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본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가 김영하의 새 산문집 '보다'는 크고 작은 일, 흘려보내는 순간, 무심한 풍경에 관한 생각.

 

 

 멀리서 바라본 어떤 지점의 먼지 한 톨 같은 이야기들.

 

 

 그 접점의 단어로 마무리된 조심스러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생각.

 

 

 시간과 공간의 물리성을 어느 곳보다도 직접 체험하게 되는 순간에서 흘러나온 시선.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한국에서는 굵직한 사건이 터졌노라고 말하는 데서 오는 공감각은 어떤 접점에서 나타난 것일까.

어쩌면 자리를 비울 때마다 하필 굵직한 사건이 터지는 게 아니라 늘 굵직한 사건이 터지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렇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마침 네 생각 했는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생각의 지속과 연락의 일시성이 만난 것일 뿐, 그 사이에는 어떤 연관도 없다. 이러한 지속성과 일시성이 만나는 지점을 파고들어 본다.

 

쉬운 문제. 아는데 모르는 그 지점에서 사람은 무언가를 본다고 착각하는 것일 게다.

김영하가 스치거나 파고들고 싶었던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너무나도 무심히 보아넘기는 풍경.

쉴 새 없어서 외려 눈 돌리게 되는 정보.

망명정부에서 추락 우주선으로의 변화.

 

모르는 게 약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북소리는 멀리서 들으면 즐겁지만 가까이서 들으면 시끄럽다. 이러한 잠언과 격언 사이를 오가는 시선.  물리적인 필터를 거쳐 보고 듣는 것에서부터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또다시 그에 대한 반응을 추스르는 것으로 정리했다.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시간. 흐르는 것과 쌓이는 것. 모으는 것과 빼앗기는 것.

목숨의 값. 모두의 목숨이 같지 않은 상황.

상황의 변수. 타인을 연기하기는 그토록 쉬운데 자신을 연기하기는 왜 그리도 어려운지.

자신이 사라진 후의 혼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정적을 두려워하는 인간.

다시, 시간과 공간. 그 속을 김영하의 눈이, 본다.

 

 

 

 소설가의 눈과 에세이스트의 눈이 다름에서 오는 묘한 격차. 왼쪽 눈과 오른쪽 눈 안압이 달라 펼쳐지는 풍경의 생경함.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노라면 이런 안압 차이가 느껴진다. 무용함과 유용함을 오가는 시선. 김영하가 바라보는 대상은 당시 사람들이 많이 보던 영화이기도 하고, 해외 신문에 오르내린 가십이기도 하고, 택시법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시아나 항공의 사고를 이야기하다 그는 부자들이 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지, 택시법이 어떤 연유에서 논란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택시 이야기를 잠시 들어본다.

 

 

 

 

 합승이 사라진 것은 단속 때문이 아니라 택시가 흔해졌고 대중교통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의 상대적인 성공으로 위축된 택시업계는 스스로 대중교통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 논리로 정치권을 압박했고 거의 먹혀들 뻔했다.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택시를 이용하는 대중 다수가 그 법을 반대했(그 여론을 믿고 이명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로 돌아간 법안은 재의결되지 못했다). 그 법의 내용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택시=대중교통'이라는 산법을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이 높음과 낮음, 오른쪽과 왼쪽의 차이에 관해 그는 소설 '퀴즈쇼'에서 쓴 적이 있다. 돈으로 환산한 이야기. 돈은 가장 명확한 존재임을, 어제 볼 땐 오백 원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천 원 같기도 하네'가 아니라 오백 원은 오백 원이고 천 원은 천 원이라고 말함으로 관점과 실재하는 실체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상황의 변수와 역설을 풀어나간다.

 소설 장르를 빌어 미학적인 판단 말고는 모든 것을 유보하는 입장을 택했다면 이번 에세이에서는 유용한 것을 무용하게 바라보는 소설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형식의 틀에서 내용의 속을 벗겨내는 방식으로 글을 들여다본다. 소설가로서의 김영하가 구름 저 너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상을 묘사했다면 에세이스트로서 김영하는 그 길을 육로로 건넌다.

 뱃길과 사막길을 건너는 그 시선에서 모래바람이 서걱거린다. 

 

 

 

 

잠시, 그가 인용한 오르한 파묵.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는 그렇지 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멀리서 떨어져서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양식의 글을 씀으로 김영하가 노린 것은 처음 자전거를 탈 때의 그런 느낌일 것이다. 약간은 무섭고 떨리지만 일말의 설렘이 담긴 일. 구태의연한 것, 익숙한 것을 거리를 두고 익숙하지 않게 바라보는 일. 그리하여 존재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 직면과 통찰. 책임감 있는 시선. 깊은 생각 끝의 결론. 이것을 그는 영화 '그래비티'를 통해 이야기한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동료와 얼굴 없는 시체 사이의 우주만큼의 간극. 그것을 들여다본 이후에서야 왜 할로윈 축제에 해골바가지 모양의 호박이 나오는지, 중세 수도사들이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을 짝으로 여겼는지, 무엇보다도 유한한 인간이 무한함 앞에서 버틸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다. 

 

 

 

 일시성과 지속성, 없음과 있음, 다른 것과 같은 것마저도 없는 지금 눈앞의 상황을 제대로 보기를 권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고 나면, 밑줄이 아닌 각주의 책.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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