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밀키웨이 > 노래와 이야기에 빛을 입히는 작가, 심스 태백
싹뚝싹뚝 자르고 붙이고 색칠해
옛 노래와 이야기에 빛을 입히는 작가, 심스 태백
하나하면 할머니가 지팡이 짚고서 좔좔좔 / 두울하면 두부 장수 두부를 판다고 좔좔좔 세엣하면 새색시가 거울을 본다고 좔좔좔 / 네엣하면 냇가에서 빨래를 한다고 좔좔좔……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네요. 십 수년도 더 전에 '쓰리랑 부부'라는 개그맨 콤비가 불러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던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처음 만들어 부른 건 쓰리랑 부부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게 만들어져 어린이들 사이에서 불리던 노래였지요. 그들은 그저 이 노래를 기억해내 잘 써먹은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쓰리랑 부부'라는 이름이 세월에 묻혀버린 지금도 이 노래는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민요라 하기에도 동요라 하기에도 뭔가 모자란 느낌이 있는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거나 이런 노래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만들어져 회자되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노래들을 가지고 아주 독창적이고도 유머러스한 그림책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작가, 심스 태백이 바로 그 사람이지요.
심스 태백은 뉴요커입니다. 젊은 예술가들의 도시, 세련된 멋쟁이들의 도시, 뉴욕 에서 자랐지요. 예술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술가인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에 별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가 열성적으로 미술 레슨에 끌고 다녔다고 하네요. 타고난 재능 덕분인지 어머니의 치맛바람 덕분인지 그는 마침내 'Music & Art High School'라는 유명 예고에 입학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아, 예술은 정말 즐길만한 것이구나!' 하는 '필'을 받아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합니다.
하지만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사는 법.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은 심스 태백은 그래픽 디자인, 아트 디렉팅으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일을 아주 사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생겨났지요. 자기가 직접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그림책을 만들자니 그림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글에는 영 자신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1940년대부터 미국 전역에서 불리던 작자 미상의 노래 '파리 한 마리를 삼킨 할머니가 있었다네(There was an old lady who swallowed a fly)'를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지요.
별 뜻도 없고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하지만 생명력만은 강한 이 노래는 심스 태백의 손에 의해 멋진 그림책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바로 <옛날 옛날에 파리 한 마리를 꿀꺽 삼킨 할머니가 살았는데요>라는 책이지요.
그렇다고 이 그림책이 단숨에 심스 태백을 스타로 만들어준 건 아니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정식으로 출판되기까지 무려 열두 차례나 거절을 당했거든요. 같은 내용의 그림책이 무려 세 권이나 나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열두 번 가까이 거절당했습니다. 여기가 물어 보면 못 내겠소, 저기 가 물어 봐도 이건 이미 많이 나왔잖소. 작가로선 여태 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심스 태백의 그림책 만큼 '파리 한 마리를 삼킨 할머니가 있었다네'라는 노래의 묘미를 잘 살려낸, 게다가 새롭기까지 한 책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바이킹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출간되었고, 1988년에는 심스 태백에게 칼데콧 상의 영예까지 안겨 주었으니까요.
심스 태백은 내친 김에 새로운 그림책을 하나 더 내 놓았지요(심스 태백은 유태계 미국인이거든요). 이 책
은 원래 Yiddish folk song인 “I had a Little Overcoat”라는 노래를 변형시켜 만들었대요. ―Yiddish는 동유럽계통의 유태인들이 쓰는 언어랍니다―
그게 바로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라는 책입니다. 이 책 역시 2000년에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심스 태백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답니다. 이 책은 사실 1976년에 랜덤하우스에서 이미 한 번 나왔던 책입니다. 그때는 사실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컬트 북 정도로 여겼지요. 1999년에는 독자들이 좀 더 포용력이 생겼는지 아니면 미국 교육이 다문화 교육으로 바뀌어서 그랬는지, 바이킹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그림책 작가라서가 아니라 맥도날드의 '해피밀 세트(어린이용 햄버거 세트 아시죠?)' 포장지를 처음으로 도안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인정해 준다는군요(--;).
심스 태백의 그림책을 보고 있자면 시골 장터나 서커스장, 민속 축제 같은 델 다녀온 기분이 듭니다. 흥겹고 가슴 두근거리고, 조금은 그리운 기분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책이 촌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옛 노래나 이야기가 지닌 생명력을 잘 살려내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것도 아주 새롭고 세련된 방식으로요.
심스 태백은 다양한 재료와 기법들을 섞어 그리는 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연필, 펜, 크레용, 수채 물감, 과슈(아라비아고무로 반죽한 불투명 수채 물감)에서 꼴라쥬, 구멍 뚫기 기법(die cut hole)까지……. 이런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들이 옛 노래나 이야기를 즐겨 텍스트로 차용하는 그의 그림책에 새로움을 더해주지요. 이를테면 구멍 뚫기 기법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꼴라쥬는 단순하고 절제된 텍스트에 없는 디테일들을 채워주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재료와 기법을 섞어 쓰기만 한다고 다 심스 태백 같은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우리 나라에도 잊혀져 가는 옛 노래나 이야기에 새로운 빛을 입혀줄 수 있는 작가들이 하루빨리 나타나 줬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시각예술학교와 시러큐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아트 디렉터·그래픽 디자이너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35편이 넘는 아동 도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0년 칼데콧 상을 수상한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와 <누가 음매~ 그랬니?>, <어유, 시끄러워!>등의 그림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