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의 고비>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한다 

 



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 

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고비에는 해골이 많다 

그것은 방황하던 업덩어리들의 잔해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최승호, 시집<고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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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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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리 말로 된 아름다운 성장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정윤과 단이 미루와 명서  

그들은 아픔을 겪고 시대의 강을 건너며 성장했을까.  

단이는 병영에서 죽었고, 미루는 음식을 거부한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죽은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 모두 우리는 성장했을까  

성장이 삶을 온당하게 바라보고, 치우치지 않는 정신적 힘을 지닌 거라면 나는 성장했을까 

성장한 이들이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되어서 우리는 좀 더 행복해졌을까 

많은 물음 앞에서 그냥 서 있다. . 

보고 싶은 얼굴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잘 있는지, 영혼은 무사한지 묻고 싶다.   

 

윤교수가 제자들의 손바닥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모아 놓았을 때 한 편의 시가 되어 울린다. 그 울림을 함께 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 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 

거기엔 별이 있어 .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그대들 별빛들이 그립다고.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밖에는 담지 못하지  --   디킨슨   

 That Love is All There is
- Emily Dickinson -

That Love is all there is,
Is all we know of love;
It is enough, the freight should be
Proportioned to the groove.


 내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이 어른이다. 나는 어른이 못되어 이러고 있나 하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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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내 부하 해 -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과 함께 어린이 시 쓰기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 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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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부하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오늘도 내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머리를 쾅 쥐어박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마음이 뭉클해지는데 엄마인 나는 왜 이렇게 엉터리인지.  

만화책만 읽는 아이에게 만화책 한 권에 동화책 한 권읽기를 약속한다. 이것도 일방적인 약속이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혼내게 된다. 그냥 두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맞는 것인데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면서 부모가 되고, 가르치게 된다. 가끔 무섭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내가 좋다고 해서 아이가 그걸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같이 좋아하기를 바라다가 강제가 되어버릴 때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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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먼저 떠나는 사람들, 그들은 늘 멋대로 떠난다. 32살의 여인이 있다. 7년 전에 남편과 사별했고 3년 전에 재혼했다. “다미오씨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사람이고,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도모코도 저를 잘 따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는 아내와 젖먹이를 버리고 멋대로 죽어버린 당신에게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말을 걸고는 합니다.” 그녀가 ‘멋대로 죽어버린 당신’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슬픔이 맑게 가라앉아 있어 그것을 가벼운 힐난에 실어 말할 수도 있게 된 사람이구나, 그러니 그와 다다미방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어도 이쪽이 힘들어질 일은 없겠구나, 하고.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서커스, 2010)의 도입부다.

내용은 이렇다. 그와 그녀는 꼬맹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가난해서 둘 다 중학교까지만 다녀야 했다. 그런 일에서조차도 “둘이서 작은 방에 들어간 것 같은” 설렘을 느낄 정도로 둘은 정겨웠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은 지 세 달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어쩌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해도 좋을 때의 어느 날에, 남편은 전차의 선로를 걷다가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않고 죽어버린다. 그녀는 그 이후 껍데기처럼 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는 왜 갑자기 죽어버린 것일까. 그 생각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작은 바닷가 마을로 시집을 간다. 그곳에서 어느 날 한 남자가 그날 밤의 남편이 그랬을 법한 뒷모습을 한 채로 걷는 것을 무작정 따라가다가 그녀는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59쪽) 그녀가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옮기지 말자. 그저 이 뒷모습에 도달하기 위해 출발한 소설이라는 것만 말하자. 이 소설에 몇 개의 뒷모습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뒷모습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의 뒷모습이 곧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그래서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고 허둥대는 것이다. 사람의 뒷모습이 대개는 쓸쓸하다면 그건 인생이 늘 얼굴을 찌푸려서인 거겠지.

우리가 흔히 삶의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순간의 표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표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행복한 가족의 어느 가장이 아내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문득 자살을 감행할 수도 있는 게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나. 그냥 보여줄 수밖에, 그 남자의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보여줄 수밖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지.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6.44) <논리-철학 논고>의 후반부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6.522) 이 철학자가 반대할지도 모르겠지만, 문학의 언어만큼은 그 ‘스스로 드러남’의 통로가 된다고 할 수 없을까.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을 품고 있는 소설,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들 중 하나를 고요하게 보여주는 소설. 한 사람의 표정들을 모두 모은다고 그 사람의 얼굴이 되지는 않는다. 한 소설이 건드리는 ‘작은 진실’은 독자적인 것이고, 과학이나 철학이 제시하는 ‘큰 진실’(진리)의 한낱 부분들이 아닐 것이다. 전체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들의 세계이니까 소설이란 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설을 읽으면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진다. 삶의 진실이라는 게 이렇게 미세한 것이구나 싶어 겸손해지고, 내가 아는 건 그 진실의 극히 일부일 뿐이구나 싶어 또 쓸쓸해지는 것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이 아름다운 소설 앞에서 나는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졌다. ‘순수문학’이라는 이상한 명칭이 이런 소설 앞에서는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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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령

 

                                  김 수 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들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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