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숨은아이 > 어제 저녁 광화문에서
어제, 곧 18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위한 범국민 촛불대행진”에 다녀왔어요. 오후 5시에 교보문고 종로 쪽 정문 앞에서 깍두기 언니와 만나기로 했는데, 전날 밤 갈아 끼운 전화기 약이 밤사이에 닳아버리는 희한한 일이 생겨, 충전기에 끼워놓은 다른 전지가 다 충전되기를 기다렸다 출발하느라 제가 한 10분쯤 늦었어요. 저는 갈색 목도리, 깍두기 언니는 하늘색 파카, 서로 잠시 헤매다 만났지요. 깍두기 언니 글은 가끔 과격한데(!) 정작 언니는 참 따스한 느낌이었어요. ^0^
저와 제 옆지기, 깍두기 언니는 조선인님을 기다리며 대열 후미쯤에 자리를 잡았지요. 거리에 나온 지 몇 달 되었다고 그새 감각을 잃어, 깔고 앉을 것을 준비하지 못했어요. ^^ 그래서 깍두기 언니와 전 책을 깔고 앉고, 제 옆지기는 맨 바닥에 앉았다가 나중에 깍두기 언니가 두툼한 마분지 상자를 주워 주셔서 그걸 깔고 앉았지요.
문화제가 시작되고 얼마 뒤 조선인님 옆지기 마로아빠가 연단에 올랐어요. 단식 47일째. 멀리서 멀티비전으로 보기에도, 사진보다 얼굴이 더 야위고 푸석해 보이더라구요. 국보법 철폐를 위해, 서명운동이며 거리행진이며 국토순례까지, 안 해본 것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박또박 맑은 음성이었지만, 뱃심이 다 빠져 좀 힘드신 듯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크고 굳센 목소리로, “나의 심장 나의 눈, 사랑하는 딸 마로에게, 상상력과 생각의 자유를 제한하는 세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외치셨어요. (인용문이 좀 틀리더라도 양해를... 기억나는 대로 쓴 거라. ^^)
그리고 얼마 있다 깍두기 언니와 조선인님이 통화가 되어, 깜찍발랄 모녀 조선인님과 마로를 만났습니다! 그동안 사진으로 보고 마로 이쁘다 여겨왔지만, 역시 사진은 마로의 생기와 활력을 반도 못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풍선으로 엄마를 놀리는 마로의 까르르 웃음, 혼자 보고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0^ 조선인님도 마로만큼이나 깜찍 발랄하셨습니다.
조선인님과 마로는 일단 조선인님이 속한 단체 후배들 있는 쪽으로 갔다가, 대회가 끝날 무렵 마로가 배고프다 칭얼거리자 다시 우리 쪽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니 대회가 끝났답니다. 조선인님과 마로는 마로아빠 있는 쪽으로 가시고, 깍두기 언니는 교보에 들르겠다 하셔서, 그대로 헤어졌습니다.
요즘 겨울치고는 춥지 않다지만, 찬 아스팔트 바닥에 세 시간가량 앉았자니 참 춥고 불편했습니다. 하루 저녁도 이러할진대, 지금 여의도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하시는 분들은... 단식 농성에 합류하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국회 법사위 회의실을 점거하고 아예 회의를 열지 못하게 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어디까지 가야 만족하려나요. 법사위를 통과하지 않아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원기 국회의장이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한답니다. 그 기다림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지금 바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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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턴 수니나라 씀)
어제 아침에 볼일 보고 동탄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다. 아줌마 넷과 아이들 8명이 모여서 실컷 놀고 밤10시에 집에 왔다. 남편은 전날 송년회로 떡이 되서 자고 일어나더니 찜질방에 가버려서 없고..나혼자 텔레비젼 보고 놀다가 새벽에 홈 CGV에서 '래리 플린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래리는 어린 시절부터 동생과 밀주를 팔아 힘들게 생활한다. 나중에 커서 '허슬러'라는 스트립 바를 운영하던 중 클럽 홍보를 위해 잡지를 발행한다. 이 클럽에서 만난 알시아와 결혼을 한 래리는 본격적으로 도색잡지 산업에 발을 들인다. 그러나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보다 더 문란한 사진을 실었던 '허슬러'때문에 래리는 계속 법원을 들락거린다. 그 와중에 괴한에게 총격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반신 불수의 몸이 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FBI의 마약 밀매 테이프라든지, 제리 폴웰의 풍자 묘사 건으로 인해 법원에 계속 다니면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러던 중, 부인인 알시아는 에이즈에 걸려 죽고, 래리는 끝내 법정에서 승소한다.
영화줄거리다.. 난 중간부터 봤는데.보수적인 내가 보기엔 래기가 제정신이 아닌듯 싶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누드로 다리 좍쫙 벌리고 찍은 사진들이 실린 이상한 잡지를 우리 아이들이 보기 바라지 않기에..
그런데 영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간다..갑자기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기독교적인 보수주의자들과의 대결로 내용이 바뀌는거다..이 부분부터 간사하게도 나는 래리편이 되고 만다..
래리의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말한다. 자기도 래리와 허슬러라는 잡지가 싫다고..하지만 그렇다고 이 잡지를 만드는것이 불법은 아니라고.우리는 이잡지를 안사볼 권리가 있는것처럼 잡지를 만들 자유도 있는 거라는..
래리가 성적으로 풍자한 유명한 텔레비젼 출연 목사 (빌리 그레이엄 처럼 유명한가 보다) 와의 법정 다툼은 대법원까지 가고서야 래리의 승리로 끝났다..래리는 법정 모독으로 인해 정신병원까지 갔었는데..래리라는 인간의 머리속을 들어가 보고 싶다..영화 보는 내내 불편하게 하던 래리는..대법원앞에서의 인터뷰로 내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것을 쓸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내가 이긴다면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권리가 생기는 거다..왜냐하면 나는 쓰레기(?) 이므로.." 똑같은 대사는 아니지만..
우리가 우습게 보는(하지만 그는 어마어마한 부자다) 래리 같은 인간의 권리가 인정된다면 ..단연히 우리들의 권리가 인정된다는 내용..
국가보안법에 대한 마로아빠의 연설을 보자 갑자기 어제 본 영화가 생각이 난다..국가보안법에 대한 것은 나는 잘 모르겠다. 박통때나 전통때..간첩죄로 무고한 사람들을 고생 시켰다는 정도..그런데 래리가 한말과 겹쳐져서..이게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는..
영화는 영웅을 만들고 끝났지만..(래리는 그래도 이상한 놈이다^^)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이 되기 바란다..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에 대해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도 몇년전까지 아니 아직도 싸우고 있는데..우리도 힘내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잘되지 않겠는가?
다른나라는 자유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것은 우리의 환상이다.그들도 열심히 싸우고 고생해서 쟁취해 가고 있다. 마이클 무어나 래리 플린트 같은 괴짜가 사는 미국..그래서 미국이라는 괴물도 잘 굴러가고 있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