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김칼리다. 태어난 곳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하얀 울타리 옆 풀숲. 누군가가 나를 핥아주는 가운데 시커먼 괴물체가 옆에 들러붙어서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모른다. 
˝새댁을 꼭 닮은 딸이오! 새댁, 애썼소!˝
우리동네 산파 까미 할머니였다. 앞이 흐릿했고 냄새도 잘 맡을 수 없었지만 배가 고팠다.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는데 아까 그 시커먼 것들이 앞을 가로막아서 땅에 뭐 떨어진 건 없나 찾아야 했다. 나중에 눈을 뜨고야 알게 되었지만 그 시커먼 것들은 언니와 오빠였다. 나와는 1도 닮지 않았다. 울엄마 붕어빵은 나 김칼리다. 언니는 나보다도 작았고 힘이 좀 없었다. 오빠는 통나무같이 우람하다. 엄마 젖을 먹으려고 내가 앙증맞게 고개를 돌렸는데 그 커다란 왕발로 나를 밀치는 통에 욕을 안하려다 했더니 체통이 절로 무너진다. 

˝엄마, 우리는 왜 이렇게 달라요? 아빠는 어떤 고양이였어요? 왜 언니는 나보다 작죠?˝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이는 멋진 고양이였지. 네 오빠가 그이를 쏙 빼닮았구나.˝
아빠 이야기를 할 때 엄마 눈은 늘 먼 곳을 바라본다.
˝태평스런 성격에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거기다 언제나 당당했어. 어둠속에서 먹잇감을 낚아챌 땐 여우같았어. 그 목털 하며..˝
˝하지만 엄마, 여우는 개과이고 우리는 고양이인데..˝
날 흘겨보는 엄마의 눈빛이 위기감을 조성했기에 난 모험을 떠나야겠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산책을 할 시간은 아니었지만 언니와 오빠도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기에 나갈 이유는 충분했다. 

˝너는 누구냐˝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빛깔의 요상한 고양이가 나를 불러세웠다.
˝저는 그냥 고양이인데요. 당신은 누구셔요?‘
˝후훗 인간과 살지 않는 아깽이가 이렇게 엄마에게 삐져서 나오면 좋지 않단다. 얼른 들어가렴.˝
˝어머나,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시죠?˝
˝이렇게 어린 아기를 산책하러 보내는 인간은 없지. 게다가 넌 지금 그루밍도 반쪽만 되어 있잖니? 엄마가 그루밍해주다가 뭔가 못마땅해서 그만뒀다는 뜻이지. 즉, 너는 엄마한테 뭔가로 빈축을 산 게로구나. 너희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너희를 먹여 살리는데 그러면 못써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여기는 인간에게 의탁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단다.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을 만나는 게 호강의 지름길이긴 한데..˝
요상한 빛깔 고양이가 말이 너무 길어져서 나는 자못 궁금한 척 다시 물어보았다. 내가 고객센터 직원도 아닌데 왜 자기 말만 한단 말인가.
˝그런데 당신은 누구셔요? 어쩌면 그렇게 뱃살이 참치처럼 두둑하셔요?˝
˝나는 저 초록색 지붕 집에 사는 앤이라고 해. 그린 게이블스의 앤이라는 책도 내 전생에 나왔지.˝
요상한 고양이는 내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자기처럼 위풍당당한 풍채의 고양이를 일컬어 뚱냥이라고 한다는 것과, 세상에는 캐리어 캣과 집 캣이 있다는 것 하며, 본인은 멀리 러시아에서 건너온 러시안 블루라는 것, 그리고 나는 고등어 태비라는 것. 이 대목에서 그 고양이는 갑자기 고등어가 먹고 싶다며 뒤뚱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등어 태비..고등어..언젠가는 나도 바다를 볼 수 있을까? 그러면 고등어처럼 헤엄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때가 속편한 순진한 시절이었다. 



