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서정홍 지음, 최수연 사진 / 보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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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구륜이는 여섯 살 때부터 산길을 한 시간 남짓 혼자 걸어서 우리 집에 놀러온 아이입니다. )

 

시인 아저씨!

거기도 눈 와요?

여기는 눈 와요.

 

이웃 마을

일곱 살 구륜이한테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아이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눈처럼

아름다운 겨울 저녁에

구륜이와 나 사이에

하염없이 첫눈이 내립니다.

 

우리는 하염없이 아름다운 눈을 바라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 얼마나 있을까

하염없이 그 순간을 그리워하는 시인 덕에 생각해 본다.

 

봄이 오면

 

상순이네 집 앞에

노란 산수유꽃 피고

슬기네 집 옆에

하얀 목련꽃 피고

산이네 집 낮은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꽃 피고

 

'나도 가만 있으면 안 되지!'

하면서

우리 집 마당에 앵두꽃 피고

 

나도 가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덩달아 든다. 우리는 무슨 꽃을 피워야 하나. 꽃이나 제대로 잘 보자. 발 밑이나 잘 살피자.

이렇게 아름답게 살고 있는 시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절망할 사람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의미있는 일에 땀 흘려 살고 있다면 이미 그가 희망인 것이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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