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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 ㅣ 솔시선(솔의 시인) 30
조달곤 지음 / 솔출판사 / 2021년 3월
평점 :
가을
아픈 남자 곁에 아픈 여자가 눕는다
슬픈 여자 곁에 슬픈 남자가 눕는다
가는 가을도 발길을 멈추고
이들 곁에 눕는다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
나를 비운다는 것은
가을 한철 억새꽃이 되어 은빛 물결로 살다가
바람이 된다는 것
바람으로 살다가 바람소리 떠나보내고
다시 고요해진다는 것
한 겨울 빈 가지가 되어
눈 오는 자리를 마런한다는 것
겨울 숲속의 나무와 같은 문장을 쓴다는 것
나늘 비운다는 것은
폐사지 탑 그림자처럼 마른다는 것
신그늘처럼 마른다는 것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이 마른다는 것
내 안의 축축한 죄의 기억을 몰아낸다는 것
내 안의 슬픔과 울음 한 됫박을 덜어낸다는 것
단순해진다는 것
침묵한다는 것
기다림을 받아들인다는 것
나를 비운다는 것은
죽음을 산다는 것
비우고 비워 죽음에 가까이 가는 시인의 말들이 가벼워지고 있는듯하다.
아픔도 슬픔도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