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커피벨트 끝자락에 있는 생산국이다. 많은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이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커피 생산이 줄어든 안타까운 나라이다.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도미니카 커피가 쿠바 땅에서 자라 크리스털 마운틴이 되었다. 귀한 커피를 마시러 오라는 그 마음이 크리스털 같아 나는 설렌다. 함께 먹을 심심한 먹거리를 조금 싸서 총총 걸어간다. 살아가는 일의 작은 행복,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일.-쿠바 크리스털 마운 틴
멀리멀리 다녀오는 길. 다녀온다는 말의 시점이 참 재미있다. 목적지와 출발지를 정하고 요요나 부메랑이 된 것처럼 느슨한 동그라미를 그리기. 어쩌면 나는 지금껏 이곳에 돌아온 게 아니라, 이곳엘 다녀오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동그라미에도 귀퉁이가 생기는 날. 아주 여름이 되기 전. 기온이 조금 올라가다 어떤 곳에서는 더욱 맹렬하고 어떤 곳에서는 주춤. 노랑, 초록, 파랑, 하양. 공기가 얼어붙은 어떤 순간. 켁켁대며 목을 가다듬다가 생각한다. 이런 날 가깝고 먼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면 파나마 보큐테, 인디아 아티칸, 에티오피아 첼바, 이런 커피를 권해주었으면 좋겠다. 다음날 못 일어날 걱정도 없이 뜨겁고 검은 커피를 조금씩 마실 수 있다면.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금방 들렸던 것도 같은데 그새 사라진 걸까. 부엉이 같은 눈으로 창밖을 본다. 어깨에는 노랑 줄무늬가 들어간 담요. 조용한 바닷가에 온 것 같은 촛불을 밝힌 공간은 밖에서 보아도 부엉이 눈 같을까. 쓰윽 어둠 속을 훑지만, 어둠이 너무 밝다. 다른 날과 다른 어느 저녁. 있지도 않은 사진첩을 보는 늦은 낮. 쓰지도 않은 기억을 떠올려 보는 이른 저녁. 하지 않은 고백을 듣는 아른아른 밤.
나도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런 순간이 내게도 오더라. 그 순간은 참으로 간절한데, 잘 생각해 보면 오로지 나만 간절한 것이다. 그 간절한 고백이 혹여라도 이기적인 것일 때 고백한 자는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된다. 왜 간절한지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기 때문에 간절한 것이다. 지금 간절한 이가 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고 도치해 보면 평범한 일이 된다. 평범한 감정을 고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백이란, 말로 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하는 것이다.
우연히 커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는 용윤선의 수필집 '울기 좋은 방'은 참 조용조용하다. 사뿐사뿐은 아니지만 음성이 낮고 진지하다. 조금 붉어지기도 하고 하얘지기도 하지만 조금씩 검어지는 얼굴이 떠오른다. 장마철 머리카락이 조금 푸석거리지만 좀 지나면 가라앉는 낮은 초록 날씨를 닮았다.
그 눈빛이 무엇이냐고 묻는 에티오피아 미칠레, 기차를 타고 싶다는 아이리시 커피. 죽어도 난 못하겠다는 커피 루왁. 걱정하지 말라는 카페 오레. 하나부터 일흔여섯까지 짧고 간단한 커피 맛, 쓸쓸하거나 기쁘지만 젊지만은 않은 나날.
펜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말뜻 탓에 가볍게 보는 이가 많은데, 용윤선의 수필은 바람이 살짝 부는 공원 벤치를 떠올린다. 그 벤치에는 커피 내려 아이 키우겠다는 미혼모도 있고,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여주는 스님도 있다. 배고프지? 물어보며 사탕을 손에 쥐어주는 할아버지도 있고 여행지에서 만난 얼굴도 있다. 그리고 숨 쉬는 순간마다 기도하며 살던 글쓴이의 모습이, 그냥 살아가던 어떤 그림자가 있다.
같이 걸어가던 사람이 길을 지나쳤다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한다. 이 길의 끝이 그곳일 거라고 한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많 지나쳐 온 것 같다. 그러나 계속 걷기로 한다. 왜냐하면 잘못 들어선 이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인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집 대문 위에는 쪼롬히 붉은 꽈리꽃이 피어있고 왼편 골목길로 들어서니 팽나무가 선 놀이터가 자궁 속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데 무지갯빛이다. 무지갯빛에 나는 가슴이 내려앉는다. 돌로 만들어진 벤치 위에 오래 앉아 있는다. 다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오늘 아침 물을 마시는데 창밖의 숲이 내게 쏟아지려 했다. 돌 벤치에 앉아 쏟아지려던 아침 숲을 생각하면서 돌이 되려고 한다. -블랙커피
네덜란드 상인들이 오가던 언덕길을 찾아 걷다 길을 헤매던 기억 한 귀퉁이.
글쓴이는 걷던 가운데 이쯤이 이 길 꼭대기가 아닐, 생각하다 바다와 꽃집을 본다. 꽃집 주인에게 음식을 먹겠다고 우겼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라 커피만 마셨다는 날. 그 집 커피의 종류는 단 하나, 블랙 커피. 그런 커피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주인의 여러 겹 쌍꺼풀. 내 것이 아닌 아늑하고 따뜻한 펠트 천의 느낌.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서면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몸 속 붉은 물방울이 따뜻해지는 기분. 그런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해도 이 평범한 길 위의 파랑 생각 한 방울이 낯설지만은 않다.
