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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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필요 없어.

지난 주, 도서관에서 빌려 밑줄 긋기 등록을 마친 책이다. 신간코너에서 발견했을 때(이미 오래전), 살까 말까 퍽 갈팡질팡했던 기억이 남았다. 깔끔하고 속도가 빠른 문장에 와우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고, 그 당시엔 머릿속 리스트에 담아두고 조만간 사야지, 생각했었다. 그러다, 은근슬쩍 묻히고 말았다. 더 급하게 필요하고, 더욱 끌려서 읽고 싶은 책들이 줄을 서게 되었다고 하면, 단순히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우연히 동생의 학교 도서관에 따라갔는데, 여기저기 기웃기웃 휘둘러보다가, 이것저것 빼서 들추고, 팔락팔락 넘기고, 서서히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늘어가고 있었다. 빌린 5권의 책 중 가장 먼저 마지막 커버를 덮었던 책이라, 제일 처음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다. 다른 책은 좀 더 여유를 두고, 좀 더 생각을 거치고 싶다. 책을 빌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단편 2가지를 거쳤다는 점에서, 리뷰는 좀 늦은 감이 있다. 많이 머뭇거렸고(내가 느꼈던 감정을 고루 담아내지 못할까 봐), 연방 따져보다가 미적거리고 말았다. 지금도 여전히 조심스럽고, 이리저리 특징을 꼬아보고, 연관을 지으려 한다.


나의 지난 독서 일기를 살피면, [본격적으로 읽은,(미야베 미유키란 작가는 진작 알았지만)
첫 단편집. 잘 읽혀지는 글은, 자신의 문장 호흡과 가까워서 그런 거라고 한다. 그 공통분모에 근접한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여러 작가 중 한 사람 리스트에 오른 미야베 미유키. 그녀의 다음 작품으로 '누군가'를 읽을 계획을 세운다.]라고 적은 바가 있다. 리뷰를 통해 더욱 바짝 접근해보고자, 독서 일기에는 요점만 나열했던 것인데, 정작 리뷰를 올리려고 정한 이 시점에서는 그렇게까지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담담하게 차근차근, 스토리보다는 내가 받았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풀어가고 싶다.


무엇보다도 환호했던 점은, 간편한 사이즈의 책 안에, 나름 진솔하고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했다는 점이다. 스토리 위주로, 영상이 쉬이 그려지는 단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인물의 내면에 관해서는 바투 다가서지 않았던 것 같다. 단어 쓰임새가 특이한 편은 아니었고, 정곡을 찌른다고 할까, 일상적 단어들을 잘 버무려놓은 편이었다. 말뿐인 허울 좋게, 구질구질 끌어가는 건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치밀한 서술을 살짝 내팽개치고 멀리 던져놓았다는 것에는 약간이나마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심리 묘사 면에서는 [들리세요]라는 단편이, 어느 정도 인상에 남았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을 때면, 각자 그 소설을 해석하는 방식이 있을 텐데, 나의 경우에는 좀 많이 파헤친다고나 할까. 문장에 관해서, 표현에 관해서.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군데군데 진기하고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표현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기억의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언제든 꺼내보고, 시시때때로 배우고 싶은.

“저 같으면 친구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뒤가 켕기는 신세를 지기는 무서우니까요.”(125)

이렇듯, 대사 하나가 그 단편의 묘미를 살리는 장면을 드문드문 찾아낼 수 있어서 은근슬쩍 빙그레 웃음 짓기까지 했다.

츠토무는 인간들 중에는 어떻게 해도 공존할 수 없는 타입이 있다는 것을 열두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나나와 밤은 같은 정원에 심을 수가 없으니까.(137)

인생에서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핵심적으로 보여준 문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원했던 바가 아니라는 것과, 그 결론이 이르기까지 잘은 몰라도 누구나 힘겨운 과정을 거쳤을 거라는 생각까지. 의식적으로 끄덕거리며 맞아, 라고 중얼거리며, [들리세요]라는 단편을 징검다리를 밟듯, 몇 번이고 곱씹으며 파악 단계를 거쳤던 것 같다.

그래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같은 정원에 심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쓸쓸해한다는 것을.(170)

이 부분은 [들리세요]라는 단편의 마지막에 드러났던, 이 단편의 핵심을 찔렀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에 대한 버거움, 어쩔 수 없는 거리감, 거기서 오는 허망함, 그리고 안타까움. 어쩐지 저릿한 자극(약간의 반성이라고나 할까)을 주었던 부분이다.

“‘둘시네아’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같은 가게가 아니야. 오히려 당신 같은 사람이 가끔 기분 전환하러 와서 즐기는 가게야. 나는 그럴 마음으로 해 왔어. 가게가 손님을 고르다니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야. 난 어떻게 해서든 마음대로 생겨버린 그 벽을 부수고 싶었어.“(242)

주인공의 내면에, 그리고 우리들의 내면에 자리한 편견을 쓱쓱 지울 수 있다. 이 단편의 초반에 ‘둘시네아’에 대해 묘사할 때, 약간 찌푸리며 읽어나갔는데, 내게 있어서 반전이 되었던 저 대사,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했다는 생각이었다. 흡족한 웃음을 흘릴 수 있었던 사항이었고. 여운이 남기도 했고, 스토리가 좀 더 이어지지 않을까 몇 번이고 뒤적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찌릿찌릿한 전율까지 느끼면서_ 전체적으로 만족에 가까웠던 결말이었다. 너무 작위적이지 않았고, 뒤에 한없이 어느 지점까지고 이야기가 이어질 법하게(마치 평행선처럼)그려냈던 장면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인식이기도 하겠지만) 표제 ‘대답은 필요 없어’라는 구절이, 어느 한 단편이 지닌 독자적인 의미로도, 전체를 아우르는 암호로도(몇몇 단편에서 구체적인 구실을 가졌던 건 아니었지만)작용했다는 판단을 내린다.   


[화차]라는 장편소설의 원형이 된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했는데, 아쉽게도 [화차]는 읽은 경험이 없어서, 어떤 부분이 그 소설의 계기가 되었는지 파악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는 생각이다. 전작과 비교하는 방식은 그리 즐기지 않는데, 그저 궁금함을 해소하고 싶어 언젠가 [화차] 빌려봐야지 싶었다.


나는 솔직히, 다른 분들이 지적한 바 있는, 어떤 요소가 미야베 미유키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처음 접하는 소설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이겠지. 한 가지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건, 마지막 커버를 덮는다는 사실에 허전함이 컸던 만큼, 그녀의 단편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전에, 읽고 싶은 장편소설들을 차례차례 거쳐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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