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클레르 - 필립스 협주곡 녹음 [3CD]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외 작곡, 쿠로 (Marcel Co / Decca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지나간 시간.

 사라진 공간.

 묻는다. 기억을. 

 답한다. 들림을.

 쉼표와, 마침표.

 진동과 흔들림.




 레코딩 음질이 더 좋아지고 연주자들의 기법이 향상되는 요즘 문득 한 시대를 생각한다. 

개성이 더 또렷하고 국경이 높았던 때. 서방 연주자들이 러시아 연주자들을 눈이 휘둥그레 쳐다보며 경청하던 때. 

 어떤 연주자의 기법은 더 섬세하고 가녀렸던 때. 

 음질은 지금보다 열악하고 종종 마이너 레이블에서 녹음하여 지금은 찾기 어려운 음반의 소리가 무지개처럼 펼쳐지던 때.



  지금은 희미해졌으나 듣는 순간 귀를 섬세하게 잡아채는 가느다란 우아함의 미셸 오클레르.

 1960년대와 1950년대의 오래된 음악 소리에 귀를 빼앗긴다.

 멀리 갈 것 없이 이 공간의 연주자 소개를 들추어 본다.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1924년 11월 16일 파리에서 태어나 롤라 보베스코, 미쉘 슈발베, 앙리 테미앙카, 크리스티앙 페라스 등의 명인을 길러낸 쥘 부셰리를 사사하고 1943년 롱-티보 콩쿠르와 1946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탄탄한 기교를 바탕으로 정열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연주해 "바이올린의 가수"로 불렸으나, 전성기에 접어든 1960년대 중반 불의의 교통사고로 왼손을 다치면서 독주자 활동을 접고 후학양성에 힘써 많은 녹음을 남기지 않고, 2005년 6월 세상을 떠났다.



 
 음악이나 책이나, 무언가를 접하는 우리는 진공 속에서 숨 쉬지 않는다. 즉, 진공 상태에서 무언가를 듣지 않는 이상 이러한 연결고리가 조금씩 생겨나는 것이 이제는 유쾌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마도 듣는 이에 따라 이런 고리는 조금씩 헐겁거나 조밀하게 들어차서 어느 순간 거대한 지도를 머릿속에 접었다 펼쳤다 하게 되리라. 나에게는 크리스티앙 페라스의 이름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카라얀 60 박스, 그 오십 번째 음반을 오늘 다시 집어들고 듣노라면 뭐랄까, 그 섬세한 감성과 낭만적인 표정의 고리, 쥘 부셰리. 그리하여 연결하는 미셀 오클레르.



 쥘 부셰리는 미셸 오클레르의 파리 음악원 시절의 스승. 자크 티보 보베스코, 슈발베, 페라스 등의 연주자를 길러냈는데 미셸 오클레르의 연주를 듣노라면 내게는 우아하고 선이 가느다란, 지금은 점차 멀어져 가는 지나간 시간의 어떤 페이지를 돌아보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활이 지배할 수 있을 만큼의 가녀림, 감상에 빠지지 않는 우아함, 때로 들려오는 예상 밖의 직설적인 활 놀림을 이번 에디션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에서 들을 수 있다. 이 곡에 관한 하인츠 베커의 설명을 옮겨본다.



초기에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솔로 부분이 유독 연주하기 어려워 쉽게 공연되지 못했다. 제네바 호수 근처 클라랑에서 협주곡을 쓰던 중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코텍의 제안을 수용해 제 1악장을 다시 썼으며 완전히 새로운 안단테 악장으로 교체해서 나중에 따로 출판했다. 하지만 에밀 소레처럼 요제프 코텍 역시 이 작품을 연주하기를 거부했다. 레오폴드 본 아우어 역시 기술적인 부담을 느끼고 동료 연주자들에게도 이 곡의 "무시무시함"을 경고했다. 결국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산더 브로드스키가 1879년 빈에서 초연을 하는데 동의했다. 이 협주곡에서 차이코프스키는 기존 형식에 메이지 않고 고전적인 협주곡 양식에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 따라서 제1주제의 도입부 모티프는 튜티에서 전개되어 솔로의 등장으로 완전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보통 제1악장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카덴차는 주축이 되어 말 그대로 작품의 중심에서 생동감의 요소가 된다. 제2악장에서 마지막 악장으로 바로 넘어가는 부분은 차이코프스키의 서로 다른 성격의 악장을 한데 엮는 뛰어난 즉흥성을 보여준다. 피날레의 주요 주제의 도입부 모티프는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어지며 베토벤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전개부 느낌의 진행은 마지막 악장의 완전한 주제가 등장하기에 최상의 기초가 된다. 
-하인츠 베커
 


 능숙하고 객관적이며 정서적으로 숭고한 브람스의 흐름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감정의 폭발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듯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작곡가의 다양한 개성이 느껴지는 비등점을 느끼게 하는데, 이번 미셸 오클레르의 필립스 레코딩의 첫 장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가, 세 번째 장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가 사이좋게 함께 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에서는 악단과의 긴장이 팽팽한 직설적인 연주를, 브람스에 가서는 단아하고 조용한 울림을 들려준다. 



 연주자가 활용하는 악기가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다양한 음색과 깊이를 개성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속도의 지점이 지적하는 비등점을 그 개성에 덧붙이고 싶다. 곡에는 메이저, 혹은 마이너로 표기한 조성이 있다. 흔히들 처음 클래식을 접하는 이들이 어려워하는 긴 제목에 곧장 나타난 이정표. 또한, 곡 앞에는 알레그로 몰토, 안단테, 알레그레토 논 트로포 등의 작품 성격을 설명하는 단어가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속도란 무엇인가? 명랑한 알레그로와 느린 아다지오의 성격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느리고 빠른, 명랑하고 슬픈 것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므로 연주자는 작곡가가 뜻했던 정확한 속도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곡 자체에서 자신이 알아낸 자신의 해석을 연주를 통해 드러내야 한다. 연주자의 음악성을, 개성을 알아낸다는 것은 이 정답 없는 흐름을 어떻게 펼쳐나가는지를 들으려 노력한다는 것이 아닐까.


 
 미셸 오클레르는 큰 낙차를 지니지도, 거대한 스케일을 품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만들어내는 무지개의 노랑에서 초록으로 흐르는 연두와 노랑의 얇은 끝처리는 흡사 지금 다가오는 봄처럼 가늘지만 분명하게 맥박한다. 음표를 자신의 머릿속에서 읽었던 그대로 명쾌하게 만드는 단정함이, 긴장과 완급을 나직하게 조율하는 그녀의 바이올린. 듣고 있으면 고전음악 애호가들이 종종 그리워하는 '그 시대'가 궁금해진다. 지네트 느뵈, 아르튀르 그뤼미오, 크리스티앙 페라스, 피에르 아모얄, 오귀스탱 뒤메이로 이어지는 프랑스-벨기에 악파의 그 시대. 지금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지난 세기에는 더욱 또렷했을 당시의 국경의 밤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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