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종합 리스트.] 

 

김점용의 두번째 시집 『메롱메롱 은주』가 출간되었다. 표층보다는 심층, 양지보다는 음지의 영역을 시적 언어로 번역해 보여주고자 하는 시인의 내적 지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보는 '오늘'은 내 마음의 주인이 사라진 시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시대이고, 신(神)이 사라진 시대이다. 시인이 아무리 실체를 찾아가고자 해도 결국 마주치는 것은 “헛것”과 “허깨비들” “그림자들”뿐이며, 이 실패의 흔적들이 환각, 환청, 귀신 등의 환상적 이미지들에서 발견된다.
시인은 새로운 세계로 다가가는 그만의 답을 찾아낸다. 김점용은 시의 언어를 통해 눈을 감고 귀로 여는 소리의 세상, 관음의 세계로의 전환을 꾀한다. 그러자 이제 세상이 그를 담는 대신 그가 세상을 담는 그릇이 된다.
루머도 지나가고 나면 사실이 되는 왜곡과 은폐의 공간이 바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어항이다. 시인은 이 공간 자체를 폭로하려 하기보다는 이 안에 담긴 우리 자신들의 시선에 주목한다. 대낮에도 어둡고 명징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모순적 상황 속에서 삶의 실재에 가 닿지 못하고 부유하는, 그래서 늘 헛것을 찾아 나서고 만나고 유희하는 일 자체가 김점용 시의 일부가 된다.

시인이 부리는 말은 한곳에 안착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미끄러지기만 할 뿐이므로, 그 말은 고향을 생각나게 하지만 고향을 가리키지는 않고, 시인은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일에 항상 실패하게 되어 있다. “검은 펜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면 검은 펜을 잃어버린 것이다. 금요일의 얼굴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면 금요일의 얼굴을 잃어버린 것이다. 죽은 친구의 편지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면 죽은 친구의 편지를 잃어버린 것이다.”(「편지광 유우」) 그래서일까, 이 발랄하고 분방한 리듬에는 누군가를 소리내어 부르는 친근하고 간절한 목소리와 함께 끝내 그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슬픔과 쓸쓸함 역시 배어 있다.

 

 

 

“신현정, 이 세계를 밝게 물들였던 외로운 호모 루덴스”
신현정의 유고 시집 『화창한 날』이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었다.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 2009년 지병으로 타계하기까지 그의 시에 대한 열정이 오롯이 녹아 있는 시집이다. 신현정은 자신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극도로 절제하고 그것을 명랑성으로 바꾸어 놓는 데 주력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는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에 대한 지속적인 옹립이며 철저한 긍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면성을 벗어나 놀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신현정의 시 속에서 딱딱한 세계는 비로소 다정해지며 천진난만한 꿈을 품는다. 시인은 이 천진난만한 꿈을 끊임없이 생성시킴으로써 삶의 어둠과 슬픔을 닦아내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면서 유고 시집인 『화창한 날』에서는 이러한 시적 몽상을 고스란히 연계하고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찬란하기까지 한 속도감과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구성,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시적 상상-구조력을 통해 합리성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누구나 불명료한 세계라 치부해버리는 이 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한 빛의 언어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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