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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크리스 반 알스버그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1949년 미국 미시간주의 Grand Rapids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젊은 시절 그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법률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Ann Arbor에 있는 미시간 대학에 진학했으나 신입생으로서 교양 과목으로 이수한 그림 그리기에 오히려 흥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조각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972년에는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졸업 후 얼마 안 되어 뉴욕시립갤러리에서 그의 조각 작품들을 전시하는 기염을 토하며 일약 유명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한 몸에 얻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가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 교편을 잡고부터 시내 반대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조각 작업실에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한 때부터였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떠받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느낀 그의 아내와 친구이자, 그림책 작가인
데이비드 맥컬리(David Macauly)의 소개로 Houghton Mifflin사와 연결되어 어린이를 위한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릴 적에 올챙이를 잡고, 썰매를 타고, 야구를 하며 놀던 기억이 어린이 책을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의 최초의 작품인 "압둘 가사지의 정원" 으로부터 최근작인 "자수라(Zathura)"에 이르기까지 모두 16편의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 받고 있습니다.

"주만지(Jumanji)"와 "북극으로 가는 급행열차(Polar Express)", "압둘 가사지의 정원"은 대성공과 함께 모두 칼데콧 상을 수상했으며 "주만지"는 1996년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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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철학이 담긴 동화작가 레오 리오니



레오 리오니(Leo Lionni)는 1910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리오니의 집 근처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두 곳 있었고, 그의 두 삼촌들은 미술품 수집가, 건축가였다. 안팎으로 예술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주변 환경 덕분에 리오니는 어릴적부터 그림, 조각, 건축, 그래픽 디자인 등 예술적 분위기에 흠뻑 젖어 살았다.
리오니의 방 앞에는 달력처럼 샤갈의 원화(原畵)가 걸려 있었고, 대부분의 학교 친구들이 공원에 모여 축구 시합을 하는 토요일마다 리오니는 연필과 접는 의자를 들고 박물관으로 가서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이런 어린 시절은 그가 열 두 살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어린 시절 덕분에 리오니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터, 애니메이터, 조각가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소양을 길렀으며, 글보다 그림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쓸 수 있었다.

한편 리오니는 파충류, 곤충, 어류 등 휘귀한 동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직접 사육장을 설계하고, 건축했으며, 그 안에 거북이, 도마뱀, 쥐, 나비, 가시고기 등 다양한 동물을 길렀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리오니가 그림책을 쓰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주인공이 쥐, 도마뱀, 물고기 등을 비롯한 동물들이라는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노년의 리오니는 "어느날 문득, 나는 내 작품의 장면 하나 하나가 사육장의 바로 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책의 주인공들도 70여 년 전 바로 내 다락방에 살았던 생쥐와 거북이, 달팽이, 가시고기, 나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 바 있다.

열 두 살 이후 1928년까지 리오니는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보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예술적 분위기,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쌓은 경험들,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래픽 디자이너, 조각가, 미술가, 애니메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경력은 그가 다양한 소제와 유머, 상상력이 넘치면서도, 복합적인 철학적 의미들을 내포하는 그림책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1928년부터 30년까지 리오니는 쥬리히 대학을 다녔으며, 모타 페네토니(Motta Panettoni)제과 회사에서 일했다. 1931년에는 노라 머피(Nora Maffi)와 결혼하여 이탈리아에서 살았으며, 그의 광고 에이전시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해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밀라노에 살면서 유럽의 예술잡지들에 미술과 유럽 건축에 관한 기사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 때 리오니는 자신에게 그래픽 디자이너의 길을 열어 준 세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던 중 1935년에는 제노바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각, 건축,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디자인에서 애니메이션까지 모든 예술 분야에서 여러 차례 수상 경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업적도 남긴 리오니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미술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살던 리오니는 1939년 2차 대전과 함께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의 독재와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 건너간 리오니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광고 에이전시 회사에서 일했다. 이 곳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그는 미국 예술가 협회에서 주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45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고, 뉴욕에 아파트를 마련했다. 또 1947년에는 뉴욕 노리스트 겔러리(Norlyst Gallery)에서 유화와 수체화가 주가 된 개인전을 열었다. 이를 개기로 리오니는 뉴욕과 일본 등지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게 된다.

개인전이 있던 1947년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걸쳐 있는 휴양지 리비에라에 집을 사고, 이 곳을 중심으로 유럽을 두루 돌면서 그림을 그리고 여행도 즐겼다.

이후 10여 년 동안 리오니는 <프린트(Print)>를 비롯한 유명 잡지의 공동 편집진으로 지내기도 하고, 퍼슨스 디자인 학교(Parsons School of Design) 학장으로 있기도 했다. 그리고 국제 예술가 협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의 장(長)으로 일하기도 했다. 또 <뉴욕 타임즈>나 <포춘> 같은 유명 잡지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기도 했다.

