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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슬하 ㅣ 창비시선 330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사람을 쬐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
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
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사람을 쬐고 있는 그윽한 눈길이 아프다. 그렇게 사람을 쬐고 싶으나 사람이 없다고 엄살 부리고 싶을 때 나는 가짜 같다. 깊이 사람을 쬐 보자. 내 엄살이 사라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