초록지붕 앤 뚱냥이가 어디론가 뒤뚱뒤뚱 가버린 다음 얌전히 풀밭에 앉아 명상을 하려는데 어디선가 흰 나비가 보였다. 그래! 맹수로 태어났으니 실력을 갈고닦아 보자! 모차르트는 내 나이 무렵 바이엘도 떼고 교향곡 작곡도 시작했을것 같기도 한데 ‘여전사 김칼리‘로 이름을 날려 비단옷을 입고 엄마와 언니 오빠에게 돌아가면, 날 노려보았던 것을 후회할거야! 
흰 날개가 팔랑팔랑 내 눈도 팔랑팔랑 조그만 것이 뭐가 저렇게 날렵하단 말인가 간절하면 하늘이 응답한다는데 몸을 날려서 잡아야지!!!

너무 힘차게 날렸나보다. 

공포영화를 보면 놀랄 때 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던데 너무 놀라니 목소리조차 나오질 않았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려고 했는데 몸이 붕 뜨더니 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옆구리는 왜 이렇게 아프고 왜 이렇게 어지럽지..뭔가 허리와 얼마 있지도 않은 내 뱃살을 바짝 조여왔다. 점점 파고들면서 누군가 나를 꽉 움켜잡는 것이......아프고 아득하다. 이렇게 아득한건 처음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땅이 내게로 다가왔다. 사뿐하고 가뿐하게 몸이 가벼워지더니 커다란 노란 눈이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커다란 두 눈. 갈고리같은 강단있는 주둥이. 눈이 너무 날카로워서 쳐다만 봐도 화장실이 막 가고싶었다. 
˝다..당신은 누구세요? 저는 칼리라고 하는데요......˝
˝헙!!!!!!˝
내가 ‘헙‘의 뜻을 열심히 생각하려는데 커다란 생명체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더니 푸드덕 소리를 냈다.
˝저는 고양이에요. 그냥 고양이요.˝
˝세상에, 커다란 쥐새끼라고 생각했는데 넌 아깽이였구나. 배가 고파서 대충 봤더니..˝
˝당신은 누구세요? 처음 뵙는데요......˝
˝나는 *메이블이라고 해. 아직 어린 참매란다. 저기 멀리 내 매잡이가 기다리고 있어. 사냥하다가 너를 쥐새끼라고 생각하고 잡으려 했는데 하긴 고양이도 저녁으로 나쁘지는 않지...˝
쥐새끼.
쥐.
쥐새끼.
˝으갸갸갸갹 $**())_$@!&*()!!!!!!!˝
너무 화를 냈더니 머리가 띵해지면서 피가 어디론가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칼슘이 다량으로 빠져나가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님도 한때 이가 다 빠지셨다는데 이 매새끼 때문에 내 이가 빠져나가면 내 임플란트는 누가 해주며, 그 고통은 어찌한단 말인가. 순간 이성을 잃었더니 육두문자가 검열도 없이 튀어나와버렸고, 내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누군가 폴-짝! 하고 다가왔다. 동네 고양이들을 다 모은 게 틀림없다. 창피하게...나는 공쥬님인데......
˝무슨 일이냐.˝
**목소리는 페르시아산 고양이처럼 노란빛이 도는 엷은 회색에 옻칠을 한 듯한 점이 박힌 미남 고양이였다. 그 옆에는 뱃살이 도둑하고 덩치가 우람한 고양이도 함께였다.
˝나는 서생 집에 사는 고양이. 이쪽은 인력거꾼네 집에 사는 쥐를 여러마리 잡으신 고양이님이시다.˝
˝저는 칼리라고 해요! 세상에 이 참매 이름이 매이...어쨌든 이 매가 나더러 쥐새끼랬어요!!!!!!˝
메이블은 난처해하며 ‘누구부터 먹을까‘ 하는 눈빛으로 우리 셋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고, 나머지 두 고양이는 낮잠을 방해받아 짜증난다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쥐새끼라는 말에 역시 격분하여 메이블을 노려보았다.
˝쥐새끼라니! 이 아깽이가 무슨 자금을 은닉하고 난세를 일으켰다고 그런 심한 욕을 한단 말인가 매 양반!˝
˝보아하니 우리 고양이 족속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이 아깽이를 욕하는 건 인력거꾼을 욕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내가 족제비의 방귀에도 굴하지 않고 족제비도 잡은 고양이인데!˝
