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now Child (Paperback)
Eowyn Ivey / Little Brown & Co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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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bel said. "As fantastic as it all sounds, I know the child is real and that she has become a daughter to us. But I can't offer a single bit of evidence. You have no reason to believe me. I know that."

 메이블이 말을 이었다. "듣기엔 이상해 보이겠지만 난 그 애가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 애는 진짜이고, 우리에겐 딸이나 다름없어요. 물론 그걸 에스더 당신에게 확인시켜줄 방법은 하나도 없어요.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요. 나도 잘 알고 있어요."




 지난 세기의 알라스카, 눈과 얼음의 땅, 아이 없는 부부가 눈이 오는 날 밤 눈사람을 만들고 외투와 모자를 씌워준다. 그 다음 부부를 찾아오는 어린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와 함께 다니는 작은 여우. 


 



 환상과 현실이 섞인 이 허구에 앞서 소설은 어떻게 소설 속의 세상을 직조해 내는 것인가, 회의감과 궁금함이 생긴다. 대형서점의 수많은 책 속에서, 헌책과 새 책, 떨이로 파는 책과 신간 속에서, 헌책방의 두툼하고 편안한 쿠션이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서 순간 설핏, 들었던 이천사백 년도 더 된 의문. 소설은 무엇일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작은 이야기'라는 정의를 중학교 문학 시간에 들은 이후 이 작은 이야기에 한눈을 파는 나는 드라마 팬과 다름없었다. '걸 온 더 트레인'의 레이첼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망설였고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렇다면 문학 속의 소설이, 이 작은 이야기는 대체 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것일까.





 잠시 다시 눈을 돌려 에오윈 아이비의 스노우 차일드를 다시 읽는다. 장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스노우 차일드'의 도입부 내지는 말미가 있다. 그 어느 것도 그저 행복하기만 하거나 그저 슬프기만 하지는 않는다. 눈의 결정처럼 어느 순간 나타났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아이. 동화와 민담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사라지는 아이'라는 점에 계속 주목한다. 에오윈 아이비의 이야기하는 입술이 주목하는 것도 그 부분이다. 단어와 단어가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을 찍고, 여우가 그 발자국을 따른다. 에오윈 아이비의 단어와 문장은 지극히 조용하고 고요해서 가장 격동적인 순간, 남편 잭이 눈길에서 크게 다치고 메이블이 집안을 일구어 나가는 장면에서조차 통나무 집 안에서 바깥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눈이 사각사각, 회오리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남는 것은 다시 거대한 백색의 눈. 





 "frost...and snowflake... turned to flesh and bone."

  "얼음, 눈 속에서 나타난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이."





 메이블이 어느 순간 눈 속에서 나타나 봄과 함께 사라지는 아이, 파이나를 이렇게 보며 꿈꾸는 사이 잭은 파이나의 눈 속에서 부모가 죽고 혼자 살아남아 살아가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이미지는 다시 생생하게, 백조를 사냥하고 죽이는 파이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백만 가지 눈의 결정을 하나씩 보여주듯 에오윈 아이비의 이야기는 파이나의 다른 모습을 조금씩 보여준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이 전부가 조금씩 움직여 조용히 켜켜이 쌓인 눈밭을 보기 전까지, 독자의 눈이 보는 것은 사각사각 눈이 밟히는 알래스카의 겨울 풍경이다. 





 그 겨울이 호흡하는 것은 눈의 아이, 파이나의 숨결. 에오윈 아이비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삶의 접점과 맞물린다.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짜 살아있는 삶일까. 알래스카의 몰아치는 눈, 폭풍, 굶주리는 겨울이 빚어내는 풍광은 이상하게도 그곳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 먼 곳이 어느 순간 창문을 열면 성큼 다가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눈과 얼어붙은 강물, 숲과 산, 그리고 야생동물이 빚어내는 리듬감일 것이다. 그 리듬을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소녀가, 멀리서 울부짖는 야생 곰이, 겨울이 오면 자취를 감추는 야생 딸기가, 오븐에서 겨울을 버티게 하는 파이와 약간 한기가 도는 부엌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차 한 잔과 수프가 눈앞에 펼쳐진다.





