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해서 온 책.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은이), 강국주 (엮은이) | 돌베개
이덕무의 작품에는 이웃 간의 사랑과 보살핌의 정, 자연과의 정서적 합일, 벗들과 나누는 우정과 환대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분수에 맞는 가난을 감수하는 삶, 곧 가난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공생(共生)의 삶’을 그의 글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이덕무의 글을 읽다보면, 산업화 이래 오랫동안 잊히거나 왜곡되어 온,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진정한 삶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되묻게 되는 경우가 많다.
: 15년 전과 비교해, 길과 풍경이 일부 변하고 말아 아쉽기도 한 울타리 **의 자연을 관찰하며, 가까이 [이웃 간의 사랑과 보살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그려지니까,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휙휙 어지러운 일상에 조금은 느긋해지려, 감수성을 집어넣는다.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은이), 김창원 (옮긴이) | 진선출판사
홋카이도의 야생동물을 찾아 북쪽 땅으로 건너간 다케타즈 미노루가 한 해 동안 펼쳐지는 모습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자연일기. 홋카이도에서 야생동물의 치료와 재활훈련에 전념하며 그곳에서 만난 자연과 식물, 직접 치료한 야생동물들과 어우러져 살면서 느끼고 겪은 이야기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들려준다.
야생의 자연에서 보내온 진솔한 자연일기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는 생태학적으로 특색 있는 북방 지역인 홋카이도의 자연과 동식물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점점 훼손되어 가는 자연을 안타까워하며 물질문명에 대해 비판한다. 인간의 욕심과 물질문명이 자연과 인간을 단절시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저자는 토로하고 있다.
숲 속의 작은 집에서 듣는 자연의 소식
이 책의 저자인 다케타즈 미노루 씨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지 보는 것을 좋아했다. 벌레가 좋아서 시간만 있으면 그것들을 쫓아다녔다. 등굣길에 길가에서 줄지어 지나가는 개미들을 구경하느라 학교 가는 일도 잊고 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은 일도 있지만, 숲은 그에게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어른이 된 후에는 아직 보지 못한 생물들이 가장 많은 곳에 가고 싶었다. 그 결과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의 수의사가 되었다.
그의 작업실 창가에는 개구리 몇 마리가 아예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밤늦게까지 불을 켜 놓고 있으니 벌레들이 모여들고, 그 벌레들을 개구리가 노리는 것이다. 가을에는 고추잠자리와 깃동잠자리 떼가 찾아와 벽에 형형색색의 무늬를 그리고, 겨울에는 뒷산에 전등을 켜 놓고 밤마다 담비와 눈싸움을 하는 이곳이 그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세계다.
: [벌레가 좋아서], 탐구생활과 여름방학 숙제 ‘곤충채집’을 즐겨했던 기억을 문득 떠올린다.
통을 가득 채운 벌레가 꼬물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놓아주었다가, 폴짝대는 걸 쥐어보고 싶어서, 찌릿찌릿 기운을 느끼고 싶어서 다시 잡고 되풀이했던. 그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아릿해졌는데, 책을 훌훌 넘기며 잠깐이나마 추억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주문한 책.
송충이
그대는 보지 못했나 천관산 가득한 소나무
천 그루 만 그루가 뭇 봉우리 뒤덮은 걸
울창하고 강인한 노송에다
어리고 예쁜 다복솔도 퍼져 있는데
하룻밤 새 송충이가 천지에 가득 차
입으로 인절미 먹듯 소나무를 갉아먹네.
처음 모습도 새까맣게 밉더니
노란 털 붉은 반점 더욱 흉해지네.
처음엔 뾰족한 잎을 먹어 수액을 말리고
나중엔 껍질을 갉아 상처와 옹이를 만들지.
날로 말라 가지 하나 움직이도 못한 채
곧게 서서 죽는 모습 어찌 그리 공손할까.
두꺼워지고 비틀린 가지 슬피 바라보나니
상쾌한 바람 짙은 그늘 어디서 찾겠나.
하늘이 소나무를 기를 때 깊은 뜻이 있어
사시사철 보살피기를 한겨울도 없었지.
모든 나무 가운데 큰 사랑 받았으니
설마 복사꽃 오얏꽃과 화려함을 다퉜겠나.
