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
로제 폴 드루아.모니크 아틀랑 지음, 김세은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오늘도 광화문에서는 현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세번째이자 가장 거대한 집회규모(200만 예상)로 들끓어 오르는 정치권력에 대한 분노와 잃어버린 주권은 여전히 국민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들의 분노와 거센 요구는 비단 현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의 권력농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이 헌정질서를 무력화하고 자신의 이권을 위해 불법을 서슴치 않는데서 지금의 나는 물론 앞으로의 우리 후손들이 진정 희망을 가지고 성실하면서 열정을 가진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 절망, 분노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려진 현상이다. 그렇다. 우리에겐 희망이 없는 것이다.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다. 목표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정진해 왔건만 천하디 천한 것들이 부모의 탈법과 인맥을 통해 그 결실을 빼앗아 가 버리고 비웃는다면... ‘돈도 실력이야. 너희 부모들을 원망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들의 조소를 받는다면..... 그 누구라도 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희망이 있기 때문에 허무함에서 탈출하여 그래도 삶은 살아갈만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함으로서 인간의 존엄을 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희망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우린 희망에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의 광화문에서 추위를 이겨내며 촛불을 든 이들은 여전히 희망이 유효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일까?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는 우리에게 있어 희망은 계속할 수 있는지 여부를 인문학사를 통해 살펴보면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 희망에 새로운 도약을 마련하고, 희망을 다시금 논의함으로서 희망에 관한 관심과 진심어린 사유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희망이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었다가 때로는 족쇄가 되었다가 때로는 혼란을 조장하는 억압적 기제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림으로서 인간에게 유해한 온갖 것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을때 마지막으로 갇혀 있었던 희망을 내보냈다는 신화에서 희망은 지금의 희망과 다름을 설명한다. 판도라의 상자 신화에 나오는 희망을 뜻하는 단어인 엘피스의 제대로 된 의미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기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언젠가 악이 엄습할 것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 희망은 이성과 비이성, 위안과 불안, 이로움과 해로움 등의 양면적인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중세에 들어서면서 희망은 철학가등 인문학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성에 기반한 통치를 최고로 평가하는 철학가들에게 희망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빠지게 하고 현재가 아닌 곳에 살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사에서 나타난 희망에 대한 시각과 평가를 소개하는 이 책은 희망을 냉철히 바라보고 기대를 접어야 한다는 의도가 아니다. 희망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인간이 진보하고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끝이 비록 파멸로 이르더라도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심리적 동력을 제공하는데 있어 희망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힘의 원천으로서 희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다시 촛불집회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팍팍한 삶을 핑계로 미래를 바라보기 전에 현재에 함몰되어 왔다. 현재의 삶이 그런대로 버틸만 하면 미래가 어떻게 되든 한숨 돌릴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이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으로 여지없이 헛된 허상임이 드러났다. 철저히 파편화하고 개인화된 삶과 의식의 속에서 그들은 탐욕을 드러내 왔던 것이다.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현재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진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희망이 필요하다.

 

결론이 내려졌다면 저자의 희망을 배우는 법은 진심있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더 희망하기 보다 덜 희망함으로서 희망대로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거나 희망을 이루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우기 보다, 도를 넘는 희망에 맞서 절도 있는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영웅 심리의 정복욕을 버리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막연한 이상을 접고 명확한 표적을 겨냥해야 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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