한편 1959년에 10여 년 동안 일하던 <타임사(社)(Time Inc.)>를 그만두고, <포춘>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섯 살과 세 살 된 손자를 데리고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다.
<라이프>지를 보고 있던 리오니는 손자들이 기차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빨리.
그런데 우연히 <라이프>의 한 면을 펼쳐든 순간 리오니에게 아주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그 페이지는 파랑, 노랑, 초록 등의 색으로 장식된 페이지였는데 리오니는 손자들을 불러 놓고, "할아버지가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하며 아이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서류 가방을 테이블 삼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세 가지 색이 그려진 페이지를 찢었다.
그리고 파랑색이 있는 부분을 망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둥글게 찢었다. 노란색과 초록색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찢은 다음 리오니는 세 조각들을 들고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흥분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그림책이 <꼬마 파랑과 꼬마 노랑(Little Blue and Little Yellow)>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레오 리오니가 어린이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게 되는 개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한편 이 책은 1960년에 <뉴욕 타임즈>가 뽑은 올해의 좋은 그림책 베스트 텐에 선정되었다. 이 책이 내용은 파란색 작은 얼룩과 노란색 작은 얼룩이 서로 껴안고 초록색 얼룩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리오니가 쓴 많은 그림책들이 다양한 기관에서 주는 상들을 수상한다. <조금식, 조금씩
(Inch by Inch)>는 1960년 <뉴욕 타임즈>가 뽑은 올해의 좋은 책 베스트 텐에 선정되는가 하면, 1962년에는 루이스 캐럴 상(Lewis Carroll Shelf Award)을 수상했으며, 독일 청소년 문학상(German Youth Book)에서 주는 명예의 책(Honor Book)에 선정되었다.

<으뜸 헤엄이>는 1963년에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책 베스트 텐에 선정되는가 하면, 1966년에는 5년 동안 기억에 남는 어린이 책 베스트 50에 선정되었다.
또 1966년에는 독일 어린이 문학상 그림책 부문 상을 받는가 하면, 1967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브리티슬라바에서 열린 세계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서 주는 그림책 상을 받았다.


비평가들 사이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은 <프레드릭(Frederick)>은 1967년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책 베스트 텐에 들었으며, 1968년 독일 소년·소녀 문학상(German Juvenile Book Award)을 받았다.

 

 

 

 

<새앙쥐와 태엽쥐(Alexander and the Wind-up Mouse)>는 크리스토퍼 상(Christopher Award)을 수상하는가 하면, 1970년 지 선정 "올해의 눈에 띄는 책"에 선정되었다.

 

 

한편 레오 리오니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1970년에 테헤란 영화제에서 두 작품으로 다섯 개 부분 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리오니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1988년에 열린 미국 영화·비디오 페스티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리오니의 이런 경력은 그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 밖에도 리오니는 <물고기는 물고기야>, <아주 신기한 알>  <제각기 자기 색깔>, <초록꼬리> 등 우리 나라에서도 소개되어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비롯한, 40여 편이 넘는 그림책들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모두 철학적이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꿈과 상상의 세계, 심오한 사상들이 녹아 있다.




리오니는 1997년에는 <세계 속에서(Between Worlds)>라는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현재 그는 뉴욕에 있는 아파트와 이탈리아의 17세기 농장 풍의 잡을 오가며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내며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는 육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999년 10월 12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레오 리오니의 작품세계

1) 그림책의 비중를 한 단계 높인 레오 리오니

문학 전반에서 아동 문학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그림책은 그다지 인정받고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또 글과 그림을 동시에 쓰고 그린 사람들도 흔히 글을 쓰고 동시에 그림까지 그린 글 작가로 소개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글 양이 비교적 적고, 내용도 간단한 그림책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레오 리오니는 대부분의 글·그림 작가와는 달리 자기 그림책에 글까지 쓴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는 글보다는 그림을 염두에 둔 평가이다.

레오 리오니는 주로 꼴라주 기법을 사용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잘 다듬어진 형태, 군더더기 없는 모양과 선 , 화려한 색채, 적당한 여백, 유머가 넘치는 장면들 등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림이다. 비록 리오니의 작품들이 짧지만 철학적인 텍스트가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그의 책을 특별하게 하고, 아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그의 이런 그림이라 생각한다.

