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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한 손 ㅣ 창비시선 297
고영민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평점 :
시인의 말이 정말 시다
언젠가 정약용 선생의 「죽란시사첩」을 본 적이 있다.
매화가 피면 한번 모이고,
참외가 익으면 한번 모이고,
바람이 서늘한 가을이면 연꽃을 보러 서지에 모이고,
큰 눈이 오면 한번 모이고.
우리는 이제 모일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군가 이 시간, 눈 빠알갛게
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나를 흔들어 깨운다는 생각이 든다. <꽃눈이 번져>부분
시인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관계와 사물에 대해 무연한 듯 말한다. 그 말이 공손하다.
공손한 손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