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우다 3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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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새밭 한가운데 바위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자란 서어나무, 그 뿌리 아래에 숨겨진 조그만 동굴 안에 부대림과 정두길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었다, 밖은 눈보라가 치고 있었지만 굴속은 불이 없어도 포근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은 지 여러날이 지났다. 보름쯤 지났을 것이라고 두길은 생각했다, 작고 비좁은 굴 속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 있는 자신들이 고치 속의 유층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은 조만간 성충이 되어 날아갈 존재가 아니었다, 더이상 먹지 않기로 결심했으므로 이제 두길은 별로 배고프다는 느낌이 없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위가 몹시 쓰라렸는데 이제는 그 통증마저 사라지고 위가 졸아든 느낌이었다. 배는 등에 가 붙고, 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고통도 욕망도 없는 텅 빈 공허, 그 공허 속ㅇ로 온몸이 삼켜진 듯했다. 

 어둠 속에서 대림의 갸날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길아, 죽을 때 옆에 친구가 있으나 참 좋다이!"

 그의 말소리 속에 가쁜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게 쌕, 쌕, 쌕 끊겨 나오면서 각혈의 비린낵 풍겨왔다, 

 “그래, 우리가 죽으면 이 조그만 굴은 우리 두 사람의 합장묘가 되는 거라.”
 “아아, 그래, 합장묘!”
 “대림아, 이 굴을 우리의 무덤이 아니라 대지의 자궁이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대지의 자궁 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따뜻한 자궁! 아아, 따뜻하고 아늑하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두길은 두 무릎을 안고 가슴팍으로 끌어당겨 자궁 속의 태아처럼 몸을 말았다.
 “대지의 자궁! 멋진 말이네. 역시 시인은 달라.”
 “우리는 죽지만 다시 태어날 거다. 대지의 자궁은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니까.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그러나 어머니 대지는 죽은 자식들을 끌어안을 거여. 땅속 혈맥들이 고동치는 소리가 지금 내 귀에 들려. 대지가 자기의 자궁 안으로 죽은 자식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 낭자한 피와 총성과 비명도, 죽창, 철창에 묻은 살점도 대지는 남김없이 받아들이고 있어. 아, 그리고 마침내 그 자궁에서 새 생명들은 아나 대지 위에 다시 번성할 거여."

  (350p-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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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알리아를 사랑했던 두 친구 정두길과 부대림은 마지막을 함께 했다.  

해방된 땅에서 함께 기뻐하고 새 나라를 함께 만들어거자고 가슴이 부풀었던 청년들은 스러졌다, 

역사의 파도에 스러진 젊은 생명들, 어린 생명들, 늙은 생명들. 

그 비참 속에서, 그 오욕 속애서, 그 슬픔 속에서도 창세는 죽은 목숨으로 살아남아 손자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억하라고 아니 넘어서라고 

기억하고 넘어서야 새로운 세상이라고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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