하는 것을 '인정머리 없다'거나 '공정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같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기는 정치나 경제나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4대강 사업 등 국민이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박근혜를 압박했다. 이정희 대표가 답변을 요구한 이슈는 4대강 외에 감세정책, 민주주의, 인권문제였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도 "국가적 아젠다고 국민적 관심사인 4대강 사업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주요 아젠다에 대한 입장을 집중적으로 요구받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여ㆍ야 정치권은 주요 아젠다 및 이슈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 또는 '입장 없음'이 박근혜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가치와 주장과 감성은 있지만 체계적인 가치관, 체계적인 비전, 체계적인 정책은 없다는 것이 박근혜가 가장 많이 공격받아 온 대목이고 박근혜 리더십의 최대 약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수첩공주'라는 별칭에도 그런 폄하의 뉘앙스가 묻어있다.

'박근혜 철학'은 담금질을 거쳤는가?

체계적인 가치관과 비전을 갖추지 못하고 단편적인 생각들과 가치들만 있다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몇몇 부분에 집착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숲과 나무를 같이 보는 균형감각과 개방성과 유연성을 갖지 못하고 특정 생각이나 가치에 고집스럽게 집착할 위험성이 크다는 뜻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셀카' ⓒ박근혜

체계화 된 가치관과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들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눈, 코, 입을 따로 예쁘게 그려놓고 그것들을 조합하면 가장 예쁜 얼굴이 될 것 같지만 막상 그렇게 그려놓으면 어딘지 균형이 안 맞거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색하고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런 경우가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들의 모습이다. 매력적인 얼굴은 눈, 코, 입 하나하나도 예쁘지만 각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고 균형이 잡혀 전체적으로 개성과 매력을 풍기는 얼굴이다. 이런 얼굴은 표정이 살아있고 자연스럽다.

박근혜는 자신의 프로필 백문백답에서 이성을 볼 때 어디를 먼저 보느냐는 질문에 "어느 한 곳보다 전체적 느낌을 본다"고 대답한 바 있다. "어느 한 곳보다는 전체적 느낌" 바로 이것이 가치들의 덩어리보다 체계화 된 가치관을 보는 방법이다.

체계화 된 가치관은 가치들을 단순히 정렬시키는 것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가치관은 가치들을 용해해 차원이 다른 '가치 체계'로 재구성할 때 만들어진다. 가치관의 형성과정은 구리주석을 함께 녹여 청동이라는 전혀 새로운 금속을 만들어내는 합금 제조과정과 같다. 물론 청동 속에는 구리도 있고 주석도 있다. 그렇다고 구리나 주석을 청동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가치들의 덩어리와 체계화된 가치관은 이렇게 차원을 달리 한다.

가치들을 녹여 새로운 가치관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논리와 철학의 담금질 과정이다. 이는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색, 그리고 훈련된 논리적 추론에 의해 얻어지는 깨달음과 숙성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젊은 시절 이념적 담금질을 받은 박정희나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김대중은 체계화 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부단히 단련했다. 그러나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 노태우는 말할 것도 없고 김영삼, 노무현 같은 대중 정치인도 체계화 된 가치관을 갖추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향하는 가치는 있었지만 그것을 가치관으로 담금질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점에서는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또한 아직 체계화 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몇몇 가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걸 가치관이라 할 수는 없다. 그가 젊은 날부터 치열한 지적, 논리적 담금질의 과정을 거쳐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박근혜, 포용과 통합의 정치력이 부족하다.

이 같은 약점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지적 담금질을 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화된 가치관으로 무장된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그들의 판단과 조언을 중하게 듣는 것이다.

두 가지 방안 중에는 첫 번째 방안이 무조건 더 좋다. 스스로 담금질을 받아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은 개인의 성숙을 위해서나 최고 지도자의 품격을 위해서나 꼭 필요한 것이다. 사실 후자의 방법도 전자 즉 본인이 가치관을 어느 정도 체계화하고 있을 때 효과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박근혜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사안에 너무 깊이 매몰되는 것이 꼭 바람직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역사, 철학 등 체계화된 가치관 정립을 위한 인문적, 사회과학적 독서와 토론을 폭넓고 깊이 있게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의 스탠포드대학 연설이 의미 있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박근혜는 구체적 정책보다는 외교와 경제 분야에 대한 박근혜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대목은 경제에 대한 박근혜의 가치관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설의 백미라 할만하다. 스탠포드 연설 같은 비전이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도자는 정책 전문성을 넘어서는 비전, 가치관의 선도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두 번째 약점은 포용과 통합의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포용과 통합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 다른 사람의 생각도 진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포용과 통합의 시작이다. 이 같은 겸손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과 고백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자기 고백이야말로 절대자와 인간이 맺는 종교적 관계의 출발점이고 인간과 인간이 맺는 민주적 사회ㆍ정치관계의 시작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위해 몸을 숙이는 예수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희구하는 진정으로 통합적인 리더십, 사랑의 정치인 것이다. 박근혜는 천주교 신자이므로 절대자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겸손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 앞에서의 절대적 겸손이 인간 간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서의 겸손함으로도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겸손을 갖추었으면 그 다음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능동적 행동이 필요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통합은 없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포용은 없다. 강한 자가 먼저 다가가고 강한 자가 먼저 움직인다. 진실로 겸손한 자, 진실로 자신을 열어놓는 자가 먼저 다가가고 먼저 움직인다.