더치커피 한 잔 내리기 전까지 방울방울 아주 더디게,
망망대해를 건너며 떨어질 듯한 그런 순간, 생각 한 방울.
하나, 또 하나.
둘, 다시 하나.
그 커피 앞에서 다짐하는 얼굴.
내일이면 또 엎는다 하여도, 그다음 또 어푸러진다 하여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서랍처럼 여닫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내 마음이 열리고 닫힌다. 열릴 때는 빛이 보이고 닫힐 때는 쓰라린 암흑이다. 다시는 서랍을 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살다가 어느날 스르륵 열리는 것에 그 사람의 긴 손가락과 서랍의 고리를 자르고 싶다. 랍의 고리를 자르는 일은 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서랍은 고리가 잘려도 열리고 닫힌다. 고리가 잘린 서랍이 열릴 때는 운명 같고 닫힐 때는 피눈물이 난다.
그러기 어려우므로 그러고 싶은 것. 그것이 마음이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십 분밖에 없다. 오 분은 서로 부둥켜안고 오 분은 서로 눈을 바라보는 장면은 사실 목숨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증명 같은 것이다. 그러니 사랑해야 하고, 그러니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 얼굴과 목은 함께 늙어가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우두커니 짧은 문자메시지를 보다가 눈동자의 초점을 잃는다. 길을 잃으려 한다. 서랍이 열리려다 닫히고 조금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 겨울은 이미 갔다. 단지 봄이 오지 않았을 뿐이겠지. 계절에 기대어 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랍을 아무리 당겨보아라. 경계를 지나면 상황은 돌이켜지지 않는다.-핫 코코아
커피 앞에서는 스스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람. 보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저자의 말을 가만 쓰다듬어 본다. 커피를 만든 다음에는 잊지 말고 마셔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다가 결국, 서랍에 못을 쳐버리겠다는 말을 말줄임표로 하는 어느날.
내 서랍을 조용히 열어 본다. 마음이 가난하여 서랍도 가난하다. 그러나 서랍 속에는 무심하고 단단한, 햇빛을 받으면 그러나 바스러질 것 같은 종잇조각. 가끔 휘청이는 글씨. 창밖에 달이 보일 때 즈음, 곱고 어두운 술을 앞에 두거나 검고 밝은 커피를 한 잔 두고 조금씩 써나가던 기록. 나는 도저히 안되던 일. 가늠하기 힘들던 검은 빛. 한 가지도 분명한 것이 없다는 것 하나만 분명한 때. 자정이 다 되어가던 때. 밝은 갈색의 커피를 떠올린다.
커피는 열매 안에 두 개의 생두가 마주보고 있다. 외피를 벗기고 과육을 제거하고 딱딱한 껍질인 파치먼트를 제거하면 미끈미끈한 생두가 마주보고 있다. 과일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연상이 된다. 씨와 껍질을 버리고 과육을 먹는 것이 일반적인 과일 먹는 방법이라면, 커피는 껍질과 과육을 버리고 씨를 건조해 볶아 가루를 내어 물을 부어 먹는 것이다.
과육 안에 생두가 하나만 있을 때가 있는데 달팽이 모양의 동글동글한 것이 귀여워 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이런 생두를 사람들은 '피베리'라고 부른다. 두 개의 생두가 흡수하던 성분을 하나의 생두가 흡수할테니 그 향과 맛은 독특하며 여운이 길다. 나는 향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코에 담고 있는 사람에게 피베리를 볶아준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 다른 커피를 끝없이 볶아주다가 비로소 피베리의 향을 구분할 수 있을 때 피베리를 닿게 한다. 이런 피베리가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세계 커피의 생산량은 감소하게 된다. 그러니 마음껏 볶아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은 몇몇만 있어야 하며 그 몇몇이 내 삶의 전부였으면 한다. -에티오피아 코체르 피베리
열두 가지와 일곱 가지 모두 다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것도 나, 저것도 나. 수많은 내가 모여서 알 수 없는 나를 만든다고 생각했던 그 날, 나는 정확히 덧셈의 방법으로 사람을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가. 불필요한 이것은 빼자. 간을 더 치려던 손도 내려놓자. 먹을 것이 별로 없어 보여도 접시 이대로 내도록 하자. 빌려온 것도, 심지어는 바라던 것조차 내려놓는 뺄셈의 셈법으로 사람을 바라본다. 커피 열매 안에 마주 보고 있었을 하나의 생두도 없는 피베리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다 셈하고 나면 남는 하이얀 것은 더 분명한 무엇일 것이다. 단정한 가을비의 책과 같은 사람일 것 같다. 아주 여름이 되기 직전 가라앉은 저녁, 용윤선의 책은 조용하고 따뜻한 커피를 떠올린다. 줄 수 없거나 받을 수 없어 괴롭다면 그 괴로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답하는 것이라 말하며 커피를 내리는 사람. 굳이 간을 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책. 굳이 읽지 않고 곁에 놓고만 있어도 조용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책. 책이 커피 마시는 시간을 벌어다 주는 책. 간결한 가을비 같지만, 아주 차갑지만도 않은, 혼자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책.
밤이 늦었다. 내가 늦었다.
음악 조금, 책 조금.
결이 고운 목소리도 조금.
색색깔의 글씨는 용윤선의 '울기 좋은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