리오니는 "그림책은 문학의 복합성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말한 적 있다. 아직 글을 읽지 못한 아이들, 복잡한 구성과 동시에 쏟아지는 여러 사상들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청소년, 분량도 많고, 복잡한 구성의 문학 작품들로부터 떠나 명쾌한 인생관과 세상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어른들, 어릴적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림책은 아직 문자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독서를 시작하려는 아이들에게 독서 준비 과정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생각 아래 리오니는 80년대 초반부터 <수(Number)>, <글자(Letter)>, <단어(Word)> 등 일련의 글자 없는 그림책 시리즈를 펴냈다. 어린이들은 이를 통해 책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고, 독서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이런 일련의 노력 덕분에 영미권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 분야의 독자층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아동문학, 아니 문학 전반에 걸쳐 그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2) 어린 시절의 반영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레오 리오니의 작품들은 그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리오니는 삼촌의 영향을 받아 아주 유능하고 성실한 건축가였다. 아주 작은 파충류, 어류 같은 동물들을 좋아해서 많은 동물들을 수집했다. 그는 작은 다락방에 돌과 이끼를 깔고, 흙과 나무를 가져다가 사육장을 지었다. 이 사육장은 너무도 꼼꼼해서 마치 진짜 동물원 같았다고 한다.
이 곳에는 생쥐도 있고, 도마뱀도 기어다니고, 나비도 날고, 거북이와 가시고기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여름 내내 햇볕과 색깔, 이야기를 모으는 들쥐 시인, <새앙쥐와 태엽쥐>에 나오는 태엽쥐가 되어 인간에게 사랑 받고 싶어하는 생쥐, 마법사 도마뱀 등과 <으뜸 헤엄이>, <물고기는 물고기야>에 나오는 다양한 물고기들, <아주 신기한 알>에 나오는 악어와 개구리 등은 모두 어린 시절 리오니가 만든 사육장에 있었던 바로 그 동물들이다.

뿐만 아니라 한 인터뷰에서 리오니는 책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가 책에서 묘사한 바닷속, 오솔길, 들판 등도 그가 어릴 적에 사육장에 만들었던 실제 모래, 이끼, 바위, 물, 풀 등이라고 한다. 리오니는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리오니는 "좋은 어린이 책은 삶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과 기쁨을 잃지 않은 아직 어린이로 남아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나는 아직 어린이인 채로 있는 내 자신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기쁨을 위해,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그것을 위해 이 책을 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리오니는 좋은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거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되살려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대부분의 어린이 책 창작 활동을 뉴욕에 있는 아파트가 아니라 이탈리아 제노바에 있는 17세기 농장 풍의 집에서 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리오니가 직접 설계한 이 집은 그가 어린 시절 정성을 들인 사육장을 그대로 본떠 만든 집이라고 한다. 이 곳에도 제라늄이 피어 있고, 벌과 나비가 날고, 도마뱀이 기어다니고, 이끼가 잔뜩 낀 바위가 있다. 또 생쥐와 가시고기가 평화롭게 살고 있기도 하다.

3) 간단한 내용 속에 담긴 다차원적인 철학성

레오 리오니는 아무리 간결하고, 짧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림책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만 연령과 계층을 초월한 여러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 또한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리오니의 작품들은 이러한 그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책들이다.
예컨대 <프레드릭>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물질 문화와 정신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햇볕이 쨍쨍한 한여름에 다른 들쥐들은 겨울 양식을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프레드릭은 나무 그늘에 그냥 앉아 있기만 한다. 열심히 일하는 들쥐들이 비웃으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물으면 프레드릭은 햇빛을 모은다거나, 색깔을 모은다거나, 아니면 이야기를 모은다고 얼토당토 않은 말만 늘어놓는다.
그런데 정작 겨울이 되자 이 시인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른 쥐들은 모아 놓은 식량이 모두 동이 나자 침울해 한다. 그런데 프레드릭은 의기소침한 들쥐들에게 여름 내내 그가 모은 햇볕과 색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생쥐들은 이에 감동하여 다시 용기를 얻는다.


이 이야기는 이솝우화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를 풍자하는 작품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사회에는 경제 생활 외에도 다양한 문화 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이 없이는 인간은 삶의 의욕을 잃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결한 문체와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문화 비평가 호이징가의 말처럼 인간은 "유희적 존재"이며, "문화적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물질 문화와 정신 문화의 조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경제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편 <새앙쥐와 태엽쥐>에서는 사람들에게 늘 사랑 받는 태엽쥐가 되고 싶은 생쥐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자아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생쥐는 늘 사람들에게 쫓겨다녀야 하는 신세인데, 태엽쥐는 늘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존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생쥐는 태엽쥐가 망가져 버려진 것을 보게 된다. 자기 존재 의미였던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사랑, 영원할 것만 같던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이 깨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생쥐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원래 나의 모습을 찾고,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자아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생쥐는 마법사 도마뱀에게 자신의 태엽쥐를 진짜 생쥐로 바꿔 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이 누구이며, 세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모르는 태엽쥐에게 자아 정체성을 길러 주려 한 것이다.

이 밖에도 리오니의 <물고기는 물고기야>, <으뜸 헤엄이> 등도 세계와 나 자신의 존재 이유, 존재 가치, 세계 속에서 나의 역할 등을 깊게 탐구해 볼 수 있는 동화들이다.

