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생계를 위협하는가 - 누가 진보를 죽였는가!
크리스 헤지스 지음, 노정태 옮김 / 프런티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대통령 선거는 보수를 자칭하는 수구 여당 대 자유주의 중도 성향의 민통당(조중동 등 제도권 언론에서는 좌파라 부르지만 얼토당토 않는 주장에 불과하다. 이들의 당령 및 정책을 보면 기본적인 식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을 비롯하여 진보성향을 지닌 각 정당 및 시민단체들이 합심하여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등 뚜렷한 대결양상을 보였지만 노년 세대와 특정지역 유권자들의 몰표로 인해 그 승패가 갈리고 말았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진보 진영의 열패감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은 그 좌절감의 극단적 퍼포먼스였고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민영화 루머는 심리적인 상처가 어떻게 그 불안을 심화시키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곧 진보진영이 실험실의 개구리’(시험관 안에 담가놓은 개구리는 시험관을 불로 달구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결국 삶아지고 만다는 얘기)처럼 대선 패배의 원인 분석에 그치지 않고 진보의 위기로 규정지어야 하는데 실상은 실망의 연속이기에 더 공감하게 되지 않나 싶다.

 

<누가 내 생계를 위협하는가>는 진보가 사라져 버린 미국의 모습을 한 언론인의 눈을 통해 묘사함으로서 진보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하나의 반면교사로서 다가온다.

 

20여 년간 중동 문제를 취재한 저자는 파워 엘리트 집단이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적 확장이 부패 등 각종 부조리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회의 발전을 위해 경종이 되어야 하며 건강한 대안으로서 역할을 해야하는 진보 진영의 상당수가 점차 자본 권력에 교묘하게 포섭되고 직간접적으로 협력함으로써 노동자와 하층민이 더 이상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미국 진보 진영이 국가와 기업 권력에 어떻게 짓밟혀왔는지를, 어떻게 노동자 계급을 배반하고 권력과 손을 잡았는지를 수많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그 극명한 사례는 조지 부시 대통령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네오콘의 작품(?)인 이라크 전쟁이다. 대량살상무기가 이라크에 있기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전쟁에 나섰지만 이라크에 매장된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목적이었음을 진보적 지식인들은 꾸준히 주장했었고 부시 대통령 퇴임 후 실제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그들의 추악한 의도는 하나 둘 씩 드러나게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점을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진보의 색깔을 나타내거나 직접적으로 지향했던 이들이 파워엘리트들에 협력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동조했는데 대해 분노한다.

 

저자는 우리가 공동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주류 엘리트집단의 맞서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저앉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며 다른 사람들, 특히 잘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닥친 불행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충동에도 저항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용산참사를 비롯한 생계형 시위에 방관자적 시각에 머물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에 대한 훌륭한 충고이기도 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차별과 공권력의 투입에 따른 절망, 좌절은 그들만의 불행이 아니라 곧 우리의 불행이 될 것을 옮긴이는 마틴 니묄러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로 비유해 낸다. 나치가 공산당을 덮쳤을 때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며,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또한 침묵하며, 노동조합원들과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침묵을 때 결국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내용의 이 시는 현재의 우리 국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시사점이 크다. 물론 국가권력이 나치처럼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권익을 지키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진보적 운동이 거세된 후의 세상은 빅브라더의 출현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예단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미국사회에서의 진보의 소멸과 이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을 다룬 이 책이 미래의 대한민국사회의 기시감으로 느껴진다면 지나친 엄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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