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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 김용택 시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55
김용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평점 :
비와 혼자
강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땅에 떨어진 죽은 나뭇가지를
툭툭 분질러 던지며 놀았다
소낙비가 쏟아졌다
커다란 가지 아래 서서
비를 피했다
양쪽 어깨가 젖어
몸의 자세를 이리저리 자꾸 바꾸었다
먼 산에도.
비가 그칠 때까지
비와 혼자였다
방랑
방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무 밑에 가만히 서 있다가
강물을 가만히 바라본 후에
거리를 두고 산을 한 번
넌지시 건너다보고는
방으로 가만히 들어와
조심스럽게 지구 위에 누웠다
기적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아무런 것이 될 때
그때 기쁘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갈 때 편안하다 가까스로 산을 굴려 내려온 돌들이
강물에 몸을 담굴 때 그것은 내 몸에서
물결이 시작되는 기적이었다
지금이 그때다
모든 것은
제때다
해가 그렇고, 달이 그렇고
방금 지나간 바람이,
지금 온 사랑이 그렇다
그럼으로 다 그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살아오면서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진리는 나중의 일이다
운명은 거기 서 있다
지금이다.
시인은 나뭇가지를 던지며 놀기도 하고. 앉아 있다가 서 있다가 지구위에 눕기도 하면서 넌지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시가 되어 기쁘게 하기도 하고 몸에서 물결이 시작되는 기적을 느끼기도 한다.
시인은 지금 제때를 살고 있는 하다. 그래서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 시들이 편안하다
시끄러운 내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