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가만히 죽은 나무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나는 죽은 내 얼굴을 만져볼 수 없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젖을 물리듯 햇살은 죽은 나무의 둘레를 오래도록 짚어보고, 고스란히 드러난 나무의 뿌리는 칭얼대듯 삐죽 나와있는 오후. 어떤 열렬한 마음도 이 세상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내가 싸워야 한다면 그 때문. 내가 누군가와 섹스를 한다면 그 때문. 거짓말처럼 내 몸을 지나간 칼자국을 기억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글거리는 상처 따위가 아니다. 맨드라미는 지금도 어디선가 제 키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나를 두소 살이 있는 내가 입을 꾹 다물고 먼지처럼 그릇 위에 쌓여가는 일은 그러므로 아주 서러운 일은 아니다. 이젠 벼랑도 아프지 않다고 생각에 잠긴 귀를 흔들어보는 일. 입을 벌리면 피가 간지러운듯 검은 웃음이 햇살 속으로 속속들이 박혀드는 날. 집이 사라지면 골목은 어디로 뛰어내려야 하나.
-맨드라미는 지금도, 이승희
검정 원피스와 하이힐을 신고 아끼던 반지와 목걸이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향수를 뿌리고 길을 나설 때 그의 전화를 받았다. K, 그날은 네가 헤어진 날이었다.
길고양이 같은 표정의 오후.
십여 년 전 오후, 처음 랑콤의 미라클을 뿌렸을 때 나는 백 밀리그램짜리 오 드 뜨왈렛을 사서 매일 그 향만 뿌렸다. 사각거리는 리넨 원피스, 또각거리는 샌들 굽, 조용한 무채색 인테리어의 향수라고 생각하고 내가 무척 좋아하던 이의 옷장 속에 그 향수를 넣어두고 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다시 찾은 그 향은 꽃향기와 달콤함, 단정한 느낌이 사라지고 매서운 초겨울 바람의 냄새로 변한 것에 다시 놀랐다.
내가 미라클, 이 향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지금은 디올의 미스 디올과 딥디크의 오이도를 더 자주 뿌리지만 한때 이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 내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든 것들의 이마를 짚어주며.
K, 내가 왜 너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왜 너의 잠든 이마를 모르겠는가. 부드럽고 살짝 사람을 잡아당기는 느낌의 향수를 너와 그의 좋았던 때라고 하자. 또는 내가 사랑에 빠졌던 때라고 생각해 보자. 순진하게 세상을 낭비하고 시간을 엑셀 파일처럼 끌어쓰던 때. 향이 날아가리라는 것도, 체취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리라는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단, 내가 놀랐던 것은 네가 했던 말 속 '알지 못한다'와 '행복, 혹은 불행'이라는 낱말이 주는 이질감이었다. 행복과 불행, 이 앞에서 나는 내가 죄인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은 어디까지나 '아닐 불'자를 써서 행복의 결여 상태가 불행이라고 알린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알지 못한다' 대신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 것은 결코 '앎'의 결여가 아니다. 반대일 뿐. 너는 지금 네가 행복의 반대에 오롯이 앉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의 체취와 그의 체취 중 누구의 냄새가 변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이미 헤어짐은 그의 입에서 나왔는데, 너는 네 목을 그 앞에 곱게 내밀 준비가 안 되었으니까.
그럴 수 있기나 할까?
오페라가 눈과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K는 괜찮을까. 거의 십 년을 만나다가 헤어진 그는 어떨까. 그 생각이었다. 나의 현재와 그의 과거가 겹쳤다. 나의 공백과 그의 상실이 겹쳤다. 나는 헤어진 애인이 아니므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의 자존심은 그에게 있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 친한 친구들끼리 밤늦게 커피를 마시다가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애인이 많이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려고 잠시 일어났다는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랑은 그런 것일까? 그가 좋아하는 공연도 함께 가고, 축제도 함께 가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고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를 믿고 이야기를 듣고 손을 잡는 것. 그 모습이 너희의 전부라고 말하던 때. 향이 사라지는 것도 변하는 것도 모르고 싶던 때. 지금 변했다는 것을 안 순간 다시 잡고 싶은 네 마음을 모르는 것 아니다. 살아오다 자연스레 만나고 헤어졌던 이들을 하나씩 쌓아가던 때가 있었다. 변해서 향이 다 날아가고 시큼한 맛만 남아도 이제는 그 존재를 그대로 둘 생각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울어도 되는 때가 이미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오페라는 끝났고 바깥은 더욱 짙은 검은 고양이의 털빛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은 빈방이군요.
사랑은 커녕 연애조차 뜻대로 되지 않고 늘 빈 방에 혼자 있는듯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말보다는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좋았다. 사랑을 나누었다는 말보다 섹스했다는 말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니. 주고받음이 언젠가는 서로의 장사밑천이 바닥나면 끝나는 푸닥거리처럼 느껴지는 것에 반해 빠진다는 말이 주는 그 넉넉함. 그러나 헤어나올 때의 천 길 사람 속이 더욱 막막하다는 것은 이제 K도 나도, 열여덟 살이 아니기에 잘 안다. 소중한 것을 일생에서 몇 번이나 잃었다가, 그것을 어느 골목길에서 우연히 다시 찾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그 빛나는 것이 진짜였는지 사금파리였는지를 판별하는 과정은 더욱 지리멸렬하다. 낯선 마음, 우울감, 상실과 애도. 누군가를 잊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내가 그에 둔 의미의 무게에 달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불을 빨리 켜고 싶어 했다는 것을. 어둠을 이해하는 빛을 얼른 되찾고 싶었다는 것을. 우울과 체념과 절망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시간. 마침내 애도를 거친 다음 찾아오는, 내가 나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는 빠를 수록 좋았다.
나 맨드라미로 지고 싶네.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열없어지는 때. 이미 충분히 받을 것을 다 받아낸 자의 오만함이 생길까 봐 스스로 다섯 가지 감각을 다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때가 왔다. 가장 간단한 음식이 오히려 더 정성이 들어가고 검은 빛깔의 옷을 입을 때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실망과 후회가 생길 땐 내가 필시 나에 대해 오해를 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안녕, 안녕.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이승희의 시집은 늙음과 젊음을, 애도와 치유를 같은 무게로 바라본다. 행복과 불행이 아닌 빛과 어둠, 앎과 모름의 세계를 등분하여 내미는 시인 앞에서 그 마음을 읽는다. K의 말을 듣다가 같은 말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면 잠시 이승희의 낱말을 들여다보곤 한다. 상실과 죽음을 지나 도착한 해진 후의 들녘처럼 따뜻한 시간이, 시집을 다 읽은 다음 천천히 다가온다.
시집을 선물해주신 D님, 고마워요. 멀리서 고맙다는 인사를 보냅니다.
회색빛 글씨는 이승희 시인의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에서 부분발췌.
Hello from the out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