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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평점 :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서점 밖으로 나오니 모든 게 허황된 꿈만 같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래서?" 남편이 물었다.
"뭐가 그래서?" 내가 물었다.
"당신은 어땠어?"
"끔찍해. 당신은?"
"나도 그래."
"그럼 뭐."
침묵.
"그런데 잘만 꾸미면 작품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래. 하지만 살림집 말이야. 그건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어째서? 크고 멋짐 살림집이 될거야! 생각해봐, 포장실에는 부엌을 들이는 거야. 그리고 책상이 있는 큰 사무실은 밥 먹는 방으로 만들자고. 복사기가 있는 곳은 텔레비전을 보는 작은 방으로 괜찮을 것 같아. 암실은 욕실로 만들고. 그렇게 하고도 우리 침실과 아이들 방으로 쓸 작은 방 몇 개가 남아."
"말도 안 돼."
"그렇다는 거지 뭐."
취미와 직업이 일치하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 노래를 잘 불러 가수가 되고 악기를 잘해 연주자가 되고 책을 좋아해서 책을 쓰거나 팔고,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를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는 마치 구운몽의 한 가닥 같다. 그 자락이 어떤 것일까. 밥벌이의 고단함, 입속의 단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터의 마감 앞에 닥친 막막함 같은 것. 그런 것 한 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 책을 집어 드는 독자의 절반은 이 책의 장르를 절반 정도는 착각했을거라 생각한다. 회고록 VS 판타지.
어느 날 빈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갔다가 작고 오래된 서점 하나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한다.
폐업하는 작은 서점, 이 말을 듣노라면 가지치기를 하는 많은 낱말이 떠오른다. 인터넷 서점, 수요와 공급, 마감, 매출, 원리금 상환까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세계에 과감히 발을 들이미는 저자의 모습은 그러나 서점 운영의 길잡이 대신 서점 운영의 재미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 등의 말이 오가지만 서점 운영을 해보지 않았으나 흥미를 느낀 독자 앞에서 저자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우리는 일에 파묻혀 살았다' 였다.
곧, 이 책은 서점 운영의 ABC 대신 자기 사업을 하고 아이도 키우고 남편을 거느리는 오스트리아 출신 여자의 작은 미소. 자기 서점을 갖고 있다는 자만심이 넘쳐나 '아무리 그들이 열심히 일한다 한들 빵의 성분표를 읊어대는 것 말고 다른 것이 있을까?'라고 말하며 맞은편 베이커리를 얕보기도 하고, 자기는 몰랐던 서점 직원의 또 다른 생활을 얕잡아 보기도 한다. 처음 면접을 했을 당시 자신의 두 번째 정체성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자기도 별로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는 것이 아니라 말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굳이 필요없이 직함을 나열하는 저자의 글 쓰는 태도를 보아 하면, 이것은 어쩌면 직함 자체에 집착하는 오스트리아인의 국민성일까, 저자 개인의 특성일까, 사뭇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이 책의 태도는 '조금 거만하면서도 즐거운 서점 운영자의 회고록'에 기본을 두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면 이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표정만큼 다르고 또 다른, 책과 서점을 대하는 태도 중 일부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나온 다양한 서점 관련 책들을 보노라면, 어떤 책은 서점을 살짝 홍보하거나 자랑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동네 책방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또는 자기가 돌아본 서점 여러 군데를 가이드북처럼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서점 경영인으로서의 자존심, 자만심, 긍지를 자기 생활 공간에의 소개로 포장해나가는 것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는 갑자기 일터에서 일에 파묻혀 살게 되었다. 서점 뒷방을 우리 주거 공간과 연결해주는 회전 계단은 우리 삶의 중심축이 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그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목이라도 부러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그 철제 구조물을 다람쥐처럼 재빨리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었다. 아침이면 커피 잔을 손에 든 채로, 낮에는 커피를 새로 끌이거나, 세탁기를 돌리거나, 아니면 점심 식사를 하러 그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했다. 남편이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딸이 친구네 집에서 잘 때면 나는 한밤이 되도록 바깥 날씨가 어떤지도 모를 때가 많았다. 출근하려고 저고리를 입을 필요도, 차를 탈 필요도 없었다. 또 어떨 때에는 신발 신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오븐에서 닭고기가 익어가고 있으면 맛난 냄새가 서점으로까지 퍼지곤 했다. 그러면 손님들은 유난히 행복해 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방사선과 의사 친구네 아이들이 매주 한 번 우리 집에서 잘 때면 아이들 나름의 의례가 있는데, 그때 이 회전계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저녁을 먹고 이를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나는 세 아이와 함께 두꺼운 양말을 신고 그 계단을 지나 서점으로 내려갔다. 서점에는 작은 야간용 조명만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손을 더듬으며 아동도서 코너로 갔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각자 잠자리에서 읽을 책을 한 권씩 골랐다. 나는 아주 조용히 그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준 다음 아침이 되면 다시 서점에 반납하곤 했다.
집과 연결된 서점, 집에서 커피를 끓여 서점에 들고 오고 일하는 도중 집안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그러던 중 이웃들이 점심이나 저녁을 요리해서 갖고 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저자의 남편은 서점 일을 함께하다가 빈에 일자리를 잡기도 하고 아이들은 조금씩 자란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종종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남에게 추천하는 것을 즐기곤 하는데, 저자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책을 파는 사람이 하는 추천은 매상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독서를 좋아하는 이의 관점에서 멀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종종 조심스러워지곤 한다. 이를테면 '읽기가 좀 까다로운 것이 좋은가요, 아니면 재미있는 통속소설이 좋은가요?'라고 묻기도 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 분인가요?'라고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산 분들은 oo에도 관심을 보입니다'라고 보여주는 인터넷 서점의 서비스와 차원이 다른지는? 그에 대해서는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책을 추천했다가 막상 아니다 싶어 고객에게 밤늦게 '책 계속 읽지 마세요! 모두 다 죽어요. 개까지요!'라고 문자를 보내는 저자의 모습을 보노라면 자만심과 애정은 이렇게 어우러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밤늦게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서점 하얀 차양막 위에 쌓인 눈을 단골손님과 함께 치운다든지, 뭘 좀 드셔야 할 텐데, 라고 말하며 집에서 구운 빵을 갖고 오는 손님을 본다든지, 혹은 '책을 전혀 안 읽는데, 추천해주실 책이 있나요?'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책을 한 권, 두 권씩 추천해 주고 책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든지, 이런 경험담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게다가 무대는 성탄절이면 책을 서로에게 선물해서 12월에 매출이 급증한다는 빈, 오스트리아. 치명적인 단점, 자만심과 치명적인 장점, 애정이 두루두루 섞인 서점 주인 이야기.
할 일은 끝없이 더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우리로 하여금 그냥 계속 일을 하도록 추동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것은 지루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서점같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가게에 대해 한 주에 한 번, 서점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 나오는 이 시대에 계속 서점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달리 남은 게 없기에. 우리는 더 잘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우리는 다른 것은 차라리 하고 싶지 않기에.
덧-그런데 어쩌나. 난 이 책을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다른 책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구경하신 분들이 다음 책도 구입하셨습니다.-by 추천마법사' 코너에서 보고 주문하여 읽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