종묘와 궁궐이 무너지면
대들보 기둥 만들어 조정으로 보내고
왜와 유구가 함부로 날뛰면
커다란 싸움배 만들어 기세 꺾으려 했는데
송충이의 욕심에 다 죽어 버려
말을 하자니 열이 치솟네.
어떡하면 천둥신의 벼락도끼를 얻어
네놈들 잡아다 이글이글 용광로에 넣어 버릴까.
*
너른 들판엔 늦가을 바람이 매서운데
저물녘 슬픈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고을 원님이 어진 정치를 하고
사재(私財)로 백성을 구휼한다기에
관아 문으로 줄지어 가
우러러 끓인 죽 앞으로 나서네.
개돼지도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것을
사람이 엿처럼 달게 먹는구나.
-굶주리는 백성
: 우리고전 선집이 여러분의 정성어린 엮음 아래 차례차례 나오고 있어서, 감사하고 하나하나 소장할 때마다 뿌듯해질 거 같다. 유금 시집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 이덕무 선집을 받았고, 이제 몇 권 더 주문했으니까 차곡차곡 채워지겠지. 앞으로 발간될 흥미진진한 고전 이야기, 벌써부터 쭉쭉 기다려진다.
푸른 화두를 마시다 - 차인 이근수의 녹차 이야기
이근수 (지은이) | 문학동네
차(茶)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을 담아 쓴 산문집. 국내외에 한국의 차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온 회계전문가 이근수 교수가 썼다. 정겨운 차인들과의 인연에서부터 숨겨진 차의 명소를 탐방하는 산사 여행기, 올바른 차 문화와 다례(茶禮)에 관한 고민과 성찰을 담았다.
세상사 소용돌이를 잊게 하는 차 한 잔의 위안과 휴식
이 책에서 그는 차에 관한 무수한 상식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정작 차를 마시는 데 있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찻물의 연둣빛을 닮은 맑은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향한 정과 그리움을 품은 이라면 누구나 찻잔 속에서 세상사 소용돌이를 잊고, 고요한 위안과 휴식을 얻을 수 있다.
: ‘무수한 상식’에 가려진 더욱 중요한 차 한 잔이 가져다주는 의미와 간격을 채우는 고리를 되새겨야겠지. ‘찻물의 연둣빛을 닮은 맑은 그리움’을 채색하며, 향긋한 차 한 잔, 책 한 권의 풍성함을 담아 ‘고요한 위안’이 기다리는 시간을 만들어내며.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 원제 滴り落ちる時計たちの波紋 (2004)
히라노 게이치로 (지은이), 신은주, 홍순애 (옮긴이) | 문학동네
현실과 환상 사이, 모호한 하이퍼리얼리티의 세계
파격과 품격이 공존하는 21세기형 소설의 새로운 도전
작가의 전략적 의도 하에 배열된 단편 전체가 언어 예술로서의 문학의 가능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은 지금까지의 히라노 문학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신선한 매력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리라 확신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 거칠고, 한편으로 잔잔함이 깔린 도전. 기다렸던 번역본. 결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확실히, 작심삼일-_-
페페의 필름통
곽효정 (지은이) | 섬앤섬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 글을 써온 한 잡지 기자가 영화를 삶을 지탱하는 지렛대로 삼아온 발자취가 담긴 영화 에세이집이다. 선택한 영화를 감상한 다음 리뷰를 쓰는 행위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지고의 즐거움이라 여기는 지은이 곽효정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친구처럼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과정이 깜찍한 소품 같은 영화들의 리뷰 속에 숨어 있다.
지은이는 평론가들의 해석과 비평보다는 실제로 영화 보기를 즐기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대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그녀는 영화가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왔고, 그것은 부끄러워 꺼내지 못한 고백과도 같은 것이다.
: 그녀의 ‘부끄러워 꺼내지 못한 고백’을 들추는 것, 호기심을 밝히며, 은근슬쩍 손 내밀기. ‘시선’에 일방적으로 가두는 게 아닌, 멀리 날리며, 해체를 시도할 생각. 그렇다고 이것저것 따지지는 않을 것. 다만, 꼼꼼히 파고들기는 괜찮겠지?
*그리고, 끌리는 리스트.
