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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광수생각
박광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다.'옥탑방 고양이'같은 드라마는 나오기도 전,연애하는 남자가 바뀌면 화장실의 칫솔도 바뀌는 것을 심상하게 여기던 친구(그 아이는 혼자서 원룸에 살았다).먼저 자본 다음에 연애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던 그 아이는,아이를 낳아야 할지 울며불며 고민하다가도 엉뚱한 남자를 산부인과에 보호자로 데려가는,흔히 세상의 일반적인 잣대로 보자면 매우 '나쁜 년'이었다.어쨌든 그 아이는 나의 친구였고,친구이다.그런 일이 있거나,있고 난 후 지금이나.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저,저,저런 몹쓸!'이라고 분개하는 이유는,바로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숨기고 싶은 모습-혹은 그림자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니까 결국 어떤 일에 과격하게 흥분하며 치를 떠는 사람의 알맹이를 꺼내 보면,그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 미칠 듯한 욕망이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다는 거다.
<광수생각>으로 따땃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펼쳐내던 만화가 한 명은 병역기피니,이혼과 재혼이니 하는 문제들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어쩌면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던 가장 심각한 이유는,그의 특이하고 귀여운 글씨체를 보며 단편적으로 꿰어맞췄던 넉넉하고 푸짐한 만화가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불한당'과 '나쁜 놈'으로 변했기 때문에,그것이 세상 모든 일의 속성이며 또한 우리 자신의 속성이라는 보기 싫은 사실을 맞닥뜨리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결국 요는,나쁜 놈 나쁜 년 하지만,우리도 그로부터 완전히, 씻은 듯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박광수라는 한 개인이 사회의 불특정 다수들에게 두드려 맞으며 어떤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며 그 후의 일담이기도 하다. 법정 스님처럼 산골 깊은 곳에 화전민이 버린 움막 속에서 산다면야 위대한 깨달음을 얻겠지만,결국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사는 뻔한 속세에서의 깨달음에서 위대성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그것은 흥! 택도 없는 소리다.나는 간혹 쿠쿡,웃기도 하고 건덩건덩 페이지를 넘겨가며 이 책을 읽었다.박광수는 아직 '솔직할' 뿐이고,그 솔직함을 넘어서 하나의 '초월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하기야 자기는 꼴통이고파,라는 이야기를 책 시작하자마자 번듯이 써놓는 일개 '삼류' 만화가에게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남에게 구걸하는 자보다 구걸하는 자를 외면하는 자의 영혼이 더 병들어 있는 것이라고.위대하든,아니든,결국 깨달음은 어떤 엇비슷한 길로 통하게 마련이다.나쁜 놈,나쁜 년에게 흥분하여 삿대질을 하는 사람은,그들보다 더욱 병들어 있는 '나쁜' 연놈이 아닐까.특히나 인터넷 시대,익명성의 방패 뒤에서 왁왁 떠드는 사람들이란.이 책을 읽고 확실히 깨달았다.박광수는 꼴통이고,삼류 만화가며,뚱땡이에 결혼도 두 번 했다는 것을.그런데 그게 어떤가.만화가는 일류만 있어야 하고,결혼 두 번 하는 것이 죄라도 되냔 말이다.공인公人은 어째야 하느니? 그럼 매일 열애설을 TV프로그램과 일간스포츠에서 펑펑 떠뜨리며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은 멋있고 예쁜 배우여야만 용서된단 말인가.옆집 용자 아줌마의 사랑은 불륜,나의 사랑은 로맨스?
당당한 사람이 모두 솔직한 것은 아니지만(정치인을 보랏) 솔직함은 필연적으로 당당함을 수반한다.사람들이 상상으로만 마구 부풀려 놨던 따땃하고 후덕한 만화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나는 이 솔직하고 당당해진 만화가를 기꺼이 수긍하련다.나와는 꽤 아구가 안 맞기도 하고 찝찝스러운 기분도 가끔 들지만,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 자신조차 100% 맘에 들지는 않는 이 세상에서.다만 대한민국 한 남자의 솔직함을 엿본 나로서는 스스로 관음증의 주체가 된 것 같아(아,그러나 나는 실컷 백지영 비디오를 보고나서 백양을 욕하는 어처구니없는 땡땡땡은 되지 않을 것이다)미안스러운 마음에 별 셋을 준다.어쨌든 솔직한 나의 친구는 여전히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고 있고,그 아이의 연애에 대해 나는 그저 때로 파이팅을 때로는 위로를 하며 지켜볼 뿐.그것이 '나' 아닌 '남'을 대하는 태도의 기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