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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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에 쓴 시 12

함부로 깨우지 마라 우리의 단잠을
함부로 이동시키지 마라 우리의 주거지를
너희는 조용히 너희의 삶을
우리는 조용히 우리의 삶을

누가 그들의 영토를 침범했나?
누가 그들 삶의 방식을 교란시켰나?
누가 그들을 뒤흔들어
불편한 숙주인 인간에게까지 오게 했나?

두꺼운 스모그에 가려졌던 산봉우리들이 눈부신 이마를 드러낸 아침이다.
인간에게 쫒겨났던 거북들이 알을 낳으러 해변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밤을 낮처럼 밝혀온 거짓 밤들의 허약한 육체가 드러났다.
우리가 지녀온 밤의 문양들은 아름다웠나?
서로를 살려왔나?
다른 동물들과 공생했던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자
바이러스의 디아스포라를 만든 장본인인 우리는

작은 인간이어야 마땅한 종이 교만해졌을 때
작은 인간이어야 마땅한 종이 위대해지기를 원할 때
작은 인간이어야 마땅한 종이 탐욕을 제어하지 못할 때
거기가 원죄다.
야생을 포획해 감금하는 인간
다른 존재의 거주지를 서슴없이 파과하는 인간
끔찍한 방식으로 가축을 만들고 사육하는 인간

텅 빈 도심으로 홍학이 산양이 얼룩말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인간보다 먼저 이 별에 거주한 선주민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했나?
우리의 질문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나?
우리ㅡ
다른 존재들을 멸종시키면서 스스로 멸종위기종이 되어가는 우리는


마스크에 쓴 시 10

지구 거주민 인류가 다다른 최상급 진보;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ㅡㅡ
우리 인류는 너무 많이 지구를 망쳐 놓았다.
그리고 그걸 충분히 반성하지 않고 계속 발전이라는 이름의 개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최상급의 진보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묻고 있다.
강력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멸종위기종 인간이 답해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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