安山의 二十四 季 - 문학과의식 시선 80
이재형 (지은이) | 화서
겨울방학 끝나고
눈이 허벅지까지 쌓이던 토요일
전교생이 토끼몰이를 나갔는데
토끼를 잡자는 게 아니라
체력과 의지를 단련코자 함이라네.
유년의 기억들이 고희를 맞은 그에게는 더욱 소중한 추억이 되어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안산에 대한 애착이 시마다 묻어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 ‘체력과 의지를 단련’하고, 시인의 ‘애착’을 끌어오자. 힐긋힐긋 곁눈질하지 말고, 과감히 그래도 한편 조심스럽게 가까이 가보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세계사시인선 142
이규옥 (지은이) | 세계사
'섹스의 치환기법'은 모든 일상의 현실을 섹스의 영역이나 맥락 속으로 바꾸어놓는 방법을 말한다. 영역이나 맥락의 치환 효과는 그 대상이 섹스라는 점만으로도 도발적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섹스의 치환기법'은 그보다 훨씬 도발적인 풍자의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도발적인 풍자의 효과는 무엇보다도 섹스의 주도권을 '앨리스'라는 여성 화자가 간직하고 있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 이경호 (문학평론가)
: ‘도발적 풍자의 효과’에 마구 이끌려버렸다.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쓱싹쓱싹 302번만의 어떤 방식과 기법을 선택했다. 그 방식과 ‘치환기법’을 미리 알려줄 수는 없는 거지만.
손톱
김종일 (지은이) | 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딸을 유괴살인으로 잃고 남편과 이혼한 네일 아티스트 홍지인은 어느 날부터인가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꿈에서 그녀는 추악한 범죄를 일삼는 사이코패스, 존속살인자, 고문수사관이다.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끔찍한 고통만 남긴 채 하나씩 사라지는 손톱.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의 시 '거울'과, 뉴질랜드 원주민 부락에서 왕족의 손톱을 먹고 주술을 부린다는 '라만고' 설화를 소설의 모티프로 삼았다.
: 익숙한 직업인 ‘네일 아티스트’ 등장. 그 과정과 비교하면서, 파고드는 재미도 쏠쏠할 듯. 이상의 시 ‘거울’이 모티브라는 부분에 즉각 반응.
시체는 누구? | 원제 Whose Body? (192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은이), 박현주 (옮긴이) | 시공사
소설은 기이한 범죄, 논리적 추리, 뜻밖의 결론이라는 황금기 추리소설의 공식을 따르지만, 범인의 정체보다는 범죄의 이면에 숨겨진 복잡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다.
: ‘내면에 집중’하니까, 이렇듯 담아두고 마는 것이다. 곤란해지면 안 되니까, 그전에 확인을 거치겠지만.
타임 슬립 - 시간이 멈춘 오후, 열아홉 살 그들에게 찾아온 낯선 미래
오기와라 히로시 (지은이), 이수경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01년과 1945년, 시공을 넘나든 청춘들의 몸빛 성장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소년이 2001년과 1945년이라는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뒤바뀌면서 겪게 되는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나’라는 존재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주는 작품이다. 특히 열아홉 청춘들의 ‘시간 여행’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9.11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현대사의 굵직한 비극에 접목시켜 새로운 유형의 재미와 감동, 그리고 은근하지만 강력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한다.
: 책을 읽으며, ‘의미’를 되짚어나가며, 그리고 순간순간 집중하기. ‘새로운 유형’의 ‘강력한 메시지’를 심호흡하듯 채우기.
가마타 행진곡
쓰카 고헤이 (지은이), 박승애 (옮긴이) | 노블마인
쓰카 고헤이의 작품은 인간 무의식의 깊은 곳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는 엉망진창 우당탕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깊은 내면을 까발리고 있다. 이 무서운 ‘무의식의 사냥꾼’을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 이쓰키 히로유키
이 작품은,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를 다루면서 진정한 자유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재일교포로서 피차별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절대적 권위에 비판의식 없이 순응해가는 대중에게 자립의 의지를 호소하고 있다.
: 당연하게도, ‘엉망진창 우당탕’의 흐름이 궁금해진다. 허공에 대고 쓱쓱 그려내는 예감과, 진행 중, 완료의 결과는 얼마나 달라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