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

윤의섭 시인은 사랑의 상처를 가장 근원적인 상상적 질서에 대한 열망으로 바꾸어 내면서 그 아픈 시간들을 선명하게 증언한다. 시인에게 ‘사랑’은 불모의 형식으로 생을 파악하게 하는 비극성의 시선과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열망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구체적 장소가 된다. 가파르고 절실한 몸의 욕망이 그의 시편들을 견고하게 만드는 요인인 셈이다. 그만큼 윤의섭 시에서 ‘사랑’은 그가 평생 떨칠 수 없는 존재론적, 관계론적 욕망의 한 형식으로 작용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잠잠할 때도 있었다
 잠시나마 행복했었다
 나는
 세상이 숨죽이고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멀리서 고해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더 멀리서 파도 같은 신음이 들린다
 한 사람만 빼고 비구름은 그 모두를 몰고 온다

-「비가 오기 전에」에서

 

게걸음으로

독일 문단에서 금기시되었던 피란선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을 다루어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던 문제작, 『게걸음으로』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다시 출간된다. 1945년 1월, 독일 피란민 9000여 명을 태우고 항해 중이던 구스틀로프호는 러시아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세 발을 맞고 침몰한다. 선장 넷을 비롯해 1000명 남짓만이 살아남은 이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었다.
독일 문단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는 귄터 그라스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다루어 온 작가다. ‘구스틀로프 호의 침몰’은 신나치주의 확산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사건이었다. 귄터 그라스는 정치적 함의나 해석에서 살짝 비켜서서 ‘게걸음’과 같은 방식으로, 옆으로 걸으면서 느릿느릿하게, 머뭇거리는 듯하지만 이 사건의 모든 면을 살펴보며 나아간다.

 

 

 

벚꽃, 다시 벚꽃

엄밀히 말해 ‘연작소설’이라고 이 작품을 소개한 바 있는 작가는 소설 전체의 뼈대가 되는 네 편의 이야기 속에 천태만상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았다. 특히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결말구조와는 차별된 구성이 눈에 띈다. 이는 작가가 악인에게조차 연민을 갖고 그가 끝내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여주며 주인공 또한 사건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세심하게 드러내기 때문인데, 이는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주요 특징이다.

 

 

 

 

 

 

알마의 숲

한 소년의 자살시도 이후 도착하게 된 어느 ‘숲’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우리는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을 건네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환상적인 공간인 알마의 ‘숲’ 안에 부재와 상실에 길들여진 한 소년이 놓임으로써 무너져버렸던 소년의 삶의 회복 과정을 몽환적인 이미지와 함께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안보윤의 한 마디

기우뚱한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서툶에 대해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밧줄과 주먹밥을 움켜쥐고 산에 오르는 누군가를 다만 응시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무엇이었든 진심이었다.

올빼미가 말하길
후룻 훗.

이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2015년 봄

 

러시아의 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소개되는 액자식 구성으로 된 이 작품은 작가가 이야기 속 인물들과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주제들을 여러 가지 신비한 이야기와 함께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을 길고 긴 러시아의 밤을 닮은 철학의 밤으로 흥미진진하게 안내한다.
이 책에는 예술뿐만 아니라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계몽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도 거듭하고 있다. 파우스트가 친구들에게 전하는 ‘이름 없는 도시’라는 이야기는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인류의 미래를 경고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이다.
저자의 시각이 무조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를 바라보는 통일적인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저자는 새로운 세기를 책임질 수 있는 시각의 전환을 주장한다.

어제의 신

이번 소설집의 출발점은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이다. 한 시골 의사의 비밀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역시 직접 각본을 집필해 최우수 각본상을 비롯 일본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및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고, 키네마 준포가 선정한 그해의 일본영화 1위에 오르며 평단과 관객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내에 표현해야 하는 영화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만들어낸 세계 중 빙산의 일각”임에 아쉬움을 느낀 니시카와 미와는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러 에피소드와 삶의 면면을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했고, 그것들을 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엮어낸 것이 이 책이다. 영화와는 또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이 소설집은 제141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라 아사다 지로, 미야베 미유키 등 심사위원들의 호평 속에 소설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서점의 다이아나

어린 시절 동화책을 계기로 맺어진 두 소녀의 우정을 통해 유년 시절 소녀들의 가치관 형성과 감성에 영향을 끼친 문학 작품에 대한 동경과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한 사람의 성인 여성으로 성장하기 위해 겪는 각기 다른 시련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진정한 자아 독립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파리 디자인 산책

《파리 디자인 산책》은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예술 교육, 디자이너 등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며 파리와 파리지엥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파리지엥들은 상품, 건축물, 거리는 물론이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문화와 전통까지도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고급한 식사 문화나 자유로운 예술 교육 등 자신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방법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파리에서는 모든 것이 디자인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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