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 종합 리스트.] 

 

20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윤대녕 (소설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 수상작은 이 작가 특유의 소설 문법이 바야흐로 개화하는 광경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가족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겠으나, 개개의 등장인물들이 보여 주는 삶에 대한 지시는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풍요롭다. 막내삼촌의 전기 형식으로 풀어나간 이 소설은 1980년대 구로공단을 서사적 시공간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사랑과 배신, 떠남과 돌아옴, 가족의 운명 등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보여 주고 있다. 화자인 ‘내’가 이제 완전히 멈춰 선 삼촌의 프라이드 자동차 조수석에 할머니를 태워 보닛을 밀며 동네를 한 바퀴 돌 때 목격한 ‘다시 가까워지는’ 삶의 실체 앞에서 우리는 육박해오는 그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한수산 (소설가, 세종대 국문과 교수)
: 수상작은 무엇보다도 ‘이야기하기’에 성실하다. 소설의 본령인 ‘이야기’가 소홀해지고 있는 추세에 이 작품을 만난 의미가 더욱 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절제되고 정제된 표현과 문장도 이 작품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하나였다. 좀 더 웅대한 서사 구조 속에서 이 작가의 ‘이야기하기’가 빛을 발할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작가의 앞날에 큰 기대를 거는 마음을 담아 축하를 드린다.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체가 구병진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건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는,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혁명을 이룬 남자, 죽어서까지 예수처럼 떠받들어지는 남자” 체(CHE★)와 이름이 같다는 것이다(물론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체에게 “혁명”이란 “키 작은 놈은 커지고, 키 큰 놈은 작아지고, 못생긴 놈은 잘생겨지고, 잘생긴 놈은 못생겨질 수도”(46쪽) 있는, 그야말로 모두의 상식을 뒤집는 일이다. 그러니 계도사가 가르쳐 준 ‘합체 수련’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오체에게 처음 ‘체 게바라’ 이름을 알려준 중학교 사회 선생의 말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혁명”이라면 오체, 오합 같은 루저들이 세상을 뒤집을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이 말라 버린 북쪽 약수터에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든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자에게 일어난 일처럼 말이다.

 

<자기 앞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의 마지막 유작. 2편의 미완성 소설과 잡지에 게재되었던 5편의 단편을 모았다. 대중적으로 인정받기 전에 쓰인 초기 작품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초고들,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텍스트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인, 작가, 탐정, 군인, 낙제한 학생, 러시아 여자 육상 선수, 미국의 전직 포르노 배우와 그 외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14편의 이야기들은 작가의 삶(1부), 폭력(2부), 그리고 여성의 일생(3부)에 대한 볼라뇨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또한 이 단편들은 작품 『전화』의 틀을 넘어 볼라뇨의 또 다른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들과 각기 짝을 지음으로써 로베르토 볼라뇨 작품 세계의 특징 중 하나인 상호텍스트성을 완성한다. 이렇듯 볼라뇨 세계를 구축하는 등장인물들은 대개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한쪽이 실종된 상태다. 이렇게 물리적인 거리가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상황들 가운데 심리적 거리가 생기고, 이러한 사람들의 상황과 관계가 만들어 내는 거리감과 그에서 비롯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전화나 편지 정도로만 간간이 소통하는 이들의 삶을 볼라뇨는 철저히 제3자의 입장에서 기술해 나간다. 상황 자체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볼라뇨의 이러한 태도는 왜 그가 『칠레의 밤』, 『부적』, 『먼 별』 등 그간 자신의 작품 가운데 칠레와 멕시코 등의 정치적 현실을, 쿠데타 주위를 직접적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맴도는 쪽을 택했는지 깨닫게 한다. 즉 당시 쿠데타의 실제 공포를 직접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간접적인 공포 정도를 감지하고 경험할 수 있게끔 한 작가적 선택인 것이다. 이렇듯 볼라뇨의 단편들은 볼라뇨의 또 다른 장편들을, 나아가 볼라뇨의 작품 세계 전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놓여 있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유미코에게 어느 날 사촌 쇼이치가 찾아온다. 쇼이치는, 이모가 돌아가시면서 유미코를 찾아 돌봐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유미코의 엄마는 강령회를 진행하는 도중 이상한 것에 씌어 남편을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그 후 유미코는 모두와 인연을 끊고 외로이 지내고 있었다.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자살하던 때부터의 기억이 모호하다는 유미코와, 자신의 엄마 역시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으며 오컬트적인 힘으로부터 전혀 유리되지 않은 삶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쇼이치는 함께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통해 차곡차곡 과거를 복원하던 중, 유미코는 아빠의 산소에서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에 대한 소름끼치는 진실을 깨닫는다.