'패도 정치'의 끝자락에 있는 '계파 리더십'을 던질 수 있나?

그동안 박근혜에게서는 이런 능동성, 이런 자신감을 볼 수 없었다. 통합적 리더십을 세를 모으는 정치공학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아무리 다수파를 형성해도 그것이 패도정치적 방식으로 세를 모으는 것인 한 그것을 통합적 리더십이라 하지는 않는다. 박근혜는 과연 '패도 정치'의 끝자락에 있는 계파 리더십을 홀연히 던져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박근혜 리더십의 단점으로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박근혜의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다. 이 문제는 언뜻 박근혜의 약점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의 브레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박근혜의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대선이 2년이나 남은 지금 시점에서 확정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면 그 즉시 수십 명의 인수위원들과 200~300명의 청와대 직원들, 그리고 500~1000여 명의 정부 기관, 산하기관, 각종 주요 위원회의 핵심 인사들을 배치해야 한다. 당선되자마자 임기 5년을 함께 할 최측근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적 수준에서 공개적으로 검증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인물들은 어떠한 검증과정도 없이 대통령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국가를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이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감당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다.

사람을 보면 비전과 정책이 보이고 사람을 보면 행정 스타일이 보이는 법이다. 박근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박근혜 정부를 움직여나갈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결코 개인적인 호기심이 아니다. 유력한 대권 주자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다. 셰도우 캐비넷 수준이건 대선캠프 수준이건 그도 아니면 자문팀 수준이건 박근혜는 언제든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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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경쟁력의 비밀은

 

[고성국의 '박근혜論']<2> 대중성, 타이밍 감각, 화법에 대해

연예인은 대중인기를 먹고 살고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산다. 대중의 지지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는 것이 선출직 정치인의 숙명이다. 대중의 지지는 적극적 지지, 확산성 있는 지지도 있고 소극적 지지, 확산성 없는 지지도 있다. 적극적 지지란 응집력과 충성도가 높다는 뜻이고, 확산성이란 지지자의 대중 전파력이 크다는 뜻이다. 이 두 요소모두 갖춘 정치인은 행복하다. 충성도도 높고 확산성도 크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박근혜 경쟁력의 비밀, '대중 흡입력'

박근혜는 적극적 지지자들은 많지만 확산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지지도가 25%~30%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의 지지자들이 웬만한 정치상황에는 꿈쩍도 않는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충성도 높은 25%~30%의 고정적 지지자들의 존재, 이것이 바로 박근혜 경쟁력의 핵심이고 모든 정치인들이 부러워하는 박근혜 경쟁력의 비밀이다.

정치인은 스킨십에 목숨을 건다. 한 번이라도 손을 잡은 유권자는 절반 이상 지지자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의 손을 전부 잡지는 못한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절대적인 제한이 있어서다. 확산성이 중요한 이유다.

어떤 정치인이건 대중을 지지자로 만들어내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 대권주자반열에 오른 정치인들은 대중흡입력의 다양한 요소, 즉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의 대중 흡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중 흡입력을 매력이라 한다면 박근혜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몇 배 더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하겠다.

대중이 박근혜에게 느끼는 매력은 1차적으로 그의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박근혜는 단아하고 맵시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품위 있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는 스타킹이 '빵꾸나서' 창피했던 경험 같은 에피소드를 약간의 여성적 수줍음에 얹어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소탈한' 화법은 적대적 감정을 갖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여버릴만큼 호소력이 강하다.


▲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시민과 악수하는 박근혜 전 대표 ⓒ뉴시스

싸울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타이밍 감각'

박근혜의 흡입력은 타이밍에 대한 특유의 감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치는 워낙 변화가 많고 유동적이라서 시의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같은 행동, 같은 말에도 충격효과나 파급효과가 극대화되는 결정적 시점이 있다. 박근혜는 이 '결정적 시점'을 포착하는데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디어법 파동 때 절충안을 제시한 시점이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본회의 반대토론을 감행한 시점은 발언의 파급효과가 최고점에 도달한 때이다.

