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구판절판


우리는 건물이 우리를 과거와 연결시켜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미래의 상징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 수도 있다.
우리는 건물이 마음을 다독여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흥분시켜주기를 바랄 수도 있으며, 조화의 느낌을 풍기기를 바랄 수도 있고 절제의 느낌을 풍기기를 바랄 수도 있다.-66쪽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내심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으면서, 왜 자신의 작품을 주로 기술적인 맥락에서 정당화했을까?
그들의 신중함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 기준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비판에서 면제된 스타일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고딕이나 티롤 건축의 추종자들이 모더니즘 주택의 외양에 목소리를 높여 이의를 제기할 경우 어깨를 으쓱하고 털어버리면, 반드시 고압적이고 오만하다는 비난이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민주정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학에서도 최종 심판관은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비난자를 막고 동요자를 설득할 수 있는 과학적 용어의 매력이 돋보이게 되었다.-71쪽

디자인된 물건은 모두 자신이 지지하는 심리적 또는 도덕적인 태도에 대한 인상을 심어준다.
본질적으로 디자인과 건축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 내부나 주변에서 가장 어울리는 생활이다. 이 작품들은 그 거주자들에게 장려하고 또 유지하려 하는 어떤 분위기에 관해 말한다.-77쪽

아름답다는 느낌은 좋은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물질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얻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물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것이 어떤 개인적이고 신비한 시각적 선호에 거슬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는 올바른 존재감각과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80쪽

건물이나 사물이 물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해주는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한곳에 모인 돌, 쇠, 콘크리트, 나무, 유리의 배치가 자신을 표현하는―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의미심장하고 감동적인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묘한 과정을 자세히 서술할 필요가 있다.
하얀 벽 안에 20세기의 추상 조각들을 모아 놓은 미술관에서 우리는 3차원적인 덩어리들이 의미를 얻고 또 전달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얻는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우리의 설비와 주택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지 모른다.-82쪽

때로는 거대한 귀마개나 뒤집힌 잔디 깎는 기계를 연상시키는 물체를 두고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웃음을 터뜨리기는 쉽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해몽이 꿈보다 좋다고 비난하는 대신, 추상 조각가들이 온갖 종류의 비구상적인 대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에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뭇조각과 줄, 석고와 금속 장치를 이용해 우리에게 커다란 관념들, 예를 들어 지혜나 친절, 젊음이나 노쇠와 관련된 관념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언어로 또는 인간이나 동물을 모방한 형상으로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조각가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재능이다. 실제로 위대한 추상 조각가들은 독특한 분열된 언어로 우리 삶의 중요한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뒤집어 말하면 이 조각가들 덕분에 우리는 평소와는 달리 건물이나 가구를 포함한 모든 사물의 소통 능력에 강렬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미술관에 가서 영감을 얻고 나면 샐러드 사발은 샐러드 사발에 불과하다는 이전의 산문적인 믿음이 초라해 보일지 모른다. 이제는 샐러드 사발에도 희미하기는 하지만, 완전성, 여성성, 무한성 등 의미 있는 연상들이 머문다고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책상, 기둥, 아파트 건물 같은 실용적인 물체를 볼 때도 우리 삶의 중요한 주제에 관한 추상적인 표현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85쪽

활자로 찍은 글자처럼 작은 것에서도 풍부하게 발전한 개성을 탐지할 수 있으며, 그 삶과 백일몽에 관하여 어려움 없이 단편소설 하나라도 써낼 수 있다. 헬베티카 활자 ‘f'의 곧은 등과 빈틈없는 꼿꼿한 태도는 정확하고, 깔끔하고, 낙관적인 주인공을 암시한다. 반면 폴리필루스 활자는 그 숙인 머리와 부드러운 이목구비 때문에 졸린 듯한 느낌, 수줍은 모습으로 시름에 잠긴 듯한 느낌을 준다.-89쪽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란 우리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투사를 견딜 만한 내적 자산을 갖춘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런 작품은 좋은 특질을 단지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현한다. 따라서 시간적이고 지리적인 기원을 넘어 살아남고, 최초의 관객이 사라지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위대한 작품은 우리의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속 좁은 인상의 밀물과 썰물 위에 우뚝 서서 자신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108쪽.
건축이나 디자인 작품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번영에 핵심적인 가치를 표현한다는 사실, 우리의 개인적 이상이 물질적 매체로 변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102쪽

우리가 환경에 민감한 이유는 인간 심리의 곤혹스러운 특징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 내부에 수많은 자아를 품는 방식 말이다. 그 모든 자아가 똑같이 ‘나’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불협화음 때문에 어떤 분위기에 들어가면 스스로 나의 진정한 자아라고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불평하기도 한다.-110쪽

우리 주위의 재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품고 있는 최고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성실과 활력이 지배하는 정신 상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속으로 해방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깊은 의미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방 전체와 마찬가지로 그림 한 장도 우리 자신에게서 사라졌던 의미 있는 부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125쪽

애초에 우리가 예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거의 언제나 불균형의 위험, 우리의 극단들을 조절하지 못할 위험, 삶의 커다란 위험물들―권태와 흥분, 이성과 상상, 단순과 복잡, 안전과 위험, 내핍과 사치―사이의 중용을 놓칠 위험에 빠져 있다는 표시다. -166쪽

취향 뒤에 놓인 심리적 기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그냥 무시해 버리는 태도는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이 결여되어 있기에 저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하고 물어야 한다. 그들의 선택에 열광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들의 박탈감은 이해할 수 있다. -175쪽

취향의 충돌은 여러 힘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파편화하고 고갈시키는 세계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 우리가 균형을 잡지 못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관심도 취향의 스펙트럼에서 계속 새로운 부분, 새로운 스타일로 이끌린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이 현재 우리 내부의 그림자 속에 놓여 있는 것을 집중된 형식으로 구현할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선언하게 된다. -178쪽

순진하게 민속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갈망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라들 사이에 존재하는 진정한 차이가 건축적 수준에서 적절하게 표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바람일 뿐이다. 나는 내가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것, 과거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전등스위치, 그 연장선상에서 건물 전체를 원했다.-236쪽

<겐지 이야기>의 가장 훌륭한 번역이 개별 단어에는 광범한 자유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꼼꼼하게 단어만 그대로 옮겨 놓는다고 해서 원래의 의도에 충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65
설계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안다고 믿었던 것을 씻어내고, 끈질기게 우리의 조건반사 뒤에 감추어진 기제를 쪼개보고, 불을 끄거나 수도를 트는 것 같은 일상적인 행동의 신비와 아연할 정도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242쪽

우리는 건물이 우리 뜻에 따라 지어진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한다. 불도저나 크레인의 방향을 안내하는 미리 결정된 각본은 없다. 잃어버린 수많은 기회를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쪽으로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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