 

강현덕의 시조는 현대적인 호흡과 리듬과 시조 본유의 깊은 함축성을 두루 갖추었다. 생태계는 물론이거니와, 생명의 존엄성 자체가 경시되는 현대사회에 이처럼 그윽한 시조들은 근본적인 가치를 환기시켜준다. 고적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관찰하며, 그로부터 생명에 대한 통찰과 그 안에 내재된 가치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필연적인 운명인 소멸에 대해 성찰하면서, 역설적으로 그것마저 포용할 때 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직시와 타자성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행동으로 가능하게 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시각적인 이미지의 형상화를 이루어내는 웅숭깊은 시집이다.

 

 

 

단편적인 서정을 중시하는 시들과는 달리 한길수의 시는 서사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 속에 배어 있는 따뜻한 시선과 진지한 성찰은 독자에게 보다 더 구체적이고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회의 밝은 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면도 동시에 응시한다. 그래서 사회적 맥락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성찰도 충실히 함으로써, 자칫 외부세계의 관찰에만 그칠 수 있는 시적 영역을 다분히 폭넓게 확장하고 있다.

 

 

 

 

제1회 구상문학상 신인상 수상 작품집
정진혁은 폭 넓은 소재를 채집하여 안정된 호흡으로 시를 형상하는 진술과 구성 능력을 가진 시인이다. 내가 그의 시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일상과 제재들이 민중서사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에 나오는 인물과 화자는 “방 하나가 전부인 집”에 살며, 남편을 여읜 여인이 도시 산동네에 와서 가난한 생을 보내고, 공단에 기대어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깃들어 살고 있다. 이들 돈과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사막’의 고투에서 낙오하여 고통을 겪는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조갯국물 같은 진한 슬픔”과 “생의 비릿함”이 몸을 휘감는 느낌을 받는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80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목소리는 강아지를 찔러보는 햇살, 다랑이를 찔러보는 비, 열매를 찔러보는 바람처럼 시적 화자인 ‘나’를 찔러보는 존재들, 그 소외된 소수자들이 갖고 있는 강렬한 응시의 힘과 에너지로 충만하다. 이 ‘찔러봄’을 통해 시인은 황폐한 삶의 굴레 속에서도 야성으로 빛나는 강인한 생명력과 건강한 삶의 천진성을 발견하고 자연의 진정성과도 만난다. 황폐한 삶의 굴레 속에서도 시인으로 하여금 자연에 눈을 돌리게 하고 자연과 화합하게 하는 동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자연과 인간의 비차별적 소통’(이숭원)이라고 명명한바, 이 지점에 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가락과 장단으로 빚은 발랄한 시적 리듬을 더한다. 땀내 나는 노동의 현장, 메마른 초목, 길가의 돌무더기를 나직하게 ‘찔러보는’ 시인 특유의 언어유희와 발랄한 리듬 감각이 그것인데, 바야흐로 21세기 한국 시의 새로운 풍경, 다시 말해, 빈틈없는 묘사와 서술, 경탄스런 조어법으로 자연-인간-리듬이 어우러진 한판 시적 진경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금껏 곧고 날카로운 사물의 이미지들을 통해 견고하고 염결한 정신주의를 가다듬어왔으며, 죽음의 경험을 온몸으로 육화해낸 시들은 삶과 죽음을 감싸안는 폭 넓은 울림을 지녀왔다. 그리고 그런 시적 깨달음을 힘있고 유려한 리듬으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그의 장기이자 매력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시인은 여러 시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과 뒤엉킴에 대한 자각을 진솔하고 결연한 어조로 토로하고 있다.
시인은 제 상처를 들여다보듯 주변의 상처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그리고 멀리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도래할 것을 내다본다. 시인이 지닌 ‘통증의 세계관’은 손쉽게 희망을 말하지 않으면서 기어이 다시 살아낼 의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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