논리가 개판이지만 참자.
˝......살려면 누구나 먹어야 하는데 생과 사가 쥐와 고양이를 가린단 말인가? 나는 피를 보면 흥분하고 일순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사냥본능으로 이 쥐새, 아니 아깽이를 잡았을 뿐이야.˝
˝ 또 쥐새끼!!!!!!˝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참는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그러나 인력거꾼네 고양이가 나를 말렸다.
˝배고프면 내가 쥐잡이의 명수이니 나만 믿고 따라와보쇼.˝
듣자하니 인력거꾼네 고양이는 쥐를 정말 잘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잡는 족족 집사놈이 관청으로 쥐꼬리를 들고 가 돈으로 가로챘다는 것이 아닌가. 인력거꾼네 고양이와 메이블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서생네 고양이와 나, 둘만 남았다. 서생네 고양이는 자신이 집에서 푸대접, 자기 동네 흰둥이님이 낳으신 아기를 모조리 강물에 빠뜨려 죽여버린 몹쓸 인간 이야기 등을 늘어놓다가 눈물을 짓기도 했다.
˝고양이로 사는 건 참으로 복되고도 험하단다. 그 중에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해야 할 것은......˝
서생네 고양이라니 뭔가 대단한 묘생의 지혜를 들려줄 것만 같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뭘까!!!!
˝떡이다.˝
떡!
˝그것이 찰싹 입에 달라붙으면 꼬리를 휘휘 내저어도, 앞발을 입에 갖다대어 문질러대도, 심지어 뒷발로만 일어서 이족보행을 해도 수가 없지. 내 경우엔 심술궂은 하녀가 인정사정없이 떼어줘서 살아났지만 하마터면 죽을 뻔 했지 뭐냐.˝
서생네 고양이라 해서 영리하지는 않구나......
˝왜 한숨을 쉬느냐잉?˝
인력거꾼네 고양이와 메이블이 돌아와서 나를 보고 묻길래 이야기했더니 인력거꾼네 고양이가 코웃음친다. 역시, 체득한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건....
˝어림없는 소리.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족제비의 방귀야.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어!˝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두 고양이가 싸우는데 메이블이 나를 움켜잡았다.
˝족제비라니, 한입거리를 가지고. 가자, 쥐새끼.˝
˝또또또!!!!˝
발톱으로 부리를 할퀴려는데 메이블이 나를 들어올렸다. 몸이 붕 떠올랐다.

..야!!
...리야!!
...칼리야!!!
엄마?
˝칼리야! 너는 무슨 애가 잠을 이렇게 파닥대며 자는거니! 우리 칼리 키크려나보다!˝
메이블이 나를 들어올렸는데..그 전에 인력거꾼네 고양이..서생..떡..
˝잠꼬대를 일어나서도 하는구나 원! 그루밍 받다가 너무 곤히 자길래 안깨웠더니만! 얼른 일어나 저녁 먹어야지!˝
***옛날 칼리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것이 스스로 기뻐 제 뜻에 맞았더라! 그래서 칼리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깨어, 곧바로 놀라서 보니 칼리가 되어있었다.
알지 못하겠다. 칼리가 꿈에 쥐새끼가 된 것인가, 아깽이가 꿈에 칼리가 된 것인가? 
칼리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이 묘생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헬렌 맥도날드, 메이블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장자의 제물론에 나온 고사, 호접지몽
을 멋대로 차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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