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1, 종합 리스트.] 

 

‘작고 하찮은 것’들을 익숙한 언어로 다듬어내는 겸허한 시집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부터 사뭇 확고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시대의 폐기물들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성찰하며, 그것으로부터 시대를 꿰뚫는 진정성을 읽어낸다. 그것은 비단 사물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모든 의미들은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러한 사유에서, 시인은 우리의 존재는 ‘작고 하찮은 것’이 되고자 했을 때, 오히려 분명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흔히 ‘작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들은 사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상당히 쓸모가 있다. 이렇듯 우리 또한 작음과 하찮음을 인정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비로소 풍요로운 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관념적인 인식으로까지 사유를 심화시킨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결국은 순간이라는 조그만 물방울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고 하찮은 순간’들이 모여, 장대한 역사가 된다. 그러나 제아무리 광대한 세계의 운행일지라도, 우리가 그 의미를 발견하기 전에는 무가치한 것이다. 우리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지 않으면, 대부분의 것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버릴 뿐이다. 결국, ‘작고 하찮은 것’들이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사소한 것들의 진정성으로부터 세상의 올바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집이다.

■ ‘아니’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사는 마을
과감한 부정과 기발한 규정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세계

조민은 끝까지 부정하고 처음부터 시작한다. 사물을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시인은 자신만의 ‘스트리트 뷰(street view)’를 만들어 낸다. 그 풍경에는 섬뜩할 정도로 새롭고 창조적인 색채가 있다. 부정을 위한 부정이 ‘왜 안 되는지’를 묻는 천진하면서도 당돌한 시인의 음성은 마치 폭발적인 펑크록처럼 독자를 불온한 유쾌함에 젖게 한다.

 

 

 

‘지도에는 없는’ 낯익지만 새로운 세계의 풍광은 지워지지 않는 꽃물처럼 마음에 물든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여로(旅路)의 목적을 슬쩍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어쩌면, 자신의 처음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나의 시’의 근원을 확인하고, ‘앞서 간 사람들’이 갔던 저 너머의 세계로, 이제는 정말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위한 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시집 『지도에 없는 집』은 곽효환 시의 시작에 놓일 처음이자 또 다른 처음인 시집이 될 것이다.

 

 

 

 

≪가곡원류≫는 가사집이면서 동시에 성악보집으로서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우선 ‘가사집’으로서의 특징적 모습은 종래의 가집들과 달리 저본을 놓고, 이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가집으로 탈바꿈시킨 것에서부터 나타난다. 여기에다가 역사상 유명한 작자의 작품임에도 빠진 것들과 자기 시대의 작품들을 찾아 보완해 넣는 방식으로 작품집을 구성했다. 이런 방식에 따라 유명한 <하여가>와 <단심가>는 물론이요, 서경덕, 황희, 변계량 등 수많은 유명 인물들의 작품들이 실려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휘트먼은 사물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시는 나무나 꽃처럼 자연스럽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시의 흐름은 운율의 패턴에 지배를 받을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생각이나 느낌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유시를 바다에 비유하면서, 시란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쳐 거칠기도 하고, 언제나 움직이기 때문에 그 크기나 율동이 결코 같을 수 없는, 끝없이 솟아올랐다가 부서지며 굽이치는 유동적인 파도와 같다고 했다. 그는 또한 완전한 시의 운율과 형태는 운율 방법의 자연스런 성장의 결과로서 라일락이나 장미가 숲에서 자유로이 싹트는 것과 같이 생겨나며, 밤이나 오렌지나 멜론이나 배처럼 알맞은 형체를 취하고, 그 형체에 미묘한 향기를 가미한다고 했다.
산문처럼 보이는 그의 시는 음악적인 속성을 드러냄으로써 산문과 시의 구별을 없애는 길을 터놓았다. 즉 이는 그가 평소 좋아했던 오페라처럼 시에 같은 소리의 반복, 같은 문장 구조의 반복, 같은 생각의 반복, 나열법을 사용함으로써 음악성을 강화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 고요한 서정성이 유달리 돋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과장된 수사나 애써 발견한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 시력(詩歷)으로나 나이로나 어느덧 중견이 된 시인답게 그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서 녹록지 않은 깨달음과 감각적인 시적 표현을 얻는다.