이처럼 리오니의 작품들 속에는 세계와 나, 삶의 본질, 존재론적 물음 등 여러 형태의 철학적 의문과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는 물음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수준은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도록 여러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4) 어린이 책 창작에 대한 리오니의 생각

우리는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접할 때면, 그 작품을 쓴 작가는 분명히 어떤 영감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작품의 아이디어로 되살아나, 책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리오니는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리오니 자신도 그가 <꼬마 파랑과 꼬마 노랑>이라는 작품으로 어린이 책에 대뷰할 때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보게 되면서 작품 활동이 시작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꼬마 파랑과 꼬마 노랑>이 쓰여지게 된 개기, 리오니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장면들을 보면 리오니 자신도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데 리오니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그 가치를 오래도록 지속시키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라 주장한다. 물론 모호하긴 하지만,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머리 속에서 샘솟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만으로 작품을 구성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하다. 한 아이디어가 작품이 되어 나오기 위해서는 그 아이디어를 다듬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체 이야기 속에서 각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다듬고, 그림과 글을 조화시키는 등 일련의 다듬기 과정이 필요하다.

리오니에 따르면 이같은 일련의 다듬기 과정은 마치 "체스 게임"과 같다는 것이다. 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창작 과정에서는 한 수 한 수 둘 때 마다 상대편의 움직임을 생각해야 하고, 그래서 여러 번 의심도 하고, 머리 속으로 몇 번 말을 움직였다 되돌리기도 하고, 성공할 확률과 실패할 확률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한 수를 둘 수 있는 것처럼 창작 과정에서도 몇 번을 다시 그리고, 지우고, 이리 저리 옮겨 보기도 하고, 아야기를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한다는 것이다.

리오니에게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느냐고 물으면 그는 "그냥 열심히 하면서요"라고 좀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그런데 그게 진실인 것이다.

 

레오 리오니의 책들

     

     

     

     


 

◈참고문헌
Biographical Statement: 1972 Biography from Third Book of Junior Authors --1999 update

◈관련 사이트


http://www.edupaperback.org/authorbios/Lionni_Leo.html 

http://www.shrewsbury-ma.gov/schools/Beal/Curriculum/media/Lionni/leolionni.html

http://www.openkidzine.co.kr/webzine_sub.asp?no=513&aCode=01&page%5Fno=1&isLast

http://www.openkidzine.co.kr/webzine_sub.asp?no=209&aCode=01&page%5Fno=1&is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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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마음으로의 외출, 그림책 작가들과의 만남

우리는 타인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다른 사람의 그 무엇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다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아주 잘 찾아낼 뿐입니다.

                                                                                                                                        -  시린 sirini@netian.com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아이들이 만들어 논 찰흙 부조물이며 소꿉 놀이 재료가 주인을 잃어버린 채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제 유년을 감싸 안아 주었던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모모 생각이 났어요.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던, 기워 입은 커다란 코트와 빗질을 통 안 한 듯 보이는 삐죽 머리카락의 7살 난 꼬마숙녀 말이죠.


그런데 만약, 모모의 모습이 그림으로 형상화되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도 그 소녀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순간순간 모모와 닮아있는 꼬마의 모습이라도 유추해 낼 수 있었을까요!

어쨌든 저는 지금부터 어린이 책에 소개된 그림에 대해서, 그리고 그 그림이 인간 본연의 잠재적 능력인 '직관'에 수용되고 재창조되기까지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를 몇몇 사이트를 통해 말하려고 합니다.

 

일러스트와 텍스트


일러스트의 어원은 'to make light' 로서 보이지 않는 대상에 빛을 비추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즉 인간의 감정이나 사상 등에 시각적 효과를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일러스트를 백과사전적으로 정의하면 '텍스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통해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결국 텍스트와 일러스트 간의 상호종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죠.

어린이 책의 역사 속에서 그림책의 초시는 J. 코메니우스의 [세계도회(世界圖繪, Orbis Sensualium Pictus, 1658)] 입니다. 당시는 청교도들에 의해 삽화의 게재가 허가된 터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중요한 사물의 모습과 명칭, 그리고 인간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 책은 처음부터 반대를 무릅쓸 필요 같은 것은 없었지요. 그러다가 1823년 그림책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조지 크뤽생크의 [그림의 요정이야기(Grimm's Fairy Tales, 영역 판)]를 거쳐 찰스 디킨스와 리처드 도일, 존 러스킨, 빅토리아 시대의 존 테니엘과 아서 래컴 등의 초기 삽화가들이 등장합니다.

이후, 미국의 하워드 파일은 자기 책의 삽화를 그리면서, 이야기와 삽화를 통일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했지만, 사실상 삽화가가 아닌 그림작가로는 영국의 에드먼드 에반스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에반스는 다소 조잡스럽긴 해도 컬러 인쇄를 시도했다는데요. 마더 구스 동요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는 군요. 그리고 드디어 칼데콧 상으로 기려지는 인물 랜돌프 칼데콧이 등장했습니다. 칼데콧은 게이트 그리너웨이와 더불어 에반스가 발굴한 작가들인데, 붓선이 적고 투박한 동선의 묘사에 뛰어난 화가였다고 합니다. 이상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그림 작가들에 대한 자료는 'Early Illustrators of Children's Books from the 19th and 20th Centuries'를 참조하시도록.

