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안전성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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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날 가만,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밖으로 나섰다. 굳이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문 앞에 서서 내가 키우는 그 고양이가 문을 한 번 보고 야옹, 내 얼굴을 보고 또 한 번 야옹, 내가 다른 곳으로 가면 따라와서 또 뒤에서 나를 보고 야옹. 나가자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깃털 같은 그 몸을 가볍게 한 손으로 안아 들어 품고 문을 열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바람은 살랑살랑. 야옹, 하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눈은 동그래졌고 가만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괜찮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한 발짝 더. 꼬리가 가볍게 들리고 목을 길게 빼며 얼굴은 앞으로 쭉. 하지만 그 작은 몸은 여전히 내게 꼭 붙어있다. 그러다 한 발자국 옮겼을 때 저 너머에서 작은 소음. 고양이의 몸이 홱 틀어지면서 내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발톱을 세웠고 그 발톱은 내 팔을, 목을, 어깨를 단단히 갈고리처럼 움켜쥐었다. 악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긴장한 그 몸은 내 어깨에 닻처럼 상륙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단단하고 여린 발톱이 내 어깨를 붙들던 순간. 나는 그가 본디 육식동물이면서 호기심 많은 포식자임을 다시 직감했다. 사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겼던 발톱을 어느 순간 내세우는 모양새를 내 몸으로 겪는 일. 동그란 애원하는 눈과 어둠 속에 빛나는 맹수의 눈을 다시 확인하는 일. 햇빛은 사그라지고 바람이 잔잔해지면 이 일상이 다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을 느끼는 일.


 


 홈스의 '사물의 안전성'은 그런 맹수의 발톱과 아기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 사이의 간극을 오간다. 내가 가진 펭귄판 페이퍼백에는 안전핀의 날카로운 끝이 그림자를 가볍게 드리웠다. 만지기가 망설여지던 책. 당신의 일상은 얼마나 안전합니까? 라는 질문과 그 아래 무엇이 놓였을까, 하는 호기심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면, 그 다음 오는 것은 그 위태로운 왈츠이다. 내가 한 발자국 나가면 상대가 매끄럽게 끄는 힘이 느껴진다. 고개를 쑥 내밀면 상대는 살짝 고개를 젖힌다. 미끄러지거나 발을 서로 밟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내가 헛발을 짚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멀리 누군가가 살짝 눈을 빛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귀엽기도 하다. 어린아이처럼 텔레비전에 빠져 놀고 있는 폴이라니. 하지만 그 모습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애처로운 면도 있다.

 "소리 좀 줄일 수 없어?" 일레인이 말한다.

 폴의 자동차가 도로에서 미끄러져 광고판을 들이받는다. 자동차는 불길에 휩싸이고 '게임 오버, 게임 오버'가 화면을 가로지른다.

 "내가 뭘 하고 있으면, 가만히 좀 봐주면 안 돼?" 폴은 재시작을 누르며 소리친다.

 "별것도 아닌 게임이나 하면서 뭘."

 "나 좀 내버려둬."

 일레인은 위층으로 올라간다. 폴을 참아줄 수가 없다. 뭐 하나 참아줄 만한 게 없다.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보는 방식. 전부 다 싫다. 그도 그녀를 미워한다는 걸 알기에 더하다. 미치겠다. 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를 미워할 수는 없는가.

-adults alone.


 


 아이들을 캠프에 보낸 후 일레인과 폴은 데이트하고, 콜레스테롤을 잠시 잊고 외식을 한다. 대마초를 피우고 보드카를 마신다. 그 친밀함의 시간, 사랑한다는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온 다음 별것도 아닌 게임을 하는 남편 폴을 보는 일레인의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를 거리낌 없이 미워해야 한다는 원문의 마음이 한국어판에서는 좀 더 조용한 책망의 목소리를 띤다. 그러나 해야 한다는 당위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자책 사이의 간극은 독자가 바라보는 일레인의 표정에서 정확히 일치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차이의 날 선 감정은 이 두 부부의 일탈에 맞서 조용히 반짝인다. 




 함께 식료품 쇼핑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스테이션 왜건을 몰며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왜 아니겠는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아이들이 혹시 상어를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를, 조용히 작동하는 집안 사물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을 이렇게 예리하게 잡아채는 순간이 있는데. 뭉툭한 발 사이 숨겼던 발톱을 조용히 꺼내게 되는 순간. 그것은 기지개를 켜다 시원해서 그러는 것일 수도, 두려워서일 수도, 위협을 하려 그럴 수도, 상대가 싫어서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때 드러난다. '미워서 죽겠어!'에서 '미워서 죽여 버리겠어!'로 단어 하나가 바뀔 때. 일 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일이 일 초 후엔 더이상 그러지 않을 때. 사물은 더 낯설게 숨 쉬고 그 앞에서 나는 낯익은 숨을 내쉰다. 나는 숨 쉴 수 있고 너는 숨 쉴 수 없다는 착각은 그럴 때 사그라든다. 어쩌면, 내가 눈뜨고 눈감는 이 하루가 좀 더 위태로운 지반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닐까.





 "I was just looking." I said.

