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의 여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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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언젠가 그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갑자기 불쑥 나타난 그림이니 미술관마다 서로 나서서 전시하려고 할 테니까. 카를 슈빈트는 지금 이 시대에 의심의 여지 없이 전 세계에서 최고로 유명하고 최고로 비싼 화가가 아닌가. 그의 일흔 살 생일날에는 무슨 신문을 펼쳐도, 텔레비전의 무슨 채널을돌려도 어김없이 그의 얼굴이 나타나곤 했다. 물론 나는 한참을 쳐다본 다음에야 그 노인이 내가 아는 젊은 얼굴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그림은 보자마자 즉시 알아차렸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넬레 노이에하우스, E.T.A. 호프만, 프리드리히 실러, 괴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법학 전공 내지는 법조계 종사자. 어쩌면 이 나라 국민들은 법학과 문학을 그것도 이렇게 훌륭하게 다룬단 말인가. 어쩌면 '작은 이야기'인 소설의 무용함이 사실과 진실의 충돌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더 리더'(책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계단 위의 여자'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전작에서 그가 팽팽하게 다루었던 인간 개인의 의사, 그들이 행하는 행위, 작용과 반작용, 이런 것이었다. 아무렴, 문제 해결의 최적임자는 문제 당사자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슐링크가 쌓아올린 탑은 번역자 배수아의 말을 빌리자면 건조하고 담담한 톤으로, 허식이나 과장, 과도한 감상은 찾아볼 수 없다'. 해야 할 일을 하는 법관처럼 슐링크의 낱말은 단정하고 소설의 구조는 간단하다. 소설의 화자의 삶이 그러하듯 최소한도로 바라고, 최소한도로 행동한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되 감상적이지 않고 추리를 해나가되 장르 문법에서도 비켜나가있다. 그러니 차분하게 조용히 이야기 속에 스며, 그의 이야기 문법을 즐기기에 독자로서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의 전신을 그린 그림에서 시작한다. 두 명의 남자가 그림 하나를 두고 싸운다. 그 사건을 중재하는 것은 주인공인 '나'. 그러나 그림의 주인공 이레네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 그는 이레네가 두 남자, 남편과 화가(슈빈트) 모두를 그림과 함께 떠날 수 있게 도와준다. 


 "쉿." 그녀는 손을 내 입술에 갖다 댔다. "내가 알아서 다 할게. 그의 집에 있는 내 짐들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런 넌 언제 올 건데?"

"나중에. 일이 끝나는 대로."

...그렇지만 두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불안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다. 집 안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으며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연신 창밖을 내다보았고, 차를 끓였고, 찻잎을 주전자에서 빼는 것을 잊었고, 그래서 다시 차를 끓이고, 다시 마찬가지로 찻잎을 잊어버렸다. 그녀는 혼자서 그림을 어떻게 처리하려는 것일까? 그녀에게 너무 무겁진 않을까? 도와줄 사람은 있을까? 누구일까? 아니면 진짜 혼자서 들 수 있단 말인가? 왜 나를 믿고 맡기지 않는 걸까? 



 그러나 기다리는 이 남자의 마음 속에서, 제대로 된 답이 떠오르지 않는것은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쉴새없이 이유를 생각해내는 인간의 어쩔 수 없음, 그럼에도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이 교만함. 40년이 흐른 뒤 갤러리에서 과거의 그 그림을 본 그는 다시 이레네를 찾아낸다. 늙고 주름지고 쇠약하고 아픈 그녀를. 또한 그녀의 남편과 화가 슈빈트도 그녀를 찾지만 독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늙은 남자들의 니코틴에 절은 손가락 같은 것. 그림의 소유권이 무슨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자기 자식들의 영락을 자랑하고, 자신의 직업적 성공을 뽐내고, 그런 것이 죽어가는 자 앞에서 무엇 하나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나'는 그 모든 것이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림, 이레네, 군트라흐, 슈빈트. 이 모든 것에서 자신은 조력자이자 구경꾼일 뿐. 그 자각과 각성의 시기에 맞물리는 서늘한 죄책감. '위협이 없어도 느껴지는 공포와도 같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밀려오는 슬픔과 같은 느낌.'이락 화자는 말한다. 조용하고 어두운 집안. 죽어가는 이레네, 그리고 모두가 돌아가자 두 사람은 둘만의 과거를 미래의 시간으로 겪는다. 그러는 와중 맞딱드리는 시간의 옹이, 이상한 후회와 지금에서야 찾아오는 자각. 이른 봄, 풀밭에 누워 잠시 잠이 들었다가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차갑고 서늘한 회한.



 "넌 어디서 누벨바그 클리셰를 읽은 모양이로구나? 60년대 후반에는 아무도 검게 차려입지 않았어. 여학생들은 소녀 시절을 보낸 지방 여학교에서 못해본 일을 만회하려고 안달했고, 남학생들은 비판 이론이나 혁명적 프락시스 등을 커다란 소리로 떠들면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를 썼지. 이런 걸 정말로 전혀 모른단 말이야?"