 

현대 그림책의 출발을 알린 랜돌프 칼데콧



자, 그렇다면 칼데콧에 대해서 먼저 짚어봐야겠네요. 칼데콧은 1846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입니다. 어린시절 칼데콧은 동물과 나무 등의 스케치를 즐기던 소년이었고, 어른이 된 후 은행원으로 일하다 신문, 잡지 등에 만화와 삽화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전직을 했다는 군요. 칼데콧은 39세의 나이로 지병인 류머티즘을 앓다 죽습니다. 그때까지 그린 그림책이 모두 18권이고요, 그 중 13권이 마더 구스의 그림이라 네요.

위에서 말했듯이 칼데콧은 에반스를 통해 그림책을 내게 됩니다. 에반스가 반한 그의 그림은 [옛날의 크리스마스]라는 삽화였고요. 칼데콧의 그림은 "그림과 이야기의 절묘한 배합, 동작이 살아있는 선, 그림 곳곳에서 보여지는 해학과 재치로 현대 그림책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에서 매년 최고의 그림책을 그린 작가에게 주는 상이 칼데콧 상이 되었나 봅니다.

랜돌프 칼데콧은 칼데콧의 기념비적인 사이트입니다 (http://www.randolphcaldecott.org.uk/)

그의 작품과 연대기를 확인할 수 있고, 일년에 네번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뉴스레터와 각종 모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지요. 그러나 여느 사이트가 그러하듯 상업적인 요소도 다분합니다. 특별한 메뉴가 존재하는 곳은 아니지만 저는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는 그의 최후 작품인 [찰스톤에서 목화꾸러미를 싣고 있는 흑인들(Negroes unloading bales of cotton at Charleston, South Carolina, USA, 1886)]이라는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흑인의 서민적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에즈라 잭 키츠 (http://www.ezra-jack-keats.org/)

미국 그림책의 전성기는 1945년 이후였습니다. 그 중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면서 어린이의 갈등과 고통을 표현하려고 했던 모리스 샌닥 , 네덜란드 출신의 레오 리오니 , 지금 소개하고 있는 웹사이트의 작가 에즈러 잭 키츠 , 재미있고 매혹적인 학습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린 에릭 칼 , 극장 개봉한 영화 [슈렉]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윌리엄 스타이그 등은 각종 수상경력을 갖은 작가들이기도 하고요.

에즈라 잭 키츠는 폴란드계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뉴욕 브룩클린의 빈민가에서 자란 키츠는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고, 이 사이트의 메뉴 Keats characters를 보면 알 수 있듯 그의 작품 주인공은 모두 흑인입니다. 백인에 대한 증오 때문이라기보다는 흑인아이가 자신의 서민적인 정서에 훨씬 적합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에릭 칼과 같은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요, 때론 무늬가 들어있는 종이, 마른 잎, 천 조각과 오래된 발렌타인 데이 카드 같은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볼 때면, 배경으로 쓰인 키 높이 신호등, 붉은 벽돌담, 색 분필로 그려내는 낙서, 커다란 노랑꽃무늬의 벽지([휘파람을 불어요]) 등 흑인소년 피터가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묘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즈라 잭 키츠 사이트의 특징적인 부분은 'books, honors, arts' 라는 메뉴의 Fine art 부분에서 유화 분위기가 나는 키츠의 다른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 키츠의 화가로서의 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 글쎄요, 이걸 과연 게임이라고 불러야 할까, 의심스러운 'guessing game'. 키츠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이들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이 될 것 같군요.

 

'피터 래빗'의 작가, 비이트릭스 포터 (http://www.peterrabbit.co.uk/)


