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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한 수
다다 후미아키 지음, 노경아 옮김 / 책들의정원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공중파 방송의 유명 개그프로그램에서 최근까지도 급증하는 사기행각 중 하나인 보이스피싱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코너가 있었다. 이 코너는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는 중국 연변동포 특유의 억양을 섞어가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묘사했고 시청자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반응과 인기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반응은 아마도 보이스피싱 등의 사기술에 노출된 이들이 없는 이들을 찾는 것보다 훨씬 쉬울 정도로 일상에서 다양한 사기 행각이 숱하게 자행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도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언뜻 고령화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지만 이를 좀 더 들여다보면 ‘아차~!’ 싶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별안간 이불 한보따리나 정체불명의 건강식품을 들고 오신 적이 없는가? 아마 대부분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을 것이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그 제품의 구입비이다. 들어보면 말도 안되는 가격인데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가를 지불하고 들여왔으니 말이다. 마치 ‘뭔가 씌운 듯이’, ‘홀린 듯이’ 지갑을 열고난 뒤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분명히 사기임을 깨닫지만 이미 그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노인층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다보니 이런 상황에 처하면 엄청난 경제적 궁핍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 이 쯤되면 사기를 단순히 개인의 순진함으로 인한 피해로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기를 치려는 이들의 행태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일본의 르포기자가 있다. 사기꾼의 실제 수법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위장잠입을 불사하며 저널리스트로서 인정받아 온 그 기자가 사기꾼이 어떤 감언이설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지 패턴을 파악, 분석한 결과물이 바로 <말의 한수>다. 사기꾼을 숱하게 많이 겪었으면서도 얼마나 그 수법이 치밀하고 교묘한지 저자 역시 알면서도 사기를 당할 법한 일이 많았다고 술회한다. 그럴때마다 늘 자신에게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여기에서 빠져 나왔다고 한다.
이 책은 사기꾼들의 사기기법을 분석하였지만 저자는 단순히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의 최종 목적인 ‘상대의 재산을 빼내는 것’을 걷어내고 분석해 보면 비즈니스 측면에서 훌륭한 교섭술이 됨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프로사기꾼들의 화법을 잘 배워서 이를 좋은 방향에서 활용하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뱀의 독이 잘 활용하면 때론 인간에게 좋은 약재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리라.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저자의 발상의 전환, 여기서 시작한다. 이는 바꿔 보면 ‘밴드왜건 효과’, ‘로스 리더의 활용’, ‘듣기 7 : 말하기 3’, ‘피그말리온 효과’, ‘흑백논리’, ‘풋 인 도어 기술’, ‘도박사의 오류’, ‘매킨지 방식의 3’ 등 비즈니스 화법을 이미 사기꾼들이 차용했기 때문으로 인식될수도 있다. 그만큼 사기꾼들의 세치 혀는 순진한 우리에게 논리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27가지의 사기 사례를 단순한 가해자, 피해자가 아닌 사기꾼들의 설득과정을 큰 틀에서 바라보는 노력을 한다면 이 책이 당초 의도한 효과에 부응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모로 치명적이면서도 매력적인 ‘팜므파탈’같은 책을 만나 흥미로웠고 또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동시에 자신을 키우기 위해서는 때론 상대의 수법도 차용하는 것이 최선임을 느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