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먼 훗날 기쁨이 될” 순정하고 아름다운 시편들
시인은 서정시의 정통성을 오롯이 이어받으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된 언어감각과 독특한 시법으로 서정시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나의 폐는 폐옥이지만 미미하게 새날의 냄새가 있”(「외딴집」)다는 삶의 감각으로 시인은 “조용한 때에 샘이 솟는 곳에 앉아”(「귀휴(歸休)」) “이 조용한 칸에” 맑고 투명한 언어와 “잘 생략된 문장”(「어느 겨울 오전에」)을 갈고 다듬어 “꽝꽝 얼어붙은 세계”를 밝히는 “한동이의 빛”(「겨울달」)과 같은 시를 쓴다. “나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다네”(「여행자의 노래」)라고 노래하거나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나는 내가 좋다」)고 말하는 순정한 마음이 깃든 이 아름다운 시편들은 “먼 훗날 기쁨이 될 기쁨의 시”(소설가 김연수, 추천사)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서루조당 파효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의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가 바라보는 책에 대한 이야기.
‘교고쿠 나쓰히코’는 이 작품 <서루조당 파효>에서 책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이야기 속에 내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참으로 묘하다. ‘책’이라는 것은 쓴 사람의 죽은 영혼이며, 그 책이 있는 책방은 죽은 영혼이 모여 있는 묘지로 비유하고 있다. 또한 책의 의미나 사상은 글로 표현된 유령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그 글을 읽고 거기에서 무엇을 찾아낼지 어떤 유령을 볼지는 독자에게 달려있다고 설파한다. 그런 죽은 영혼을, 그 책을 원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찾아 읽게 하여 그 영혼을 살려내는 것이 서점과 그 관계자들의 일이라고 설명한다.
암실 이야기
노벨 문학상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귄터 그라스. 그가 2006년 뼈아픈 자기 고백을 담은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발표한 후, 다시 한 번 '성공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써 내려간 실험적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를 민음사에서 출간한다. 유명한 사진사인 마리가 이제는 성인이 된 자신의 여덟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과 그들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게 한다는 설정으로, 마리는 귄터 그라스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라스가 꾸며 낸 이야기 형태를 취하지만 작품 속 기억과 인물은 그라스의 실제 경험과 오버랩 된다. 아이들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 그 자신의 삶을 두서없이,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
그의 동화는 소설보다도 진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표면적인 이야기 이면에 또 다른 의미 차원을 지니고 있다. <페어리 테일>이라는 이름 그대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에서는 조각상이 살아 숨 쉬고, 폭죽들끼리는 논쟁을 벌이며,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갈등을 빚는 등 모든 것이 생동한다. 와일드는 이 속에 온갖 세상 문제들을 끌어다 입힌다. 사실적으로 다루기에 너무 무거운 주제들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동화를 택한 것이다.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나는 유독 고양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자존심도 세고, 한곳에 매여 있기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꼬맹이 믹스 ─ 참, 믹스는 내 아들 막스가 ‘뮌헨 동물 보호 단체’에서 입양해 온 고양이다 ─ 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새끼 고양이가 어쩌면 그리도 의젓하고 당당한지 깜짝 놀랐다. 믹스는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 […] 녀석을 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묻곤 했다. 「지금 뭘 생각하니, 믹스?」 물론 녀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내 물음에 믹스가 어떤 대답을 했을까, 다시 말해 녀석의 침묵이 무슨 뜻일까를 상상하면서 쓴 글이다.”
