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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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회색빛, 뚜렷한 경계가 없는 내면에 주파수를 맞추다.
(0706)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집이란 요소 하나, 반듯하고 심플한 회색 표지에 무턱대고 호기심이 스멀스멀 생겼다는 요소 하나. 갈팡질팡 망설이지 않고, 선뜻 구입할 수 있었다. 1+1이벤트로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내용의 일부를 살짝 살피지는 못했지만, 어디까지나 기대를 잔뜩 품었던 것. 먼저, 그 결과는 상당 만족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10가지 단편이 실려 있다. 나는 웬만해서는 기발한 상상력이란 생각을 안 하는데, 이번 독서는 그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아주 극찬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달리 말하면, 모험과도 같은 독서. 내가 좋아하는 독서 타입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현재, ‘양지의 시’란 단편을 읽는 중이다.] *7월 3일 독서 일기에 언급했던 바, [SEVEN ROOMS]에 몰입해서 읽을 때, 최초로 느꼈던 그 생각이 일관되게 흘러간 것에 대해서 환호 중이다. 소설 전반에 미미하게, 혹은 어떤 단편에서는 좀 더 선명하게 밑바닥에 깔린 자글자글한 파편의 긴장을 느끼고, 복선을 찾아내고, 이어질 스토리를 예측, 감지할 수 있었다. 풀어지지 않고 내내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단편집일 경우, 한 번 붙잡으면, 단편 하나를 다 읽어내야 커버를 덮었던 평소 독서 습관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었다.
책 소개에서는 [크게 섬세함과 안타까움을 기조로 한 '퓨어 계열'과 잔혹함과 처참함을 기조로 하는 '다크 계열'로 나뉜다.]라고 설명했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로 ‘양지의 시’란 단편을 제외하고는, 굳이 확연하게 나누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가지 타입 중에서 어느 하나 특정한 면이 더욱 부각되었거나, 아주 가라앉았다는 생각을 했다.(내 주관이 섞였긴 하지만;) 그래서 2배로 좋고, 특별했던 것 같다. 경계가 없다는 것,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 독서의 가치 범주에 넣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이것저것 따지며 뜯어보고 파헤치지 않고, 그저 음미하고 휘감기는 영상의 효과를 고스란히 움켜쥘 수 있었다.
[SEVEN ROOMS]에서 작가가 따로 묘사하지 않은 범인을 나의 시야에 가두고, 상상력의 자유를 만끽하며 나름대로 그를 표현했다. 어쩌면 평범한 겉모습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고, 한계와 선을 생각하지 않고 서슴없이 살인을 즐기는 무시무시한 괴기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공개수배 사건 25시’의 용의자와 딱 맞아떨어질 수도 있었다. …….
출구 없는 단절, 고립과 고독의 절정에서 헤엄치고, 무의미함에서 길잡이든 화살표든 다 내던진 채 풀썩 주저앉고 마는, A세계와 B세계의 유일한 통로이자 구실이었던 다리가 처참하게 부서진 광경을 보고, 더욱이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습하고도 잔혹한 인간 내면의 실체와 맞닥뜨리고, 뒤틀린 자아, 소통의 부재에 허우적거리고, 복수의 칼날을 번뜩이다, 스르르 놓아버리고 천진한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일으킨다. 어질어질해 있는 사이, 저 멀리 잰걸음을 놓는 자연과 생물, 그리고 태양에 관한 동경, 관심에 생기의 꼬리를 다시금 부여잡고 부지런히 따라붙는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희망을 발견,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만다.
*흉기는 녹슬어버린 도끼, 서랍에 숨겨두었지.
먼지투성이 권총, 두 번 세 번 돌리며-
방아쇠를 당기고, 연기가 나는 총구.
눈이 하얗게 뒤집힌 얼빠진 얼굴.
도끼로 그 녀석의 손발을 큼직하게 잘라, 여기저기 튀는 피.
다음은 그 녀석, 그 다음은 저 녀석.
손, 발, 숨 안 쉬는 사람들을 모아서 클로버 산을 만들자.
- Murder, Joker. *
[차가운 숲의 하얀 집], 단편을 보면서, 위에 부분 옮긴 가사를 문득 생각했다. 소설은 섬뜩함 뒤에 가려진 씁쓸함이 녹아 있어서, 가사와 분명 다르지만 슬며시 스치고 지나갔었다.
특별히, [SEVEN ROOMS], [양지의 시], [차가운 숲의 하얀 집]을 깊게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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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족 -> 안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