타이밍 감각이 진짜 중요한 때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다. '지금이야말로 싸울 때'라든지 '지금은 타협할 때'와 같은 전략적 선택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타이밍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기도 하는데 이 대목에서 박근혜의 감각은 김영삼, 김대중 같은 대중정치인의 감각에 근접한다.

YS가 절정의 타이밍 감각을 보여준 것은 내각제 각서 파동 때였다. 3당 합당을 하면서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이 내각제 개헌에 합의 했다는 이른바 '내각제 각서'를 민정계가 공개한 직후 YS는 일체의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으로 내려가 칩거 투쟁을 벌였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면 YS는 권력을 위해 물밑거래도 마다않는 정략 정치인으로 매도당했을 것이다. 이 마산 칩거투쟁에서 승리한 YS는 승기를 잡아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일생일대의 승부처로 전환시킨 타이밍과 대세감각은 과연 YS라 할만 했다.

DJ의 타이밍감각은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하고 감행한 정계복귀에서 빛을 발했다. DJ는 대권 4수라는 초유의 승부수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터뜨렸다. 엄청난 비난이 빤히 예상되었음에도 DJ는 밀어붙였고 정계복귀에 성공했다. DJP연합도 DJ의 빛나는 승부감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만전에 만전을 기한 1997년 대선에서 DJ는 선거 직전 DJP연합을 이루어냄으로써 한편으로는 DJ대세론을 확산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일각의 '안티 DJ' 분위기를 우회적 방식으로 해소하는데 성공했다.

박근혜도 정치 초년병 시절 이회창과 결별해 탈당했다 복당한 적이 있다. 승부호흡은 선보였으나 진검승부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셈이다. 이에 비하면 세종시 승부는 제대로 승부를 걸어 끝까지 갔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긴박한 승부호흡은 관전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집중하게 만들고 때로는 응원을 넘어 함께 행동하게 만든다. 박근혜는 승부호흡을 아는 정치인이고, 승부를 할 때의 팽팽한 긴장감을 감당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이것이 박근혜가 대중의 관심을 흡입하는 또 다른 비결이다.

타이밍에는 승부를 할 때의 타이밍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멈출 때의 타이밍도 있다. 8.21 회동은 박근혜가 싸움을 시작할 때의 타이밍 뿐만 아니라 싸움을 멈출 때의 타이밍 감각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8.21 회동 후 전개된 계파구도의 완화와 바닥에서 불기 시작한 '박근혜 대세론', 더 나아가 친이계의 '반 박근혜 분위기 희석' 등은 박근혜가 싸움을 멈출 때의 긍정적 효과를 어떻게 정치적 성과로 수렴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는 세종시 이슈에서 싸움할 때의 타이밍과 일단 싸움이 시작됐을 때 리더가 어떻게 강렬한 투쟁의지를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고 8.21 회동을 통해 싸움을 멈춰야 할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싸움을 멈춘 후 어떻게 상대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안정시켜야 하는지를 알고 있음을 또한 보여주었다.

이렇듯 타이밍 감각은 단순히 시점을 선택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싸울 때와 멈출 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에 걸맞는 행보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의 타이밍 감각이 대중흡입력을 발휘하는 이유도 그에 걸맞는 행보감각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나오는 '압축적 화법'

박근혜가 발휘하는 대중 흡입력의 마지막 요소는 그의 화법이다. 박근혜의 화법은 화려하기 보다는 소박한 쪽이고 자극적이기 보다는 무미건조한 쪽이다. 조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장황하지도 않다. 그의 화법은 압축적이지만 일부러 압축한다기 보다는 꼭 필요한 만큼만 말하는 방식이다.

"대전은요?"(2005년 지방선거 유세 중 커터칼에 '테러'를 당한 후 내놓은 첫 마디)
"참 나쁜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시도에 대해)

이런 말은 의식적으로 압축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홍보전문가들이 머리를 짜낸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말하는 사람이 골똘하게 생각한 끝에 무심결에 나오는 한마디다.

'무심결에' 나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결에 나오는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이 한마디에 농축되어 있는 화자의 진정성이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어법이 압축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의 말에 그의 감성과 정치적 판단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충성도 → 확산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정치는 99% 말로 이루어진다. 군사 권위주의시대에는 정치가 때로 폭력이나 정보기관의 위협과 공작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정치는 정치인들의 말에 의해 이루어진다.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대통령의 주요한 통치 수단도 말이다. 적어도 국민을 상대로 통치를 할 때 대통령은 말아닌 다른 수단에 의존하지 못한다. 공무원들이라면 인사권이라는 수단도 있고 이익집단들에게는 법이라는 수단도 있겠으나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할 때는 말아닌 다른 것에 의존할 수 없다.

