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것들의 낮


l 민음의 시 216

 

 

이장욱 (시인, 소설가) 

 


: 어떤 시인은 세계 내에 견고한 집을 지으려 하고, 어떤 시인은 세계의 옥타브 밖으로 나아가려 한다. 유계영은 물론 후자 쪽이다. 영혼의 패턴이나 생각의 알고리즘에서 일탈하는 문장들, 섬세한 불확정성을 통해 진실에 닿으려는 행간들……

하지만 여기까지만 말하면 되는 것일까? 그런 시들은 이미 충분히 많지 않은가? 이런 질문과 함께 머뭇거린다면, 우리는 유계영의 시를 아직 덜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속이 보이는 심해어처럼 유연한 문장들을 덜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스타카토 풍의 불안과 공포를,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는 건조한 밤을, 입체파 회화처럼 단절되면서 동시에 연결되는 몸과 얼굴 들을, 아직 덜 살아 낸 것인지도 모른다. 특유의 미니멀한 호흡 속에서, 세계가 팽창하기 시작한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 참으로 씩씩하게, 간단히는 죽지 않겠다는 태도로, 유계영의 시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로 간다. 그때부터 서서히, 그러나 점점 세게, 쉬이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과 섞이기 시작하는 우리를 두고 그 누구도 ‘가짜[模型]’라며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시를 따르는 우리의 제스처가 인공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무엇으로도 가리지 않고 타자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세계를 향해 순진한 얼굴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생각을 전파한다. “다 할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좋다”라고 말하는 자기 긍정의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의문과 불신에서 비롯된다. 의문과 불신에 대처하는 시인의 언어는 되레 당당하다. 유계영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계의 “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내리려”는 태도로 시를 쓴다.


피의 꽃잎들


l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9

『피의 꽃잎들』은 독재 정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작가를 투옥되게 한 문제작이다. 1977년, 식민주의자들과 결탁한 신식민주의자들의 문제를 파헤친 이 작품을 발표한 후 당시 부통령이자 1982년부터는 대통령이 되어 이십 년 동안 장기 집권한 대니얼 아랍 모이의 분노를 사고 투옥되었던 것이다. 투옥 가능성을 감수하고 써 내려간 『피의 꽃잎들』은 자본주의와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농락당하는 농민과 지식인의 처절한 삶을 기록하고, 식민 지배자였던 백인 세력과 야합하여 민중을 배신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기회주의자들을 고발한다. 작가란 “마음의 의사요, 공동체의 영혼”이라 규정했던 응구기이기에 이 작품 역시 고통받는 민중을 대변하면서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는 이 짧은 소설에서 나이든다는 것(이는 곧 육체가 시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과 죽어간다는 것(나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죽는 것과 무작위로 죽는 것 둘 모두를 포함한다),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비극을 집요하게 조명한다.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음을 알면서도 정말 자신에게 그때가 닥칠 때까지 철저히 외면하게 되는 두 가지가 바로 노년의 삶, 그리고 죽음이다.


 

 

 

 

 

 

 

난중일기


l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21

단아하고 진중한 성격의 이순신은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했고 매사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리고 조선 수군 장수로서 자신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또 조선을 지킬 수 있었다.
이순신 역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꽃의 아름다움을 두 눈에 담는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었고, 공정하지 못한 처사에 분개하며 자신을 모함하는 이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또한 전쟁터에서 가족을 그리며 남몰래 눈물짓고, 달빛 아래 잠 못 이루고 번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이 모든 내면의 감정을 일기에 적었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


l 스토리콜렉터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주인공과 범인의 대결이라는 정통 스릴러 구조에 충실하다. 병으로 인해 몸이 부서져가는 주인공과 전쟁으로 인해 정신이 부서져버린 범인,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일인 주인공과 마음을 파괴하려는 범인 사이의 대결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쪽은 범인이다. 그는 말만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고, 그 어떤 문도 열고 들어갈 수 있지만,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는,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악당이다. 그는 악몽에 나올 수 있는 최악의 괴물이고,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고통받은 불행한 영혼이다. 그는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미워하기는 힘들고,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공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범죄소설 사상 가장 강렬하고 입체적인 범인 중 하나다. 스티븐 킹에게서 “희생자들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만큼 설득력 있는 악마”라는 찬사를 얻어낸 이 범인에게는 모델이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전화 통화만으로 수백 명의 여자들을 협박하고 조종했던 ‘피터 도넬리’라는 인물이다. 이 사실을 알고 책을 읽는다면 소설 속 범인이 저지르는 일들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데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고양이

- 스파이 고양이, 형광 물고기가 펼치는 생명공학의 신세계

과학 저널리스트 에밀리 앤더스(Emliy Anthes)의 신작 《프랑켄슈타인의 고양이(Frankenstein's Cat)》는 애완동물 문제를 포함해 실험실 페트리 접시 위에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올려놓고 있는 생명공학의 현주소를 파헤친다. 애완용 형광 물고기부터 치료용 단백질을 생산해 내는 염소, 1960년대 실행되었던 스파이 고양이 ‘어쿠스틱 키티’ 작전, 원격으로 조종하는 로봇 벌레, 멸종동물을 복원하고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명공학의 빛과 그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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