사진가의 작업 노트
박물관에 전시한 사진이든 사진가의 웹사이트에 게시한 사진이든 모든 사진은 사진 자체만으로 스토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간혹 창작 과정 뒤에 숨은 스토리가 그 사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각 사진을 탄생시킨 아이디어와 컨셉트, 그리고 기술적 요소를 거쳐 최종 이미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내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로 지켜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과 함께여서 얼마나 기쁜지 사실 우리는 자주 잊는다. 생각지도 않은 사건 사고를 마주할 때, 혹은 누군가의 불행은 목격할 때,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별다를 것 없지만 안정적인 내 하루가 다행이다 싶다. 이 책은 우리가 가치 없다고 느낀 관계, 초라하다고 느낀 시절, 번 아웃이 되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만 싶은 우리네 일상이 얼마나 의미 있는 하루인지를 그림을 보며 일깨워준다. 그림과 함께 이 책의 글을 따라가 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읊조리게 된다. “누구의 삶도 부러워하지 말 것, 그리고 내 삶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
사진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사진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모습을 담는 데도 최적의 매체였다. 보도 사진작가들은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전쟁터, 분쟁지역, 재난지역 등에서 활동하며 언론에 사진을 제공해 실상을 전했다. 사진작가 닉 우트는 베트남전쟁 당시 총을 든 군인을 피해 울며 도망치는 벌거벗은 베트남 아이 사진을 AP통신에 제공했고, 이 사진은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대표 사진으로 자리매김했다. 루이스 하인은 '방적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를 촬영해 미국의 아동노동이 근절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85년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의 모습을 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은 수천만 명에게 영향을 미쳐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의 교육 자금을 마련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사진 한 장이 주는 힘을 알았던 작가들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사진에 담았지만, 이런 사진이 주는 양면성은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부정적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단 한 장의 이미지로 뜻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문학여행
소설 자체가 갖는 고유한 성질은 역사로 환원될 수 없다. 환원되지 않는 소중한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각하는 것이 소설이 가진 중요한 가치이다.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행위와 사고를 중시하기 때문에, 소설은 때로 역사보다 더 생생한 시대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문학을 통한 역사의 이해는 감동을 통한 과거의 이해이다. 소설 읽기는 시대 흐름에 대한 개괄적 이해가 아닌, 시간 아래서 숨 쉬고 살아간 개인들의 체온을 느끼는 작업이다. 승리자들에 대한 관심이 아닌 실패자들에 대한 관심, 화해가 아닌 갈등에 대한 관심이다. 또, 소설 읽기는 시간의 무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나의 유럽 나의 편력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저자 이광주가 몰두해온 것은 괴테, 발레리, 토마스 만 등의 문학과 하위징아, 부르크하르트 등을 비롯한 유럽의 지성사 · 문화사 전반이다. 특히 그를 매혹한 것은 유럽의 지성사를 관통하는 ‘교양’의 전통 그리고 역사의 빛나는 페이지를 장식한 숱한 ‘교양인’들이었다.
이광주가 최근 20여 년 동안 천착해온 주제는 유럽의 살롱과 카페의 문화사, 차와 커피 문화 그리고 책 문화다. <교양의 탄생>(2009), <동과 서의 차 이야기>(2002),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2001), <아름다운 책 이야기>(개정판 2014) 등은 그의 오랜 탐독이 맺은 결실이었다. 이번에 펴낸 <담론의 탄생: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 그 자유로운 풍경>은 그간 이광주를 사로잡은 유럽의 살롱과 카페 문화라는 친숙한 주제를 그 속에서 꽃핀 자유로운 담론문화의 전통을 중심으로 풀어냈다. 지금까지 출간한 여러 책을 아우르는 총결산이다.
몽테뉴의 <수상록>, 아벨라르의 <서간집>,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모두 이광주에게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최상의 놀이를 베풀어”주고 “긴 암흑의 시대에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읊조린다. “누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무심히 나에게 베풀어줄까.”
조선의 매화시를 읽다
사군자四君子, 즉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한 매난국죽을 이야기할 때 매화가 가장 첫 번째 순서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른 봄의 추위를 이겨내고 밝은 색의 꽃을 제일 먼저 터뜨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새해가 밝고 아직 추운 기운이 감도는 땅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를 보며 사대부들은 차오르는 시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그들의 매화 사랑은 고전 문집을 살짝만 들춰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한국 한시와 산문이 지닌 아름다움에 주안점을 두고 매화를 애호한 문인들의 시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흐름과 특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자연의 배신
저자는 '공존'이 아닌 '생존'을 이야기한다. 사실 자연은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가 꾸며낸 거짓된 환상이 우리를 배신했을 뿐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찾아 오랜 시간을 헤맨 인류에게, 우리 손으로 자연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자부심'이라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생쥐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대자연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찾아야 할 진정한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가 동물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이언스 칵테일
최강신 (이화여자대학교 스크랜튼대학 교수)
: 추리소설을 보면, 모두가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설명이라도 탐정이 현장에 가서 일일이 검증해보고 절묘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밝힌다. 보는 우리들은 놀랍고 재밌지만, 귀찮음을 무릅쓰는 성실함과 오랜 기간 갈고 닦은 전문가만의 날카로움이 없으면 문제 해결은 없다. 강석기의 과학카페 시리즈를 재미있게 술술 읽으면서도 놀라고 감사하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