 

 

 

 

 

『캉디드』는 가장 유명한 볼테르의 철학소설로 작가의 명성이 정점에 달한 64세에 집필하여 175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재기발랄한 문체로 실제 사건과 허구를 교묘히 결합하고 당시의 시대상을 재치 있게 풍자해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순진하게 낙관론을 믿던 캉디드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낙관론을 풍자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열거하며 보편적인 인간 조건을 성찰하게 한다. “모든 것은 최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라이프니츠의 낙관론과 모든 일은 반드시 그에 대한 ‘충족 이유’가 있고 신의 예정된 조화에 의해 ‘원인과 결과’를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예정조화설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작품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이 세상의 우연한 사건과 우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따져보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 정신적인 악과 육체적인 악에 대해, 자유와 필요에 대해” 토론하고 “가능한 최선의 세상에 대해, 악의 근원에 대해, 영혼의 본성과 예정 조화에 대해” 추론하길 제안하며 독자들에게 논쟁과 성찰을 유도한다.

역사의 유구한 흐름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을 인간이 노력을 통해 후대에 남기고 전달하려 할 때, 아무리 비정한 역사라 해도 이를 외면하지 않는 법이다. 격동의 시대상황 속에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역사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제시라는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토마스 만은 폰타네의 소설『에피 브리스트』를 엄선한 가장 훌륭한 소설 6권 안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작품으로 꼽는다. 60세가 다 되어 첫 소설을 발표하고 80세를 앞두고 작가로서 최고의 기량을 드러낸 폰타네는 소설에서 모든 일을 공정하게 바라보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온화함과 함께, 앞을 내다보는 현명하고 넓은 시야를 보여준다. 그의 객관적인 서술 형식은 잘못을 저지른 인물을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사건의 맥락 속에서 보면서 스스로 판단하게 해준다. 작가가 77세가 되는 1895년 단행본으로 출간된『에피 브리스트』는 그의 소설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예기치 않았던 유산을 상속받은 주인공은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주변여건, 더 나아가 인간이 처한 근원적 조건을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된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동료들과 작별한 뒤, 그때까지 살아오던 누추한 호텔을 떠나 도시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어 생활한다. 새로운 거처에서의 생활이 자리 잡히자 주인공은 이 우주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을 쉽사리 찾지 못해 좌절하면서 일상의 삶에 매몰되어간다. 여인과의 사랑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전화로 예전에 알던 철학과 대학생과 상담도 해보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성공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 동안 바깥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사람들은 서로 비방하고, 죽이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건설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느 쪽이 옳다는 확신을 갖지도 못하고 한쪽에도 가담하지도 못한다. 그의 내면 역시 변한 것이 없고, 그의 형이상학적 질문 역시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강인함, 용맹함, 충성스러움 등을 주제로 하여 19세기 제국주의 아래 성황을 누린 대부분의 아동문학 작품들이 머잖아 스러진 것과는 달리 오늘날까지 빛나는 『정글북』의 가장 큰 매력은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언뜻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론 남의 명예와 노동력을 착취하고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도 보여준다. 수직적 질서와 절대복종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힘과 영광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위계의 어딘가에 위치한 개개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정글북』이 21세기까지도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임과 동시에 키플링에 대한 비평가들의 견해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벌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에 남아 있던 작가들은 목숨을 유지하면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는데, 기존의 문학 형식과 언어를 해체하고, 과학소설·탐정소설·메타픽션 등 여러 장르를 차용하는 등 다양한 서술전략을 통해 작품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인공호흡』의 복잡하고 파편화된 구조 역시 군부의 혹독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당시 아르헨티나 비평계의 주류적 견해였다. 이 소설은 아르헨티나 작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훌륭한 10대 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미증유의 문학적 실험

당시의 문학적 전통에 반기를 든 『더블린 사람들』은 출판사와 마찰을 빚으며 번번이 출간에 실패하다가 탈고한 지 10년 만인 1914년에 출간되었다. 조이스 문학의 특성은 그의 남다른 작가관에서 출발한다. 그는 독자를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소비자가 아니라 작가와 함께 텍스트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창조해야 하는 생산자로 정의한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문학을 실현하기 위해‘의식의 흐름’‘열린 결말’과 같은 획기적인 기법을 개발했다. 오늘날의 비평가들이『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율리시스』 같은 그의 후기작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이 소설에 이미 새로운 문학의 서사 전략이 구사되어 있어서이다. 조이스는 전통적인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문학 기법으로 같은 시대 작가들에게는 물론 나중 세대의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소설에서 보여준 미증유의 대담한 실험으로 문학사에 길이 이름을 떨쳤다.

소설은 제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펼쳐지는 기이한 사건들이 끝과 끝이 맞닿아 연속된 시간의 결로 이어진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회화적인 문체로 독자를 빨려들게 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몹시 짧게 느껴진다. 경찰을 농락하는 범인과 그런 범인의 뒤를 쫓는 여형사 유키히라 사이의 두뇌 게임은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에 이를 때까지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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