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 - 강승숙 선생님의 그림책 수업 일기 살아있는 교육 21
강승숙 지음, 노익상 그림 / 보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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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가만  

읽는 소리  

걷는 소리 

웃는 소리  

슬픔도 가만가만   

보고 싶은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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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인디언과 나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하늘의 지붕 위로 새벽이 조용히 밝아올 때면
바람결에 그 목소리를 전하시고
대지는 나에게 고요함을 가르쳐 준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너의 마음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노래를 불러라 헤이 레이 오 헤이
한 줌의 흙일지라도 좋은 것이라면 붙잡으라
아름다움 안에서 걷기를
조상들의 위대한 영이시여,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높은 곳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나는 대지의 끝에 가 보았습니다
태양과 함께 일어나 기도하라
그대는 나무들이 말을 한다는 걸 알았는가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말라
별들이 처음 하늘에 나타났을 때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부자가 되면 나는 행복해지리라
그대가 태어났을 때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잘 살고 싶다
당신들은 내가 무지한 야만인이라고 생각한다
대지와 대지 위에 사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라
대지를 잘 대하라
너를 죽여야만 해서 미안하다, 작은 형제여
그대가 동물들에게 말을 걸면
멕시코시티의 넓은 시장에서
호조니, 호조니, 호조니
한 늙은 체로키족 인디언이 손자에게
우리를 떠받쳐 주는 우리의 어머니 대지에게
우리 인디언들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종교적이었다
나무의 아름다움, 대기의 부드러움, 풀들의 향기가
치피와족 인디언들의 전통에서는
한번은 빅토리아에 갔다가
나는 바람이 자유롭게 부는 대평원에서 태어났다
나의 할아버지 빨간 윗도리는 단순한 가르침을 주었다
우리 인디언들은 동물을 죽이면 남김 없이 먹는다
나를 보라. 나는 가난하고 헐벗었다
우리 인디언이 하는 모든 것이 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대화는 곧바로 시작되거나 급하게 시작되는 법이 없었다
나는 자연의 넓은 영토에서 태어났다

May the warm winds of heaven blow softly
I’m filled with joy when the day dawns quietly
Oh Great Spirit whose voice I hear in the winds
Earth teach me quiet
The Earth is our Mother
So live your life that the fear of death can never enter
Singing hey lay oh hey
Hold on to what is good even if it is a handful of earth
In beauty may I walk
O Great Spirit of my fathers, this is my prayer
Nesika papa klaksta mitlite kopa saghalie
Give us hearts to understand
I have been to the end of the Earth
Rise with the sun to pray
Did you know that trees talk?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When stars first appeared in the sky
Don’t walk behind me
If only I were rich, then I would be happy
When you were born
While living I want to live well
You think I’m an ignorant savage
Treat the Earth and all that dwell thereon
Treat the Earth Well
I am sorry I had to kill thee, Little Brother
If you talk with the animals
At the sprawling market in Mexico City
Hozhoni, hozhoni, hozhoni
An old Cherokee Indian was speaking
We return thanks to our mother, the earth
The Indian was a religious man
The beauty of the trees, the softness of the air
An ancient Chippewa tradition
Once I was in Victoria
I was born upon the prairie
My grandfather Red Jacket offered simple teachings
When we Indians kill meat, we eat it all up
Look at me ─ I am poor and naked
You have noticed that everything an Indian does
Conversation was never begun at once
I was born in Nature’s wide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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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어느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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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 -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이재복의 옛이야기 교육서
이재복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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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밥을 먹고도 힘을 내지 못하고 이러고 있다.  

힘내자. 아니 함께ㅡ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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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으면 죽고 말테니까 [2010.10.15 제831호]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세상의 모든 상처와 억울함을 자기 탓인듯 고뇌하는 임철우의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
 
 
 
 


 
 


 
 


» 이별하는 골짜기/문확과 지성사
 
 
 

27살의 청년 임철우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베드로처럼 친구와의 약속을 세 번 부인하고 죄의식에 못 박힌 채로 상경했을 때, 그는 또 한 번 절망해야 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그를 통곡하게 만들었던 광주의 그 비극이 1982년의 서울에서는 한낱 풍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억울하고 원통해서 보름 동안 자지 못해 광기의 문턱에까지 간 어느 날 그는 신들린 듯 기도를 토해낸다. “하느님. 제가 그날을 소설로 쓰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날 이후로 7년 동안 구상하고 10년 동안 집필한 소설이 <봄날>(문학과지성사·1998) 전 5권이다.

<봄날>이 완간된 직후 발표된 자전적 단편소설 ‘낙서, 길에 대하여’(<문학동네> 1998년 봄호)를 읽고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았다. 이 소설은 지금껏 내가 읽은 것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자기 고백의 하나다. 2005년 이래로 매년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 소설 얘기를 해주었다. 80년 광주를 아는가, 당신들의 스승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들을 짐짓 힐난하면서 말이다. 언젠가는 당황스럽게도 저 소설의 참혹한 고통이 내게로 건너오면서 목이 떨리고 눈물이 고여와 잠시 강의를 멈추어야 했다. 이듬해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내 눈물이 가소로워서 나는 이제 저 소설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의 다른 책을 이후에도 계속 읽어왔지만 나에게 작가 임철우는 저 자전소설 속의 참혹한 간구와 더불어 기억된다. 6년 만에 출간된 임철우의 새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는 어떤가. 외로움을 호소하는 다방 아가씨의 전화를 매몰차게 끊어버린 젊은 역무원 정동수가 그녀가 그 통화 직후 자살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자책하는 이야기, 한 남자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평생 고통받으며 시골 간이역 마을에서 속죄하듯 살아가는 역무원 신씨의 이야기가 잇달아 펼쳐진다. 두 남자의 모습은, 내게 각인돼 있는, 82년 서울의 한 자취방에서 자책하며 통곡하던 청년 임철우의 모습과 겹친다.

이 작가는 변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세상의 모든 억울한 죽음이 자기 탓인 양 자책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몸과 목소리를 빌려준다. 그의 문학은 증언에 헌신하고 해원에 앞장선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세 번째 이야기는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갔다 돌아온 ‘전순례’ 할머니의 삶을 복기한다.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작가는 또 얼마나 고뇌했을까. 앞서 언급한 자전소설에서 작가는 이미 백마역 역사를 매일같이 지키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고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 증언과 해원에도 십수 년이 걸린 셈인가.

이 이야기들이 특유의 서정성과 함께 강물처럼 흘러간다. 작가를 운전자에 비유할 수 있다면, 차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유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운전자가 있고, 차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하는 운전자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 교감하고 연대하기를 바라는 것이 전자의 염원이라면, 이야기라는 장치를 의심해야만 이 세계를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 후자의 전언이다. 전자의 안이함이 답답할 때 후자를 읽고, 후자의 허세가 피곤해질 때 전자를 읽는다. 그러나 임철우의 문학은 이런 느슨한 구분을 민망하게 한다. 그는 유려하면서 또 치열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2010)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동력 중 하나로 ‘역사적 충동’을 들고, 이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라고 규정했다. 우리 시대의 작가들에게서 이런 충동이 희귀해졌다. 그것은 역사학이 할 일 아니냐고? 역사는 세상의 길에서도 흐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도 흐른다. 그 마음의 역사를, 소설가가 아니라면 누가 기록할 것인가. 위악적으로 말하면 평론가는 ‘감동에 저항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울어버려. 울어버려야 해. 안 그러면 너는 죽고 말아.”(50쪽) 이런 울음 같은 임철우의 소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감동적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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