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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ㅣ 창비시선 501
도종환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평점 :
고마운 일 1
목련이 다시 돌아와주어서 고맙다
어머니가 목련을 바라보는 동안
목련 뒤에 해사하게 내린 햇살이
어머니에게도 가득 내리고 있어서 고맙다
두 손을 모으는 동안
하느님이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것은
존재 자체
거기 그헣게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게 얼마나 많은지
잊고 지낼 때가 있다
걸어보려고 이제 막 발을 내딛는 어린 아기
밤이 되면 제일 먼저 우리는 보러 오는 샛별
손짓하면 언제든 달려오는 사랑하는 그대
더 찬연하게 빛나지 않아 서운할 때 있지만
더 갈망이 채워지지 않아 허기질 때 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것은
존재 자체
거기 그렇게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게 얼마나 많은지
3월, 살구나무 꽃이 돌아와 주어서 고마웠다.
4월에는 불두화 꽃이 돌아와서 고마웠고,
지금은 체리세이지가 다시 돌이와 주어서 고맙다.
이제 물매화가 돌아올 것이다.
그럼 고마워서 두 손 모아 인사해야지.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시다. 고맙다.
겨울 산
진정으로 아름다운 산은
겨울에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생의 겨울에도 아름답다
겨울산이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다. 가을산도 여름산도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
진정 아름다운 산은 겨울이 아름답다고 하니 겨울산에 더 가보고 싶어진다.
자기 생의 겨울에도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을 깊이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