미국 그림책과는 달리 영국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간결한 짜임과 자유로운 그림 체로 희극적인 작품을 구사했던 존 버닝햄 , 그림책 삽화에 만화기법을 쓴 레이먼드 브릭스, 유아용 그림책에서 색연필을 소재로 한 섬세한 그림을 보여준 헬린 옥슨버리와 더불어, 이 사이트 그림의 모태가 된 비이트릭스 포터가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라고 볼 수 있는데요. 비이트릭스 포터는 칼데콧의 화풍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터는 주변생활의 잡다한 풍경들, 그 중에서도 작은 동물들을 관찰하여 메모를 해 두었다가 캐릭터를 완성하는 작가였다고 하네요. 이 말은 사이트의 메인을 보면 바로 확인하실 수가 있어요. 피터 래빗, 벤자민 버니, 지미마 퍼들 덕이 주요한 캐릭터인데, 특징적인 것은 스토리 버튼을 누르면 읽는 재미가 아니라 듣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언젠가 들어본 듯한 영어교재 속의 테입에서 듣던 목소리와 비슷해서 실망이지만요. 아, 그리고 'gift & books'에서는 아주 정중하게 쇼핑 몰을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사이트는 플래쉬로 제작되었고, 아무래도 교육용 컨텐츠들이 많아요. 물론 게임도 있지요. 아이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일본의 대표적인 삽화가, 이와사키 치히로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 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일본의 교코 마스오카 씨의 1994년 IBBY 회의 발표문에서
 보면 "일본의 도서시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 각국 어린이 문학들에 가장 열려진 시장이며 우리 일본 어린이들은 그것들의 열렬한 소비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100 년 동안 '서양을 만회하자'가 우리의 국민적 목표였고 일반적인 표어로 여겨졌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일본은 나름대로 많은 동화작가 내지는 그림작가를 배출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만 해도 이와사키 치히로, 하야시 아키코, 야시마 타로, 카나모리 사이지, 안노 미쓰마사 등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동양에서는 아마도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 그림작가의 박물관도 있습니다. 바로 이곳, '치히로 박물관'이 그곳입니다.

이와사키 치히로(http://www.chihiro.or.jp/english/index.htm)는 일본의 대표적인 삽화가이자 그림작가 입니다. 1917년에 태어나 1974년 간암으로 사망한 치히로는 그녀가 죽은 지 3년 뒤인 1977년에 박물관이 설립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나 봅니다. 아무렴요, "아이가 내 손가락을 부여 잡을 때마다 손을 조여 오는 그 힘을 사랑한다. 그토록 부드럽고 오동통한 손이 그렇게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다니. 그저 바라보며 스케치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런 내적인 움직임들을 그려낼 수 없다"며 스케치 없이 붓을 드는 작가였는걸요.

그녀는 서양의 수채화에 중국의 전통기법을 가미한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사이트는 그닥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치히로 박물관에 대한 안내와 작가소개, 그리고 숍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이 다예요. 그렇지만, 그녀의 일생을 담은 사진 페이지에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따듯해져 옴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작품 또한 그렇고요.

 

 

 

'미피'를 탄생시킨 딕 브루너


그 밖의 이미 국내에서 번역서로 출판된 동화그림책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는 독일의 동화 작가 미하엘 엔데, 그림책 작가 베르너 홀츠바르트, 오스트리아 출신 안토니 보라틴스키, 스웨덴의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네덜란드 태생 딕 브루너 등이 있습니다.

미피는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서 만난 토끼가 모델이라고 하는데요, 그 외에도 브루너가 탄생시킨 캐릭터는 뽀삐, 보리스, 스피너 존 등이 있다고 하네요. 브루너의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팬시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데요. 아마 그의 그림책 독자의 연령층이 1~7세이기 때문에 최대한 사물을 단순화시킨 탓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그의 그림은 밝고 선명한 색과 손으로 직접 그려 원화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뚜렷한 선 때문에 그닥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사이트는 아주 다양한 메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card는 물론, DIY 동화 캐릭터 팬시 '멀티 미디어'까지 등장하고요, 온라인 게임, 그리고 아주 까무러칠 만한 딕 부르너 송까지 들을 수가 있더군요(딕 부르너의 독일어사이트 http://www.nijntje.nl/).

 

수묵채색화의 쓸쓸함을 담아내는 한국 작가 김동성


한국 그림책의 역사는 90년대에 들어서야 눈에 보이는 발전이 있었어요. 이 시기에는 출판부터 표지, 삽화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문화를 담으려는 그림책들이 가장 눈에 띄었고, 소중한 우리의 것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주요한 경향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을 강요하는 그림책들은 다소 '한국적'이라는 단어에 얽매이거나 또는 작가의 포지션에 따라 독자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야말로 조우 되지 못한 그저 학습일 뿐이죠. 그림책은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점수 매겨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국 어린이책 작가는 동화작가 정채봉 , 그림작가 권윤덕, 류재수, 임길택, 김동성 등이 있습니다.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이 사이트는 그림작가 김동성이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고요. 그 이유 때문에 게시판에는 그림책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던져놓은 질문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작가 김동성의 그림은 유독 쓸쓸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수묵 채색화의 동양적인 화풍을 주로 쓴다고 하네요.

김동성의 사이트(http://kds.psshee.com/)를 보면서 얻는 수확이라면 그의 그림책을 사이트를 통해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이예요. 그리고, 메뉴 'etc'의 그림책 관련 스크랩에선 그림책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마지막 팁으로 소개할 메뉴는 재즈를 좋아하는 작가의 앨범 리뷰 코너. 개인 홈페이지이기에 작가 개인의 취향을 맘껏 엿볼 수 있기도 하네요.