정치는 고도의 상징행위다. 정치인의 말은 상징행위의 직접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화법과 어법이 대중적 흡입력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말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상징적 통치행위라는 정치의 본질에 잘 부합하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과 품성이다.

소통은 진정성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데 대중적 흡입력이 있는 화법을 구사할 수 있는 정치인은, 그리하여 말의 진정성을 느끼게 만들 줄 아는 정치인은 소통을 통해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이에 반해 아무리 노력해도 대중의 일체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겉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화법을 구사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에게 소통은 도달할 수 없는 벽처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최근 미니홈피, 블로그에 이어 트위터가 정치적 소통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140자 이내의 짧은 문장과 한 두컷의 사진으로 속도감 있게 소통하는 트위터의 핵심은 감성적 교감이다. 실시간 소통이라는 동시성과 현장성을 주 무기로 하는 트위터에서의 소통은 설사 그 소재하드한 정치라 하더라도 전달 방식은 소프트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미니홈피와 블로그, 트위터를 직접 한다. 당연히 매일 매시간 할 수는 없다. 때로 며칠 동안 못할 때도 있고 하더라도 짧은 인사말 이상을 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도 미니홈피, 블로그, 트위터를 찾는 사람들은 기분나빠하지 않는다. 비록 짧은 인사 글이라도 박근혜가 직접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이 같은 믿음과 기대를 알기 때문에 박근혜는 이 작업 즉, 대중과의 직접적 소통만은 자신이 직접 하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머릿 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정황이 대중으로 하여금 박근혜와 감성적으로 교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스타와 팬 사이에 형성되는 내밀한 공동체 정서 같이. 이것이 박근혜 대중성의 비밀이다. 바로 이것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높은 충성도가 확산성으로 전화할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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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기사화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승리일까.

 


196㎏ 여성, 위 수술·운동 병행해 건강 찾아… "이젠 당당하게 길 물어볼 수 있어"
초고도 비만에 생명 위협까지… 사연 접한 성모병원, 무료 수술

"키 183㎝에 몸무게 196㎏인 여자로 사는 일은 암흑이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이정선(37)씨 얼굴에 그간의 설움이 스쳐가는 듯했다. 몸무게 97㎏으로 다시 태어난 이씨는 수십년 만에 뱃살 밑으로 처음 드러난 발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생명까지 위협받는 초고도 비만 환자인데도 사람들은 그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2008년 8월 이씨 사연이 한 방송을 통해 알려진 뒤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이 '위 우회술'을 해줬다. 소주잔 크기만 하게 자른 위를 소장과 연결해 음식물 섭취와 흡수를 동시에 줄이는 수술이었다.





2008년 7월 당시 196kg이었던 이정선씨. /이정선씨 제공





몸무게 97kg으로 다시 태어난 이정선씨가 활짝 웃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수술 후에는 남의 눈을 피해 공동묘지에 가서 운동을 했다. 운동으로 체중은 서서히 줄었지만 살이  처지기 시작했고, 접히는 곳마다 습진과 물집이 생겨 의자에 앉기조차 고통스러웠다. 이런 사정을 안 서울성모병원은 지난 8일 12시간 동안 배 주위 처진 살 7㎏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줬다. 수술비는 모두 병원이 부담했다.

이씨는 생선 노점을 하던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초등학교 때 덩치가 커서 중학생이라고 오해를 받았던 그는 고등학교 때 이미 몸무게가 100㎏을 넘었다. 조금만 먹어도 질병 수준으로 살이 쪘다. 1992년 고교 졸업 후 4년간 사무실 경리부터 재봉공장 보조 재봉사까지 수백번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 몸으로 여기는 왜 왔느냐'는 냉랭한 눈빛만 돌아왔다. 1996년부터는 사람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텔레마케팅(전화영업)으로 보험과 책을 팔았다. 한 달에 100만~120만원을 벌었다.

이씨는 "나를 버리지 않은 엄마를 위해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며 "외모에 신경 쓸 만큼 삶이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성격까지 나쁘면 아무도 상대 안 해준다'는 생각에 활달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어느새 '예스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1년 어머니 회갑 선물로 62㎡(19평) 아파트를 사드렸지만 어머니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4년 만에 날려버렸다. 어머니는 종교시설에 들어가고 이씨는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긋지긋한 살덩어리들을 떼어 버렸다. 이씨는 "다른 사람이 나한테 신경 안 쓰고 무관심한 게 너무 좋다"며 "17년 만에 백화점에 갔는데 이젠 낯선 사람한테 길도 물어볼 수 있고 버스 타도 미안한 생각이 없어졌다"고 기뻐했다.

"75~80㎏ 정도가 최종 목표예요. 자격증도 따고 직장도 얻어 어머니와 살 집을 다시 마련해야죠. 100㎏짜리 족쇄를 벗어던져서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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