"말했잖아. 난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다고." 

"그럼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고, 그게 전부야? 법률회사에 입사해서 회사를 인수하여 크게 더 크게 키운 것 말고는 없어?"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너에게서 아무것도 원하는 건 없어." 그녀는 내 팔을 잡았다. "네 삶을 상상해보는 것뿐이야. 케이스 속에 들어 있는 삶을. 그럼 케이스 속에서 일생을 산다면 바깥세상은 정말로 클리셰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직업상 많은 해외여행을 했고 항상 열린 마음과 눈을 유지했다. 집에서는 두 종류의 신문을 구독하면서 경제와 금융 면을 주로 읽었지만 정치와 문화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단지 60년대 후반 대학생 패션 유행을 잘 모른다고 해서 일평생 케이스 속에서 산 셈이 되어버린단 말인가?그녀의 팔에 벗어나려는 내 몸짓을 느낀 그녀는 나를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넌 네 아이들이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한 번도 보러 가지 않았구나? 아이들과 함께 학생 주점에 가거나 대학 축제를 구경한 적도 없지?"

"내 아이들은 열네 살 때 영국의 기숙학교로 갔고 대학도 거기서 다녔어. 케임브리지 졸업식에는 나도 참석했지. 화려하고 위엄있는 대단한 행사였어. 막내아들이 옥스퍼드 대항 보트 레이스에 출전해서 우승한 날도 거기 있었고."

"아이들과 자주 만나?" 

"아이들은 영국에서 계속 살아. 큰딸과 큰아들은 변호사고 막내아들은 소프트웨어 회사를 갖고 있지. 손자나 손녀가 태어나거나 뭔가 함께 축하할 일이 있으면 나도 영국으로 건너가. 그 이상은 아이들에게 부담 주는 걸 원치 않고." 

이레네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 등을 쓰다듬었다.

 "순진한 바보 같으니. 넌 만사를 훌륭하게 하려고만 하는구나." 그녀는 상냥하면서도 슬프게, 다시 한 번 더 반복했다. "순진한 바보같으니."



 꼬마야, 내 꼬마야. '책읽어주는 남자'의 여자가 그랬듯 계단 위의 여자, 이레네는 그의 삶을 한 번에 통찰하고 관망한다. 이레네의 질문, 정말 생활 속에서 공기를 함께 나눈 적이 있는지에 대한 남자의 모든 답은, 아무리 애를 써도 출구를 찾지 못한채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새 한마리와 다르지 않다. 흘려보낼 수 없는 감정, 다른 사람과 '나' 사이 가로막힌 유리벽, 마침내 그것을 보여줌으로 화자에게 자각시키는 이레네의 서늘한 목소리를 듣노라면, 지나간 시간이 이제는 어제와 오늘, 일주일 안 정도로 나뉠 수 없는 독자의 귓가가 아득하게 울리는 듯하다.



 "순진한 바보 같으니." 그녀가 말했다. "너는 살아오는 내내 너의 투쟁을 치렀어. 마치 기사들이 자기 시대의 종말을 알지 못했듯 너 또한 그 투쟁이 어느새 허상의 투쟁이 되어버렸고, 진즉에 전부 종말에 이르렀음을 알지 못한 거야. 그토록 열심히 계약과 계약을 성사시키며 다니고, 합병과 인수 건을 매번 충실하게 해치우고, 그것이 이 세상을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사안이라고, 그렇게 진심으로 믿고 있는 네가 나는 정말 좋아. 그런 태도는 나를 감동시키지. 그리고 동시에 슬프게 만들어."

 나는 항의하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해명하려고 했다. 합병과 인수가 왜 중요한지,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내가 싸웠던 투쟁들이 허상이 아니라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고. 모든 거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해나갔다고 말하고 싶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대개 그들 자신에 관한 내용이니까. 아마도 내가 지금 유일하게 견딜 수 없는 건, 세상은 계속해서 굴러가는데 나 홀로 종말을 맞는다는 그 사실 때문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진정해!"





 아, 우리는 이렇게 생긴 거울을 얼마나 많이 구경했던가. 그 거울은 지나가는 버스 정류장에도, 책을 읽으려 들어간 카페 옆 테이블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기이한 뉴스가 실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도, 그리고 매일 들여다보는 거울  그 자체로 있지 않은가. 


 마침내 질문과 대답, 대화와 함께 나누는 공기가 다 떨이진 다음, 화자는 마침내 생각한다.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헤어져야 할 존재에게는 작별 인사를 하고, 멀리 있는 소중한 존재에게 전화를 하기로. 우아한 자각의 퇴장은, 이렇게 커튼을 내린다.



 회사에는 내일에나 가볼 예정이다. 오늘은 묘지로 가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거이다. 나는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리고 작별의 인사를 하고, 내가 왜 더이상 우리들의 집에서, 우리들의 물건과 함께 살 수 업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아내에게 이레네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전화할 것이다. 카르힝어와 다른 파트너들에게 할 이야기를 준비할 것이다. 그들이 퍼붓는 수많은 질문에 나는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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