 읽다 보면 추워지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어느 순간 현실이 이와 같다고 여기다보면 생각지 못한 순간에 작가는 자신이 직조한 언어의 짜임으로 놀라운 스타카토를 만들어 낸다. 에오윈 아이비는 고요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알래스카의 창밖 묘사를 시작으로 독자의 경계심을 풀어낸다. 민담과 동화가 섞인 눈의 아이 이미지를 곳곳에 넣어 진짜 눈의 아이 파이나를 만들어 낸다. 처음 파이나를 발견하고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는 메이블과 나중에 파이나와 사랑에 빠지는 가렛의 파이나를 대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말미, 파이나를 대하는 두 사람의 방식이 다른 방향에서 몰아치는 눈보라 같은 갈등을 일으킬 때조차 두 사람의 반응은 모두 가능케 한다. 메이블은 파이나를 눈의 아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숨 쉴 수 있도록 얼어붙은 겨울 바람 속에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렛은 파이나를 따뜻한 피가 온몸을 돌고 숨결이 조용한 사람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메이블은 파이나를 품는 어머니이며 가렛은 파이나를 객체로 보는 인간인데, 에오윈 아이비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독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애매한 중간을 선택하게끔 종용하지도 않는다. 테리 이글턴의 말처럼, 비극에서 중도가 제공되는 일은 극히 드물어 마땅하다. 





 결국, 이것은 모두 문학의 일이다.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부분적인 방식들이 구조를 이룬다. 독자는 잭, 메이블, 파이나, 에스더, 가렛 등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사건을 위에서, 그리고 아래에서 양옆에서 살펴보게 된다. 이야기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쉴 틈이 생기면 눈의 아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독자는 파이나가 사람을 경계하지만 자연 속에서는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아이이며 메이블이 자기 죽은 아이를 그리면서도 파이나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 잭이 아버지 같은 태도로 파이나를 대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린다. 이것이 눈의 아이 민담, 동화와 이 소설의 묘한 상충관계를 일으켜낸다. 독자는 눈의 아이 민담에서 어떤 단락이 오든 간에 그것이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에오윈 아이비의 이 소설에서도 그럴 것인가? 소설 끝에서 파이나가 인간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함께 생활을 꾸려나갈 때까지도 독자는 살짝 의심을 거듭하게 된다. 그간 작가가 파이나를 묘사할 때마다 사용한 단어는 눈, 서리, 안개, 눈 폭풍우, 차가운 공기 등이며 파이나와의 모든 대화에는 따옴표가 없다. 한마디로 작가는 문학의 많은 언어를 자기의 것으로 활용한다. 





 이 작은 이야기를 읽으며 에오윈 아이비가 성글게 쌓은 눈사람같은 이야기를 읽노라면 앞서 생각했던 의문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그가 이야기하는 형식을 따른다. 소설의 이야기는, 문학의 내용은 언어와 분리할 수 없는 경험이다. 언어가 도구로 전락하는 가구 조립 설명서 같은 실용문과는 달리 문학에서의 언어는 핵심이자 본질, 실체이다. 파이나, 라고 말할 때의 파열음이 눈의 조각처럼 느껴지고, 내뱉는 숨이 차가운 알래스카의 공기처럼 느껴진다면 실로 묘한 일이다. 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작가는 그 이름 안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동화와 실제가 실재하는 마법같은 이야기. 읽고나면 차가운 겨울, 12월 밤이 생각나는 알래스카의 이야기.



 Jack and Mabel gasping for breath. The moon lit up the entire valley, gleaming off the river ice and glowing on the white mountains.

 Let's keep going, Faina whispered, and Jack, too, wanted to skate on, up the Wolverine River, around the bend, through the gorge, and into the mountains, where spring never comes and the snow never melts.


 잭과 메이블은 숨을 몰아쉬었다. 달빛이 언덕 전체를 뒤덮어 하얀 산과 얼어붙은 강이 어슴푸레 빛났다. 

 계속 가요. 파이나가 속삭였다. 그리고 잭 역시, 스케이트로 계속해서, 울버린 리버를 지나, 옆으로 살짝 꺾어서, 협곡도 지나서, 산 속으로, 봄이 결코 오지 않고 눈이 절대 녹지 않는 곳으로. 그런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읽다 보면 쉼표와 숨표, 녹아버린 따옴표와 공백이 서리처럼 녹아내리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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