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쪽
마르셀 서루 지음, 조영학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후기 / 사월의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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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나름대로의 힘이 있다. 서쪽 사막에서는 씨앗 상태로 100년 동안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식물들도 많다. 그저 다시 꽃피울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비가 100년만에 내렸는데도 바위와 모래가 온통 꽃과 식물로 뒤덮였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책속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여러 갈래를 지녔다. 어떤 글씨는 아름답고 어떤 글씨는 섬세하다. 그런가 하면 마르셀 서루의 글씨는 묵직하다. 형용사와 부사를 뺀 진실,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벗어난 미래. 그 가까운 미래, 씨앗의 파종기한을 보며 종종 린넨을 세탁하는 에반젤린의 메이크피스를 보면 묵직한 거품 같은 안개를 보는 느낌. 거품은 가라앉고 안개는 걷히기 마련이지만 이 슬픈 sf가 꿈꾸는 것은 현재라는 점이 마음을 찌른다.





 sf가 꿈꾸는 것은 언제나 역설적으로 현재. 물론 이 작품이 전적으로 sf는 아니다. 아마도 작가가 특정 장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대한 장르로부터의 자유를 꿈꾸었다는 점이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돕는다. 







 이 책 속 메이크피스는 에반젤린의 유일한 시민이자 보안관이다. 작가는 체르노빌의 거주 금지 구역에 들어가 혼자 자급자족하는 여인을 취재한 다음 이 소설을 생각했다는데, 체르노빌 금지 구역의 유일한 주민과 메이크피스가 다른 점이라면 고요함의 정도일 것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메이크피스의 마음이 여행을 함에 따라,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번씩 요동치는 것을 보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씨앗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 황량하고 먼지와 적막함이 감돈다. 책장을 넘기고 얼마 안 되어 메이크피스가 만나는 사람이 임신 상태의 핑이라는 것,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메이크피스의 이 기록이 '혹시나'라는 기대를 품었다는 것은 인류가 꿈꾸는 세계와 닿았다. 

 세월이 잘 맞물리는 시계처럼 돌아가고 봄이면 작물을 심던 시절. 언제나 옛날은 '좋았던 옛 시절'로 기억되고 윤색되기 쉽다지만, 마르셀 서루의 '현재'는 엄정한 현실을 담았다.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의 사람은 어떻게 될지 품었던 의문. '더 로드'에서 무겁게 그렸으니 '먼 북쪽'이 굳이 필요할까 싶었으나 sf가 꿈꾸는 것은 이제 종말 후의 삶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생각의 솜털이 곤두선다. 





 아주 오랜 옛날 해저 이만리와 달세계 여행을 꿈꾸던 인류가 이제 와서 그리는 미래가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라니. 

 이 저릿한 슬픔 이후, '이 없음'에 던져진 것이 여자 두 명과 태아 하나라는 설정은 이상하게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쩌면'하고 생각해 본다. 남자는 유전자 전달 이후에도 너무 오래 살아남아 문제이고 여자는 생명 잉태 이후에도 또한 너무 오래 살아남아 문제라면,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30년을 살 수 있는 생명체가 2년 후 도살되고 30년이 전부인 생명체가 100년을 산다면 이것은 생명의 이상한 진행이다. 이 나선세계의 행진이 도착하는 곳이 설사 오염된 세계,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조각이라 해도 기이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 플라스틱 조각에라도 희망을 품게 되는 때가 있다. '드디어'와 '혹시나' 사이를 가파르게 오가는 사람의 마음. 메이크피스라는 화자가 일인칭으로 모든 것을 서술하는 이 모든 사건에 독자는 필연적으로 그의 일을 자기 일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택한 방법은 지극히 단순하다. 일인칭 화자를 내세우고 시제는 현재로 제한할 것.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다 죽고 여자만 살아남아야 한다'라든지 '남자는 다 불안한 존재다', 혹은 '여자만 완전하다'라는 느낌은 없다. 메이크피스가 살아남은 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강한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작품 속 여성성과 남성성은 극도로 제한된다. 메이크피스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가 가녀려 보이거나 행동이 독자에게 다르게 보이지는 않는다. 'like a girl'을 뒤집은 'like myself'의 느낌이 이야기를 장악한다. 



 


 끝이 없는 한계를 그리는 마르셀 서루의 스타일은 모호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문체는 분명한 형식에 간단한 수단을 고의로 심어놓는 것인데, 이 자체가 아름다움을 일구어 낸다. 여성성도 남성성도 사라진 인간성을 그리기 위해 이보다도 더 명확한 입장이 있을까. 허구 없는 진실은 이런 것. 메이크피스가 마지막으로 접하는 것은 어느 소녀의 기록. 메이크피스 역시 '언젠가 내 글을 볼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남겨둔다'라는 대목을 접하노라면, 인간의 읽는 행위 자체의 숨은 뜻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마음과 마음이 겹쳐지는 신비로운 행위'로서의 읽기.



 


아버지는 일이 작못되면 '서쪽으로 빠진다'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서쪽은 나한테 항상 좋은 느낌이었다. 결국 서향은 태양의 길이 아닌다. 더욱이 내가 아는 어떤 역사에서도 사람들은 자유와 거처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다. 반대로 우리 세상은 '북쪽으로 빠진' 셈이다 정말로 북쪽으로 빠졌다. 그것도 얼마나 먼 북쪽인지 나도 이제 막 배우려는 참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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