"어린이는 잠재된 과거의 경험과 내적 요구 및 생활경험 등을 주위의 사물과 함께 조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창조하고 상상한다" 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것은 비단 어린이한테만 국한된 말이 아닐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타인에게서 어떤 것을 체험할 때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혹은 자신에게는 없는 다른 사람의 그 무엇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다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아주 잘 찾아낼 뿐입니다. 따라서, 그림책에서 그림이란 아이, 어른의 구별 없이 자신을 거스르지 않고 가슴 깊이 그것을 받아들일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http://www.cultizen.co.kr/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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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향토색 짙은 그림책 화가 김동성

김동성은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이다. 그 역시 매우 사실적인 방법으로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며 많은 그림책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채인선 글, 재미마주, 1998) 『안내견 탄실이』(고정욱 글, 대교출판, 2000) 『비나리 달이네 집』 (권정생 글, 낮은산, 2001) 『하늘길』(이문열 글, 다림, 2001) 등에 일러스트를 그려온 역량 있는 작가이다.

 

특히 그림책 『메아리』(이주홍 글, 길벗어린이, 2001)에서는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덕분에 그의 수묵 채색 그림이 힘껏 깊이를 품어내고 있다. 김동성에게는 부드러움과 넘쳐나는 힘이 동시에 있다.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담아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농익은 그의 붓질은 어느 것 하나도 허술하게 그리는 법이 없다.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도 매우 자연스럽고 세련되다.

 

『메아리』에는 주인공 돌이가 산에서 헤매는 장면이 압권인데, 한 폭의 그윽한 동양화를 감상하는 깊이가 있고, 주인공 돌이의 심기를 온화하게 감싸는 듯, 길을 잃은 돌이의 공포를 스산하게 내뿜는 듯 복합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독특함이 살아 꿈틀댄다.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풀내가 느껴지는 산에서 어느덧 읽는 이에게마저 메아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북치는 곰과 이주홍 동화나라』(이주홍 글, 웅진닷컴, 2000)의 「은행잎 하나」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한 가지 색조의 그림에, 오래된 은행 나뭇잎만이 유난히 샛노랗다. 이 작품은 은행잎이 한창일 때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잊지 못할 그 이미지를 담아냈다. 노오란 그 색들이 바람에 파르락거리며 흔들리는 느낌....... 너무나 사실적인 그림에서 때로 가장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는 그런 경험을 선물한다.


 


 

 




사실성이 환상성에 가 닿을 수 있는 이 진실 때문에, 사실적인 묘사에 주력하면서도 생략과 강조의 묘미를 잃지 않는 그림들은 항상 온기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두 작가의 그림 장면들은 영화적 앵글을 가진 듯 입체적이다.

특히, 김동성의 그림은 유화나 서양의 다른 재료들이 주는 맛과 탁월하게 다른, 어떤 가능성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수묵의 깊이는 안료를 흡수하는 종이의 호흡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수묵은 서양의 다른 채색 방법들보다 훨씬 깊은 호흡을 가진다. 수묵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종이는 발색부터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이런 물성의 차이는 미묘한 분위기와 그대로 직결된다. 부드러움과 힘을 동시에 갖게 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은 종이와의 오랜 숙련의 결과로 빚어진 선묘의 맛인 것이다.

 

 

 

 





그리고 동양화적 방법이 갖는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힘이 있다. 동양화는 관념의 세계를 그린다는 말이 있다. 물결의 무늬나 많은 도상의 형태는 이미 완전한 패턴의 디자인적인 미학이 있다. 그러니까 매우 사실적인 묘사의 방식과 관념적인 묘사의 방식이 함께 어우러져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신비한 점이 이미 있어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그림은 『북치는 곰과 이주홍 동화나라』에서 [북치는 곰]에서 느낄 수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 [바리공주]에 참여하였다.

 

 

 

 

 

홈페이지 http://kds.psshee.com/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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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노래와 이야기에 빛을 입히는 작가, 심스 태백


싹뚝싹뚝 자르고 붙이고 색칠해
옛 노래와 이야기에 빛을 입히는 작가, 심스 태백

하나하면 할머니가 지팡이 짚고서 좔좔좔 / 두울하면 두부 장수 두부를 판다고 좔좔좔 세엣하면 새색시가 거울을 본다고 좔좔좔 / 네엣하면 냇가에서 빨래를 한다고 좔좔좔……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네요. 십 수년도 더 전에 '쓰리랑 부부'라는 개그맨 콤비가 불러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던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처음 만들어 부른 건 쓰리랑 부부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게 만들어져 어린이들 사이에서 불리던 노래였지요. 그들은 그저 이 노래를 기억해내 잘 써먹은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쓰리랑 부부'라는 이름이 세월에 묻혀버린 지금도 이 노래는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민요라 하기에도 동요라 하기에도 뭔가 모자란 느낌이 있는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거나 이런 노래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만들어져 회자되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노래들을 가지고 아주 독창적이고도 유머러스한 그림책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작가, 심스 태백이 바로 그 사람이지요.

