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뮤지엄
마누엘 마르솔 그림, 하비에르 사에스 카스탄 기획 / 로그프레스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도서관이 가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처음에는 책을 빌리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는데,언제부터인가 책방 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슬렁 거리다,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아니 발견하는 기쁨 '뮤지엄'은 그렇게 알게 된 책이다.
무표정한 남자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상상(?)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표정' 이란 감정 밖에는 읽혀지지 않았다.

마치 나무들이 차를 타고 오는 이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화를 보며 내 마음대로 하는 오독이라 생각했는데... <뮤지엄>은 오독이 허락(?) 된 책이었다. 단 한 줄의 글도 없는 그림책인데, 뮤지엄이다. 마음대로 허락된 상상인건데.. 산위에 있는 뮤지엄은 히치콕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미 마법은 거기서 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입장객을 응시한듯한 예사롭지 않은 눈동자... 상상할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보다 싶다. 이런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림 속 장면들이 현실 밖으로 나와 버린다. 남자는 어떤 마음을 품었길래, 그림 속 장면들이 마치 자신에게 실제 일어나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 걸까.....

그림책이니까, 텍스트 한 줄 없는 것에 불만은 없다. 처음에만 살짝 당황 했을 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제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남자는 그림을 온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저와 같은 상상을 하며 그림을 관람한 적은 없었으니까. 다만, 남자의 표정이 내내 우울해 있었으므로, 그림 속 상황을 저와 같이 상상한 이유에는, 뭔가 다른 복잡한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집요한 물음이 따라왔을 뿐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신이 되기는 어렵다>에서 그림 속 장면을 생각해 볼 만한 문장과 만났다.

"(...)때로는 공포에 휩싸여 내가 연구소 직원이 아니라 그 연구소 박물관의 전시품, 봉건주의 상인공화국의 대법관이라는 전시품은 아닐까,박물관에 내가 진열된 전시실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네. 가장 두려운 게 뭔지 아나,역활이 되어 버리는 걸세(...)"/65쪽
그림을 마주한 남자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우울한 표정에서 우울하지 않을수도 있을 표정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남자는 순간순간, 자신이 그림에 갇혀진 대상이라면..그런 공포를 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뮤지엄을 불태워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이렇게 쓰고 보니 '뮤지엄' 이란 그림책이 내게는 퍽 공포스러운 감상기가 되었다.<신이 되기는 어렵다>를 읽게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퍼스럽게 읽혀지지는 않았을게 분명하다. 그림책을 그림책으로(만) 감상하지 못하게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텍스트 덕분에 남자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