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 종합 리스트.]
시인은 ‘일상’을 낱낱이 분해하고 또다시 그것을 자기의 맥락으로 쌓아올리며, 그것을 다시 무너뜨린 후 또다른 조형물을 만들어간다. 시인의 문법 그 자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한 반복이 ‘머무름’이 아닌 ‘나아감’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안다는 듯이, 시인은 일상의 모습들을 바쁘게 길러낸다.
‘언 손’으로 쓴 시를 ‘언 손’에게 건네는 따스한 세계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와 인물군상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탁월하게 형상화해온 이세기 시인의 두번째 시집 『언 손』이 출간되었다. 5년 만의 신작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의 시적 모태인 바다에 여전히 시선을 두면서 더욱 정제된 시어, 그리고 삶과 역사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으로 다시 한번 감동을 선사한다.
그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미덕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시인답게 애증이 담긴 바다에서 누대로 살아온 이들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그렸다는 점이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시편들은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문학적 경험을 하게 한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의 살아숨쉬는 일상을 시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시인은 소외된 이들이 처한 현실에 분노하고 애써 희망을 발견하는 손쉬운 공식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쉽사리 개입하지 않고 나직한 목소리로 일관하는바, 이러한 시의 주조음으로 인해 그의 시는 더욱 쓸쓸하고, 또한 역설적으로 더욱 따스하다.
이 책은 현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오쿠자바의 시들을 엮은 책이다. 역자인 조주관은 러시아 시를 전공한 학자로, 기존에 출간했던 오쿠자바 작품집의 원고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해서 우리 독자들에게 오쿠자바 시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책에 실린 20개의 악보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해당 노래시의 전체를 담은 악보를 실어 독자들로 하여금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오쿠자바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책에 실린 시인의 다양한 사진들 또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오쿠자바 시인은 소비에트 러시아 시절부터 활동했지만, 사회주의 이념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념을 기치로 내걸고 작품 활동을 하기보다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불의, 폭력, 전쟁, 위선 등 세계의 어두운 면을 비판했고, 삶의 아름다움을 노랬다. 그렇기 때문에 현학적인 작품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즐기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이 민요풍의 율격을 보이는 이유다. 그의 시들은 노래를 붙이기 쉽도록 반복적인 후렴구와 쉬운 시어들로 되었지만, 내용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현실 모순의 대응 방식
그의 시는 런던의 시민들, 나아가 영국의 민중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현실의 모순을 낱낱이 폭로하고, 그 원인을 드러낸다. 당시 영국 민중들의 삶을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은 것은 민중들의 개혁 열망과 생활의 곤궁함을 무시하는 왕과 귀족들의 폭정이었으며, 새로이 부상한 자본가 계급의 탐욕이었다. 또한 이러한 현실의 모순을 수수방관하거나, 그 현실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성직자들의 무능과 무책임이었다. 현실의 역사를 주도하는 지배자들은 폭정과 전쟁을 일삼았고, 성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신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우선 그는 시에서 사람들의 인식 구조를 바꾸어 만물을 새로운 모습으로 보도록 교육하고자 한다. 현실의 온갖 모순들은 블레이크가 보기에, 기본적으로 신과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태도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블레이크가 ≪순수의 노래≫의 작품들에 경험의 노래들을 더해 합본 ≪순수와 경험의 노래≫(1794)를 준비했던 1790년대 초반은 영국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가 보수화의 일로를 걷고 있을 시기다. 한편 자본주의의 발전과 산업혁명의 진전은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현실의 모순을 목도한 블레이크의 경험의 노래들과 일부 예언 시들은 더욱 직접적으로 인간의 왜곡된 가치 체계와 관련한 현실을 비판하게 된다.
용기와 위안을 주는 진리
인간과 인간 삶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공통적으로 느끼고 겪고 이해하는 부분들이 있다. 롱펠로는 바로 이런 삶의 공통분모를 찾아 시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얼핏 보기에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 즉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인간의 실존을 감내해야만 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존재인 우리에게 중요한 기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즉 슬픔, 근심이나 걱정, 비탄, 혹은 좌절과 절망 등을 시로 표출해 낸다.
페트라르카와 가르실라소
가르실라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의 대가인 페트라르카의 시학에 충실하여 시적 테마와 형식,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표현이나 자연에 대한 감정 이입에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페트라르카의 문학적 기교에서 온 상투성을 탈피하고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게 개인화해 표현했다. 즉 페트라르카를 모방한 부분에다 자신의 독창적 부분을 첨가해 스페인 르네상스 작가들의 기본 원칙인 ‘모방+개성’을 충실히 지켜 낸 것이다.
하디는 늘 시간과 기억과 죽음에 대해 숙고하며 이에 강박적이지만, 그에게 죽음은 늘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주체인 삶을 조망하는 데 필요한 객체다. 그러므로 그는 늘 삶 속에서 죽음을 보고 죽음 속에서 삶을 보는 이중적인 관점을 지니고 이들을 영원과 연계시킨다. 하디에게 삶은 늘 죽음과 그 의미를 소통하는 존재이고, 무한대라는 죽음의 시간대에 놓인 현상적인 흐름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하디에게 이 세상에 끝없이 반사되는 영원의 시간대는 끊임없이 인간의 삶 속에 침투하며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그에게 죽음의 체험이나 이미지는 시간관과 인생관을 대변하는 시적 장치의 일부지만, 그 이면에 놓인 영원의 이미지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투영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짧은 회상이나 특정 상황의 소묘, 서정적이며 고백적인 자기 토로의 시를 보여 주기도 하고,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연애시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사적인 목소리는 지나치게 개인의 감정을 토로한다는 점에서 몰개성 이론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개인의 정서를 저속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신랄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하디의 시에서 단점으로 지적받은 평범한 개개인의 삶의 과정과 지나친 개인사의 토로가, 어떤 독자에 의해서는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감동적인 특징을 부여하는 하디의 개성으로 찬사를 받기도 하기 때문에 그의 시는 그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