심스 태백은 뉴요커입니다. 젊은 예술가들의 도시, 세련된 멋쟁이들의 도시, 뉴욕 에서 자랐지요. 예술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술가인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에 별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가 열성적으로 미술 레슨에 끌고 다녔다고 하네요. 타고난 재능 덕분인지 어머니의 치맛바람 덕분인지 그는 마침내 'Music & Art High School'라는 유명 예고에 입학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아, 예술은 정말 즐길만한 것이구나!' 하는 '필'을 받아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합니다.
하지만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사는 법.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은 심스 태백은 그래픽 디자인, 아트 디렉팅으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일을 아주 사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생겨났지요. 자기가 직접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그림책을 만들자니 그림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글에는 영 자신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1940년대부터 미국 전역에서 불리던 작자 미상의 노래 '파리 한 마리를 삼킨 할머니가 있었다네(There was an old lady who swallowed a fly)'를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지요.
별 뜻도 없고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하지만 생명력만은 강한 이 노래는 심스 태백의 손에 의해 멋진 그림책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바로 <옛날 옛날에 파리 한 마리를 꿀꺽 삼킨 할머니가 살았는데요>라는 책이지요.


그렇다고 이 그림책이 단숨에 심스 태백을 스타로 만들어준 건 아니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정식으로 출판되기까지 무려 열두 차례나 거절을 당했거든요. 같은 내용의 그림책이 무려 세 권이나 나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열두 번 가까이 거절당했습니다. 여기가 물어 보면 못 내겠소, 저기 가 물어 봐도 이건 이미 많이 나왔잖소. 작가로선 여태 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심스 태백의 그림책 만큼 '파리 한 마리를 삼킨 할머니가 있었다네'라는 노래의 묘미를 잘 살려낸, 게다가 새롭기까지 한 책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바이킹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출간되었고, 1988년에는 심스 태백에게 칼데콧 상의 영예까지 안겨 주었으니까요.

심스 태백은 내친 김에 새로운 그림책을 하나 더 내 놓았지요(심스 태백은 유태계 미국인이거든요). 이 책
은 원래 Yiddish folk song인 “I had a Little Overcoat”라는 노래를 변형시켜 만들었대요. ―Yiddish는 동유럽계통의 유태인들이 쓰는 언어랍니다―
그게 바로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라는 책입니다. 이 책 역시 2000년에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심스 태백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답니다. 이 책은 사실 1976년에 랜덤하우스에서 이미 한 번 나왔던 책입니다. 그때는 사실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컬트 북 정도로 여겼지요. 1999년에는 독자들이 좀 더 포용력이 생겼는지 아니면 미국 교육이 다문화 교육으로 바뀌어서 그랬는지, 바이킹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그림책 작가라서가 아니라 맥도날드의 '해피밀 세트(어린이용 햄버거 세트 아시죠?)' 포장지를 처음으로 도안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인정해 준다는군요(--;).

심스 태백의 그림책을 보고 있자면 시골 장터나 서커스장, 민속 축제 같은 델 다녀온 기분이 듭니다. 흥겹고 가슴 두근거리고, 조금은 그리운 기분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책이 촌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옛 노래나 이야기가 지닌 생명력을 잘 살려내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것도 아주 새롭고 세련된 방식으로요.

심스 태백은 다양한 재료와 기법들을 섞어 그리는 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연필, 펜, 크레용, 수채 물감, 과슈(아라비아고무로 반죽한 불투명 수채 물감)에서 꼴라쥬, 구멍 뚫기 기법(die cut hole)까지……. 이런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들이 옛 노래나 이야기를 즐겨 텍스트로 차용하는 그의 그림책에 새로움을 더해주지요. 이를테면 구멍 뚫기 기법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꼴라쥬는 단순하고 절제된 텍스트에 없는 디테일들을 채워주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재료와 기법을 섞어 쓰기만 한다고 다 심스 태백 같은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우리 나라에도 잊혀져 가는 옛 노래나 이야기에 새로운 빛을 입혀줄 수 있는 작가들이 하루빨리 나타나 줬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시각예술학교와 시러큐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아트 디렉터·그래픽 디자이너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35편이 넘는 아동 도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0년 칼데콧 상을 수상한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와 <누가 음매~ 그랬니?>, <어유, 시끄러워!>등의 그림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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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7-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태계 미국인, 이었구나.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했죠.^^

1004ajo 2004-07-0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그렇죠? 책도 독특하구요. 밀키웨이님 홈에서 퍼왔어요.
요즘 작가들에 대한 공부 아주 열심히 해 보려고 해요. 도움 많이 받고 있지요.
점심은 드셨나요?
아이들이 햇살이 없으니 자전거 타러 나갔다가 들어 왔어요. 점심 먹고 다시 앉아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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