 "Whose room is this?" he said.

 I shrugged.

 'Whose?" he asked.

 "Yours."

 "Did I say you could look? Did I say you could come in here? Did you ask? NO!" he yelled into my face. "Some things belong to a person himself. They're private and you can't take them away."-Looking for Johnny


 "그냥 둘러봤을 뿐이에요." 내가 말했다.

 "이게 누구 방이지?" 그가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 방이냐고?" 그가 물었다.

 "아저씨 방이요."

 "내가 너더러 봐도 된다고 했어? 여기 네가 들어와도 된다고 한 적 있어? 나한테 들어와도 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냐? 천만에!" 그가 내 얼굴에다 대고 고함을 질러댔다. "사람들에겐 제각각의 소유물이라는 게 있어. 그건 아주 개인적인 것이고 너는 그걸 엿봐서는 안돼. -조니를 찾아서





 놀이터에서 놀다 자신을 조니라고 부르며 엄마 대신 찾으러 왔다는 남자가 두 번째 이야기에 등장한다. 알 수 없는 약을 먹이고 엄마는 지금 다른 일로 분주하며, 자기가 당분간 돌보러 왔다며 차에 아이를 태우고 자신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아이를 데려가서 며칠간 지내게 되는, '조니를 찾아서'. 그러나 이 남자가 조니라고 부르는 이 아이가 겪는 것은 엄격한 통제와 강력한 권유. 방을 들여다볼 땐 불같이 화내며 뜨거운 김을 뿜어댄다. 그 다음 날엔 아이에게 낚시를 가르쳐준다. 아침을 주고 장작을 패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 사이 나타나는 이상한 연대의 감정. 이 사람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과 엄마를 보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이 시소의 양쪽을 오가다가 어느 순간 휙 기울어질 때가 있다. 





 "Let's go." I finally said.

 "Go on, give it another try."

 -Lookig for Jonny.





 마침내는 엄마에게 몰래 전화를 하려다 남자에게 들키고 만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엄마는 왜 통화 중인 걸까. 어쩌면 진짜 이 아저씨의 말이 맞는지도 몰라. 스스로가 멍청하게 여겨질 때, 이제 가자고 말할 때 오히려 이 남자는 '다시 걸어 봐. 한 번 더 해 봐.'라고 말한다. 그 오락가락하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일상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느낄 때. 이제 이것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 오히려 남자는 에롤을 집에 데려다준다. 그 일상이 너무 낯설어서,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지만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추측이 무럭무럭. 다시 돌아온 일상은 사그락사그락. 어쩌면 나의 무심한 하루는 다른 누군가의 굳건한 등에 위태롭게 기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남편의 등이 측은하다가 밉다가(어른들끼리), 무서웠던 어떤 남자의 등이 듬직해지기도 했다가(조니를 찾아서), 숨어서 도저히 그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가(그럼 이만),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인 아들의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우게 되거나(밤의 에스더), 아무런 말 없이 웃는 바비 인형을 향한 사랑이 사그라지는(진짜 인형)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은 홈스의 열 편의 이야기 속에 조용히 출렁거린다. 바다의 파도가 일을 쉬지 않듯 홈스도 글을 쉬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장편과 다른 단편.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일관적인 이야기.

 42.195 킬로미터가 아닌 42.195 미터의 산책을 하다 보면 숨이 가빠지지 않는 대신 발밑이 어지러워진다. 어떠한 사건을 지나가는 사람의 가쁜 숨 대신 저물녘 찰나를 막 지난 이의 어지러움. 대차대조표처럼, 어떠한 사건을 가장 잘 꿰뚫기 위한 작가의 조용한 바느질 흔적이 보인다. 그것은 아이와 어른, 낯선 사람과 친숙한 사람, 아이들이 있는 일상과 아이들이 없는 일상, 모두가 똑같이 보이는 쇼핑몰에서 발견한 낯익은 소녀의 얼굴 속에서 드러났다 숨었다 하는 흔적. 회사에서 폭탄 테러의 위협으로 집에 와서 잠시 쉬게 되는 남자가 느끼는 혼란. 일상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이의 낯선 눈매. 사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날 선 발톱을 언제든 내 어깨에 초대할 수도 있는 낯선 사건. 

 넓게 퍼진 구름 가운데, 어느 구름 뒤에 비가 숨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 그러나 작가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린다. 비구름만 가려낼 수는 없지만, 달무리를 보면 다음 날의 비가 보인다고. 비가 내리건 바람이 불건, 살아있다면 이 날선 낯선 일상을 감수하는 것이 독자와 작가의 일이라고. 






 Downstairs, as they are cleaning, Elaine and Paul look at each other and as if they've each had the same thought at the same moment, as if they're sharing a secret, they go into the living room and carefully check the cushions on the sofa making sure there's nothing there, no empty vials. -Adults Alone.

 아랫층에서 청소를 하며 일레인과 폴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들이 같은 순간 같은 생각을 했다는 듯, 비밀을 나누는 듯한 느낌. 그들은 거실 소파의 쿠션을 청소하며 집안에 텅빈 약병과 같은 잔해가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한다.-어른들끼리.



*인용은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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