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종은 결단을 내렸다. 기득권층이자 엘리트 지배계층이 혼인을 통한 인맥과 일부다처제를 통해 자식들을 낳으면서 세력화하여 점차 왕권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그래서 자신의 왕족 또한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첫째 부인 이외의 부인들의 소생은 서얼로서 격을 낮추는 것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인 세종조차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점은 바로 서얼 출신들이 또다른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회 불만세력으로 남음으로서 정치적인 부담이 되었다는 것을...

 

박제가. 우리는 역사교육에서 그를 북학의를 저술하고 청을 통해 선진문물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던 북학파 실학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를 이런 제한된 표현으로 기억하기에는 그가 보여주었던 행적에 묻어 있는 천재성과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기상, 그리고 동시에 서얼이라는 출신의 차별로 인해 겪었던 울분과 세상에 대한 비관적 시각 등에서 넘치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은 실학자 박제가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이다. 단지 청의 문물을 도입하여 조선을 바꾸자는 외침에 주목하기 보다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된 배경, 이덕무, 유득공, 박지원 등 실학자들의 모임인 백탑파들과 함께 했던 그의 청년시절과 정조의 즉위로 시작된 서얼차별 폐지를 통해 중앙정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청의 사신으로 갔던 장년시절과 유배지에서의 고통, 그리고 쓸쓸한 죽음 등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박제가가 조선의 개혁을 <북학의>를 통해 주장했던 점에 대해 그 원인을 신분적 장애, 출세의 한으로 보지 않는다. 대개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겪는 사람, 그것이 한이 된 사람은 매몰되어 서얼제도 철폐와 보상에 천착하게 되는데 그는 차별의 근본적 원인에 주목한다고 진단하였다. 박제가는 조선의 폐쇄적이고 단조로우며 결여된 역동성이 사회구조를 차별과 답답함과 한심함 속으로 밀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마치 조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청의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처럼 느껴지는 당시 지배계층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정도로 과격한 주장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생각은 조선의 농본주의 사회체제를 들여다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세세히 설명해 준다. 말로는 농자지천하대본이라며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억제하였으나 실제로 농민계층의 생산성 향상을 통한 삶의 질 향상에는 철저히 외면함으로서 최소한의 생계만을 유지하도록 내몰아서 잠재적인 지배계층에 대한 위협의 동인을 제거하였다는 점이다.

 

경직된 사회와 지배계층의 쇄국과 폐쇄적 체제는 결국 국가의 쇠락을 불러 온다는 것을 직감한 박제가의 통찰을 주목한 저자는 바로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 현재의 위기와 어려움을 과거의 추억으로 이겨내려는 행태는 국수주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먼저 생각한다면 적극적인 개혁을 통해 활발한 피드백이 이뤄져야 하지만 개혁이 전가의 보도처럼 하나의 정치구호에 그치는 듯 싶어 걱정스러움이 바로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일 것이다.

 

박제가의 주장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자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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