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l 창비세계문학 43
18세기 중반 황제 참칭자 뿌가초프가 일으킨 농민 봉기를 배경으로 귀족 출신 장교 그리뇨프와 대위의 딸 마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역사소설에서 빼어난 전범을 보였음은 물론이고 역사소설의 경계를 넘어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문제들을 담은 걸작으로서, 러시아 근대소설의 원형으로 오늘날까지 거듭 되읽히고 있다.
채식주의자의 식탁
l 문학과지성 시인선 469
삶의 황폐한 풍경을 마치 사진을 찍어내듯 자세하게 묘사하는 기법은 이기성 시인이 오래도록 추구해온 시작(詩作) 방식이다. 동시에 삶에 대한 ‘사회적 예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과도한 격정에 시를 넘기지 않는, 시대를 앓되 자신의 성량과 창법의 개성을 함부로 하지 않는, 분노와 슬픔을 지니되 단정함을 유지하는 자세’(시인 김사인)가 시인이 오래 유지해온 태도다. 시인은 1998년 『문학과사회』에 「새점을 치는 노인」 외 세 편의 시로 등단했던 당시부터 ‘삶의 폐허성을 철저한 세밀 묘사로 밀고 나가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시인’(문학평론가 정과리)이라고 평가받았다. 이후 2004년 출간한 첫번째 시집 『불쑥 내민 손』에서 시인은 죽음과 부패로 얼룩진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며 일상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불편한 균열, 고독함과 비루함 등을 깨닫는 아픈 각성을 포착해냈다. 객관적 세계가 시선의 주관적 ‘왜곡’을 통해 묘사와 진술이 뒤섞인 채로 특유의 (반)풍경으로 드러났던 이기성식의 표현법은 두번째 시집 『타일의 모든 것』에서 더욱 발전되어 잿빛의 현실을 대면하는 ‘불편한 열정’과 이런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는 ‘무모한 용기’ 사이에서 적절한 원근법을 확보하기도 했다.
올해로 등단 17년차를 맞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좀더 원숙한 시선으로 파편적이고 익명화된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 시선 안에서 결핍의 영토를 떠도는 우울과 슬픔, 비애와 무기력 등의 감정이 구조화된다. 하지만 “후회를 알고 무한한 슬픔을 알고 슬픔의 글자를 쓸 줄”(「스틸 라이프」, p. 61) 아는 자기 이해와 실천을 통해 허무의 나락에만 머무르지 않고 부패된 것에 ‘말’과 ‘시’의 생명을 되먹임으로써 이기성은 새로운 시적 도약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복종
우엘벡만의 탁월한 통찰로 그려낸,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디스토피아
『복종』은 2022년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프랑스 사회를 그려 보이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프랑스 양대 정당인 대중운동연합과 사회당이 패배를 하고,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과 이슬람 정당인 이슬람박애당 대표가 결선투표에 진출한다. 극우 정권에 대한 위기감에서 좌파와 우파 정당들이 이슬람 정당과 연합하여 프랑스 사상 초유의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프랑스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고, 공립학교가 이슬람 학교로 바뀌면서 교수들이 개종을 하고, 여학생들은 베일을 쓰게 된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면서 여성들은 점차 가정에 편입되고 여성 노동력의 제한은 곧 실업률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프랑스 외곽의 이민자 문제도 이민자 출신인 온건한 무슬림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러나 소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오히려 프랑수아라는 화자의 삶과 세계관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소설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를 전공한 대학교수 프랑수아는 삶에 환멸을 느끼는 우울하고 허무주의적인 인물로 지극히 우엘벡적인 등장인물이다. 소설은 이슬람 대학이 된 소르본 대학 교수 프랑수아의 삶의 궤적을 좇으며, 한 사회를 잠식해가는 이슬람과, 시대의 변화에 죽은듯이 복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섬뜩하게 서술한다.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l 민음의 시 211
현실의 질서와 뚜렷이 변별되는 시적 상황을 제시하곤 했던 이전과 달리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한층 모호한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의 내부에 구멍, 즉 공백이라는 사건을 기입하는 장면들을 보여 주곤 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일상/현실과 다른 층위의 초현실을 구성하지 않고 현실과 초현실의 불투명한 경계를 최대한으로 밀고 나가는 전략의 결과처럼 보인다. 재생산의 문학이 재현하는 현실과 질서의 공리계에 대항/저항하면서도 그 세계의 바깥을 선험적으로 가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시집에는 전작 『오렌지 기하학』에서 보여 주었던 파격적인 해체나 실험이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기석의 시는 초현실적인 긴장감으로 충만하여, 저항과 유희, 우연과 필연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
기예르모 델 토로는 어떻게 모든 작품에서 고유한 특징이 나타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은 일관적입니다. 나는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모든 영화로 구성된 단 한 편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내게 그 한 편의 영화는 블리크 하우스와도 같아요. 나는 하나씩 하나씩 방을 만들어나가고 있으니, 관객은 그 집을 한눈에 전체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135쪽)라고 말한다.
어반 스케치 핸드북 : 건물과 도시풍경
건물들과 도시들을 그리는데 필요한 주요 요소들이 담겨 있다. 실력과 상관없이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는 팁들이 제시되어 있다. 전세계 각국의 어반 스케처들의 작품들과 코멘트들도 담겨 있어 작은 핸드북을 통해 여러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당신도 어반 스케처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 책은 어반 스케처들이 많이 사용하는 몰스킨 스케치북의 판형과 형태에 유사하게 제작되었다. 어반 스케치를 할 때 스케치북과 함께 가지고 다니면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 기이하거나 별나거나 지혜로운 괴짜들의 한살이
나쁜 생물은 없다, 다만 별난 생물이 있을 뿐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여러 특별한 생명들 이야기
책에는 여러 다양하고 흥미로운 생물들이 소개되는 한편, 우리의 기존 상식을 뒤집거나, 잘못된 상식을 깨트리거나, 혹은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식충식물이라 하면 우리는 식물이 벌레를 잡아서 영양분을 삼는다고 막연히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식충식물은 엄밀히 따지면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식충식물도 광합성을 하지만 부족한 영양분의 일부를 곤충을 통해 보충할 따름이다. 식충식물이라고 벌레를 잡는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네펜테스의 한 종류는 작은 포유동물인 산지나무두더지나 쥐와 공생하기도 한다. 이들이 네펜테스 뚜껑에 생성되는 단물을 핥아 먹는 사이 그 아래 주전자 모양을 닮은 포충엽에 배설물을 떨어뜨리면 이것을 양분으로 삼는 것이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 민간인 최초, DMZ 248km 탐사의 기록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를 민간인 최초로 전 구간 248킬로미터를 직접 종주하며 기록했다. 저자는 녹색연합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가졌던 생태적 감수성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한반도 생태계의 횡축인 비무장지대를 직접 걸어서 탐사했다. 그간 부분적으로 비무장지대를 탐사해 기록한 경우는 있었지만, 비무장지대 전 구간을 민간인 신분으로 군의 협조를 받아 종주한 경우는 이 기록이 처음이었다. 비무장지대는 지난 60여 년간 한 번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물 다양성과 전 세계 냉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서부전선에서 중부전선을 거쳐 동해안에 이르는 동부전선까지 비무장지대의 희귀한 자연환경과 다양한 생물,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 얽힌 역사적 에피소드와 군생활의 애환까지 그 세세한 민낯을 마주한다. 저자의 열정과 염원이 오롯이 묻어나는 이 기록을 통해 우리가 왜 비무장지대를 보존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