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경제학 - 폴 새뮤얼슨의 20세기 경제학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린 21세기 경제학 교과서
케이트 레이워스 지음, 홍기빈 옮김 / 학고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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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첫 수업시간. 훗날 내가 결혼할 때 주례를 맡아 주시게 되는 주임교수님은 나를 비롯한 내 동기생들에게 왜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며 앞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우리가 사회에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사회불평등을 시정하는데 크게 기여해 주기를 당부하셨었다. 설레였다. 내가 선택한 전공이 비단 나의 영달을 위한 수단을 떠나 내 주변과 우리의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에...

 

어찌보면 경제학은 태생 자체가 불완전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테리스 파리부스’ (Ceteris Paribus). 경제학과 과학철학 등에서 전제되는 법칙으로, ‘모든 것들이 동일하다면의 의미를 가진 라틴어 문장이다. 경제학 이론의 출발은 바로 이 세테리스 파리부스와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의사결정과 행동을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전제부터 오류가 있다는 것이 실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숱한 비이성적 의사결정과 행동이 야기하는 파국적 결말은 한 국가의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했으며 그 예는 자본주의의 산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로 촉발된 미국 경제위기는 경제이론의 전제를 감안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고?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경제위기로 확대되며 그 빈도가 잦아졌다.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으로 상징되며 현란한 수학공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경제학은 그렇게 갈라파고스화 되어가고 있음을 주류 경제학자들은 깨달아야 했다.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강한 회의감 속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로서 일국의 지도자들을 발아래 둘 정도로 막강한 권위를 자랑하던 경제학자들은 일련의 경제위기와 경제이론을 비웃는 듯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원인 분석도 제 각각이었다. 경제학은 심각한 위기에 노출되었고 철저한 자기반성 속에 새롭게 태어나야 할 운명에 직면했지만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애써 외면했고 기존의 경제학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도넛 경제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저자가 경제학이 스스로 환골탈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주류경제학에 거침없이 가하는 쓴소리를 담은 책이다. 대학 시절 모든 경제학 관련 서적의 레퍼런스이자 경제학계의 태양과도 같았던 폴 새뮤얼슨도 현재 주류경제학을 책임지는 그레고리 멘큐 교수도 새로운 시도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변방의 경제학으로 치부하던 복잡계 경제학, 생태주의 경제학, 행동주의 경제학 등 주류경제학이 분명히 드러낸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연구의 결과들이 다시 조명되어야 하며 이 책의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기존 경제학에 경종을 울림은 물론 새로운 대안을 훌륭히 제시해 냈다.

 

저자가 고안한 것은 도넛 다이어그램, 마치 도넛 모양처럼 생긴 모형을 제시한다. 도넛의 안쪽 공백 부분은 누구에게도 부족해서는 안 되는 삶의 기본 요소인 사회적 기초를 뜻한다고 한다. 주거, 식량, , 위생, 교육과 의료 서비스 등 사회적 지원망과 정보망등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유지해야 하는 하한선이 그것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 평등, 사회적 공평함, 정치적 발언권, 평화와 정의 등이 지켜져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반면 바깥쪽 고리는 생태적인 한계를 보여주는데 이 한계를 넘어설 경우기후 변화와 각종 오염, 생물 다양성 손실 등 지구 생태계의 유지에 치명적인 위기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각각의 한계를 기준으로 이내에서 인간을 위해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며 이를 구현하는 이론이 바로 도넛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주류경제학에서 나오는 각종 개념을 훌륭하게 치환해 낸다. 경제순환모델은 사회 안, 또 자연 안에 포함되어 태양을 동력으로 돌아가는 경제 그림을 제시한다. 이 책은 150여년 동안 우리가 맹신해온 경제학에 심각한 오류와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개선의 의지가 없는 오만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권위의식과 무책임함을 강하게 비판한다.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 극도의 빈부격차,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파괴 등 당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더이상 상아탑 안에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각인시킨다.

 

성장에만 집착해 온 자본주의 경제와 이론적 바탕이 되어 준 주류경제학의 폐해를 해결해 줄 방향을 이 책이 제시해 주는 것일까? 앞으로 많은 시행착오가 도사리고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은 그 출발선에서 많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며 훌륭한 등대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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