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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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읽었을 것 같지만, 정작 읽지 않았을 것 같아 골랐다. '곰스크'란 지명이 왠지 실제로 있을 것 같기도 하고.해서 호기심에 검색까지 해보았다는..  '곰스크' 를 상호로 이용하는 팬션도 있는 듯 하다.  


두껍지 않은 책이라, 중편집정도의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단편집이었다.'곰스크로 가는 기차' 와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이 특히 좋았고, '양귀비'는 역자후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더 이해되는 마음이 컸다. 서로 다른 이야기인듯 하면서도, 곰스크... 단편에 대한 해석을 '철학자...'에서 한 줄로 설명받은 기분이 들었다. 

곰스크로 떠나려는 남자를 여자는 그녀의 고집(?)으로 그곳으로 가는 걸 포기(?)하게 만든다. 남편입장에서는 포기였고, 아내입장에서는 만류였을게다. 서로가 다른 꿈을 꾸고 있었으니까, 남편은 꿈을 쫓는 것이 중요했고, 아내는 현실이 중요했다.그런데 구체적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남자는 곰스크로 가지 못했던 건 아닐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두려워 꿈을 찾아 떠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 같은.그런데 운명이란 것이 거창한가? 라고 질문하는 기분을 느꼈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59~61쪽



남자가 곰스크로 가지 못한 것이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한 것이 아니란 해석으로 읽혀진 것이 신선했다. 이것이 운명이다.라는 말이 체념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진 기분... 그래서일까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에서 운명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정리 받은 기분이 들었다. 운명을 대하는 자세는 철학자처럼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끝임없이 움직임 속에서 '살아 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은 아닐까.. 곰스크로 남자는 떠나지 못했지만,그래서 여전히 자신만의 무엇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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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의 글도 없는 찐(?)그림책, 유난히 시선을 끌었던 건 산위에 미술관이 있다는 설정이었다. 뮤지엄 산이란 곳도 있으니.. 그닥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그러나 정말 산위에 덩그러니 미술관뮤지엄(만) 있다면...여러상상을 하게 되더라는 그때 공교롭게 재미난 시집의 제목 발견










절묘한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하지 못하고.. 있었는데,나는 이 집을 곧 읽게 될 예정이다.^^


그리고 졸라의 <작품>에서 불쑥 '산....'이 언급되는 순간 산위미술관에 나는 하나의 상상이 더해졌다.









"내겐 자극이 필요해...아! 아직 산 밑에 서 있는 자네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아마 아직 잘 모를 테지! 힘센 다리도 있겠다.용기도 있겠다.이제 산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잖아! 그런데 막상 그 위로 올라가고 나면 얼어 죽을! 고통이 다시 시작된다네.그거야말로 진짜 고문이지. 주먹들이 막 날아오고 너무 빨리 추락한다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새로운 노력을 해야 된단 말일세!...난 장담할 수 있네! 아래에 있을 때가 좋다고.그때는 도처에 해야 할 일뿐이잖나(...)"/142쪽












그림을 통해 상상하는 재미에(만) 빠져든 탓에, 왜 산위에 미술관이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하지 못했다. 졸라의 <작품>을 읽으면서, 남자가 꾸역꾸역 산위에 오른 미술관에서 수만가지 하게 된 상상은... 추락할지도 모를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문동시집은 대체적으로 어려워 늘 제목만 보고 패스할 때가 많았는데 ' 산 위의 미술관'을 어떻게 그려냈을지..시집이 궁금해졌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읽게 될 예정이다.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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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질문~~

그는 엄연한 사실이 자주 사실같이 보이지 않는 것에 놀랐다.그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또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비교해 볼 때 틀릴 때가 많았던 것이다/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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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덕분(?)에 일년 전 <오직, 그림>을 읽겠다 약속했던 사실을 알았다. 냉큼 도서관에서 빌려와 휘리릭 페이지를 넘겨 눈에 들어온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컵이 마치 화가 난, 혹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혀져서 피식 웃음이 났다. 이 그림을 설명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물을 사유하게 만드는 그림'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아니, 비로서 '희생양' 이란 그림을 그린 이유도 알겠다. 화가의 신분이 수도였던 거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을 읽으면서 표지 작품이 궁금해서 당시에도 아마 화가 이름을 검색해 보게 되었고..그러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도 읽어 보겠노라.. 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르네선생의 <희생양>은 읽지 못하고 있다.  '컵 속의 물과 장미' 그림과 '하나님의 어린양'은 같은 화가의 그림이란 생각을 하기 쉽지가 않다.그런데 굳이 컵 속..의 정물화를 그린 화가의 신분이 수도사라는 설명 때문이 아니라, 그림에서 어떤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분명하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고요함,시선의 깊이일텐데..나는 사물들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느낌에 한표를 주고 싶다. 아무리 봐도 컵의 표정에서 사람의 감정이 읽혀져서... 이제 화가와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을 들어 볼 차례다.


"세비야를 활동무대로 삼은 수도사이기도 했던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은 특히 종교화와 정물화로 명성을 얻었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그는 깊이 있는 사실주의와 단순한 구도 및 색채와 결합된 조각적 형태를 명확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의 정물은 정지된 사물 이상의 것으로서 마치 명상에 의해 존재의 신비를 꿰뚫는 것처럼 보인다(...)"/80쪽


"컵에 담긴 깨끗한 물은 정화를, 레몬은 부활절을 장미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한다.이 그림은 마리아를 기원하며 자신의 죄를 사하여달라는 뜻이다. 매우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우리의 모든 감각이 일깨워진다"/82쪽










설명대로라면 나는 완전한 오독을 했다. 변명하자면, 그림 속 정물들의 상징을 알 수 없고(종교인이라면 알았을까..) 내 눈에 그림 속 레몬도 보이지 않았다.(보였다고 달라지지도 않았을 게다..)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건 결연한 느낌으로 전달 된 '컵의 표정' 일 뿐. 그런데 예술에서 '사물' 이란 것이 기꺼이 오독으로 읽혀져도.,.읽혀질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받은 기분이다. 화가 수르바란의 의도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 그림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물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감각에 대한 단호한 몰입을 말한다. 이 그림은 더없이 감각적이도 촉각적이다. 한 개인의 눈과 몸, 감각에 신경이 집중된 이미지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망막에 와닿는다. 그러는 순간 우리 몸은 거대한 더듬이가 되어 저 사물의 관능적인 피부 위에서 조심스럽게 떨린다"/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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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시간도 이렇게나 다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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