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죽지 않는다 - 인터넷이 생각을 좀먹는다고 염려하는 이들에게
클라이브 톰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조선시대 당쟁처럼 어이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왕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3년상을 할지 말지 싸우면 현대 사람들 중 누구라도 이해 못할 말다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물론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현안임에는 분명했지만...

지금의 IT혁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과 이로움에 대한 찬반논쟁 역시 후대에서 바라볼 때 이해는 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아닌가라는 평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IT기기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넘어서 인간의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큰 변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몇해 전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간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손안의 세상을 구현한다며 세상에 등장한 아이폰은 순식간의 유선 온라인 사업의 몰락과 모바일 산업의 초고속 성장등 온라인 분야의 혁명을 가져왔고 수많은 기업들의 명운을 갈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부진과 몰락의 기운, 반대로 아이폰의 창시자 애플의 끝을 알 수 없는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손안에 문명의 이기를 갖게 된 현대인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의존도는 폭증하였고 이제는 스마트폰 없는 일상생활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모바일 기기에 노출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하려 들면서 생각하지 않는 빈도가 많아지고 종국에는 디지털 치매에 이를 정도로 점차 퇴보한다는 우려가 나오게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니콜라스 카의 명저는 그러한 현실 우려와 디스토피아적 사회현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문제점을 제기하며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생각은 죽지 않는다>는 바로 니콜라스 카의 대척점에 있는 저서이고 인간은 새로운 문명의 이기 앞에서 나약하게 사그러들거나 종속되기 보다는 새로운 분야로 더욱 변화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점을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통해 증명해 내고 있는 책이다. 저자인 클라이브 톰슨은 하나의 첨단기술이 문명 자체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주장과 근거는 마치 종말론적인 주장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지나친 기우(杞憂)에 불과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새로운 기술을 따져보고, 그것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위험을 인식하고, 해롭다고 판명이 난 툴을 철저히 기피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생각을 고양시키고 우리에게 지적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툴까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첨단기기와 IT산업의 역할이 바로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툴(인간은 호모 루덴스임을 더 강조하는 것일까?)임에는 분명하다. 저자는 이런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과거 사례를 통해서도 니콜라스 카가 제기한 논쟁과 유사한 우려가 수차례 반복되어 왔음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글쓰기, 인쇄술, 전신술 등 당시의 기술혁신이 유명한 지식인의 우려를 자아냈던 점을 소개한다. 글쓰기가 그리스의 웅변술을 파멸시킬 것이라 걱정했던 소크라테스의 지적을 거론하며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소크라테스가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저자는 니콜라스 카의 우려와 달리 인간은 신기술의 등장때마다 기존의 것들을 유지하면서 유용하고 이로운 방향으로 적응해 나갔다고 결론 내린다. 저자에게 인터넷의 등장과 활성화는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갈 기회의 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세계(사유)는 이러한 환경에 맞게 더욱 확장해 나갈 것이고 후대에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현재로서는 어느 주장이 더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합리적인 추론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점은 니콜라스 카의 주장이 이 책으로 인해 의심받거나 용도폐기되지도 않을 것이고 클라이브 톰슨의 주장 역시 헛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폄하되지도 않을 것이다.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부작용 내지는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유의 완성 내지는 확장이 이뤄지기 전인 성장기에 인터넷을 접하게 되는 아동기, 청소년기 세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내심 부족과 정서불안 등의 부작용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또한 인터넷 등 온라인을 구동하는데 필수인 전력 등 에너지의 부족이나 고갈 내지는 천재지변에 따른 원천적 사용불가로 야기될 지도 모를 사유의 공백역시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날로그적 유산을 무조건 구태며 불편한 것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인류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인터넷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깨달을 때 이러한 논쟁에서 한 켠 비켜나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유의 성숙함이 돋보일 것이다. 반면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거나 스스로 저해했을 난관을 극복해 나가며 현재에 도달한 인류의 능력 또한 무시할 순 없을 것이고 인터넷 시대에 인류 역시 그러한 전례를 이어 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굽이굽이 돌아 왔지만 결론은 니콜라스카도 클라이브 톰슨도 완벽하게 맞는 것이 아니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생각은 죽지 않는다>도 모두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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