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베토벤 : 현악 4중주 전곡 [대푸가 포함 8 for 3]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베그 사중주단 (Vegh Quart / NAIVE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Time present and time past
Are both perhaps present in time future
And time future contained in time past.
If all time is eternally present
All time is unredeemable.
What might have been is an abstraction
Remaining a perpetual possibility
Only in a world of speculation.
What might have been and what has been
Point to one end, which is always present.
Footfalls echo in the memory
Down the passage which we did not take
Towards the door we never opened
Into the rose-garden. My words echo
Thus, in your mind.


-T.S.Eliot, from Four quartets.(부분발췌)


 




 야론 질버맨의 영화 '마지막 사중주'의 첫머리를 여는 T.S.Elliot의 시, four quartets. 

 마지막 다음 처음, 처음 다음의 마지막. 시간은 지나가면 현재에 존재하고 미래와 맞물린다. 존재의 그 극단에서, 그렇다면 현재란 어디에 있는 걸까? 공간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그간 구하기 어려웠다는, 헝가리 출신 베그 쿼텟의 70년대 녹음을 듣는다. 베토벤 푸가 전곡을 품고 있는데 오래전 녹음이라 음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음반의 경우에는 그런 아쉬움 없이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20세기 들어 재평가된 베토벤 후기 현악 사중주, 그중에서도 '대푸가'를 듣는다. 




 우연과 필연, 육체와 영혼, 있음과 없음. 한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정언명령.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져온 베토벤의 메모, '그래야만 하는가?-그래야만 한다'. 이 유명한 메모는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인 Grosse Fuge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낱말과 소리, 공기와 바람이 눈앞에서 잠시 빙긋 웃고 지나가는 느낌. 고개를 돌리면 우연히 지나가는 어울리지 않는 음이 바람을 타고 살며시 귀에 닿는 듯하다. 




 귓가에 스치는 음악을 진행하는 단위로 존재하는 시간. 

 먼저 하나의 시간 단위로서 우리 앞에 놓인 무엇. 

 놓여있다가 지나가고 모여서 만드는 단위.

 반복이 모여 이루는 특정한 박자.

 그러는 동안 말 거는 조성.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목소리가 음역과 음색을 달리하여 조성을 이룬다. 그 음은 서로 부딪히거나 스치면서 시간을 이루고 바꾸기도 한다. 

 현악기의 얇은 선과 탄력을 지닌 진동으로서 드러나는 음정. 하나의 음이 다음의 음을 예고하거나 전환을 암시하는 음계. 그리고 그들의 성격으로 드러나는 조성. 이때 음이 하나씩만 울리지 않고 동시에 함께 울리는 것을 화음이라고 한다면, 협화음은 무엇이고 불협화음은 무엇일까? 잠시 호토가 엮은 헤겔의 음악 강의를 참조해 본다. 





...울림이 다를 뿐 아니라 상충되기까지 하는 음이 첨가되기 때문에, 협화와 통일성을 직접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들을 통해서 차이점이 드러나고, 상충되어 부디지기까지 한다. 본질적으로 상충되면서 날카로움과 파괴 같은 것을 꺼리지 않으므로, 이것으로 인해 심오한 음악이 형성된다. 그 이유는 서로 잘 어울리는 음의 조합에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음의 조합이 맞섬으로써 참된 통일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논리학에서 어떤 개념을 주관성으로 전개시킬 때의 예를 보면, 본래의 순수한 주관성은 그에 대립되는 객관성의 존재로 인하여 한층 더 높은 개념으로 격상된다. 

 본시 주관성이란 오로지 이념 그 자체로 보면 단순히 객관성 에 대립되는 것, 즉 객관성에 맞서는 개념이다. 그러나 주관성이 객성과 대립하는 가운데, 그 내부로 잠입하여 객관성을 극복하고 해체시킬 때 참된 주과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대립의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고 그리고 이겨낼 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한층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 숭고한 본질인 것이다. 음악은음악 자체의 내부적인 형식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내용 속의 주관적인 느낌까지도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헤겔이 그의 철학에서 말하는 객관이 실재하는 겉모습, 주관은 예술작품에서 느끼는 인간의 정서와 감정, 작가의 표현하고 느끼는 방법과 감상자의 감상을 뜻했던 것을 돌이켜 본 다음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 대푸가를 들어본다. 어렴풋이나마 느껴지는 주관과 객관이 맞서는 시간의 세계. 주제는 계속 그 모습을 달리하며 변주하고, 이 하나의 대푸가에 변주곡, 소나타, 푸가가 함께 담겨있다. 

 예고 없이 중단되거나 튀어나오는 대립하는 음. 신호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4개 악기가 동시에 맞부딪히기도 한다. 그 불협과 대립의 맞항을 거친 다음 정교하고 경쾌한 끝맺음이 나타난다. 음반 속지의 마지막 악장에 관한 설명을 읽노라면 베토벤의 음악에 관한 고민이 드러난다. 



 

 The last movement is the one tat includes the most gloss. At the top Beethoven wrote :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the difficult decision) and beneath this title included on a star the double musical motif for a question and answer, accompanied by these words Muss es seine?-Es muss seine(Must it be?-It must be). The finale is built upon this double motif. The question and more especially the answer were part of those familiar expressions of Beethoven in which his letters and conversation books abound. In April 1826, a few months before the composition of this Quartet, he had even by way of an avenging jest, composed a canon on Es muss seine to compel a musical amateur to pay up a few pence. It was the theme of that canon that he uses again in the finale, perhaps renewing the jest's original intention, although the development afford to the motif confers upon it much greater significance.

 -Brigitte Massin



 


 이러한 베토벤의 고민을 마주할 때, 연주자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예술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부속물이 아니다. 연주자는 작품에 충실히 원작이 의도하는 바를 읽는 것과 동시에 작곡가의 감정을 읽어내고 자신의 개성을 덧붙이기를 꿈꿀 것이다. 헤겔은 훌륭한 연주자라면 작곡가의 정신세계의 수준까지 도달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남겼다. 깊이를 불어넣고 텍스트처럼 눈앞에 놓은 음표에 생명을 주는 일.  




 하나의 음이 등장하고 여럿이서 반복하고 증폭하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이 지점을 바릴리 쿼텟이 차분하고 풍성하게 펼쳐냈다면 베그 쿼텟은 그 깊이를 좀 더 온건하게 강조하는 느낌이다. 어느 한 부분을 너무 날카롭게 날을 세우거나 건조하게 하지 않고 자만에 빠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주. 원하는 빠르기를 유지하되 느린 부분에 가서는 비브라토로 하여금 재량을 발휘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범위 안에서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는 긴장감. 산도르 베그의 개성이 느껴지는 표현은 베그 쿼텟이 어떻게 음색의 밸런스를 유지하는지를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바릴리, 린지, 부다페스트 등 많은 이가 권하는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중요한 한 부분을 만난 날. 쉼표가 아닌 느낌표로 남는 어떤 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