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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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한가운데. 나는 너무 멀리 떠나왔고 어딘가를 늘 다친다. 음악, 뜨거운 차. 적당히 차가운 공기. 책 몇 권. 닿지 않는 마음 끝. 아니, 이런 것이 지금을 설명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 일어난 사건을 지나치게 커다란 의미를 지난 것으로 보고 이미 있어온 무언가를 곧 없어질 무언가로 생각하곤 한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레 교차하는 어느 순간. 1913년, 백 년 전의 그 날을 들여다 보기 전의 나의 마음이었다. 아마 여느 독자들도 그러했으리라. 




 시간은 흐르는 것인데 그것을 종종 잡으려 하거나 나누려는 시도가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는 방법의 하나였다면, 벨 에포크, 세기말, 모더니즘, 현대, 근대, 이런 단어들은 어떻게 해야 손에 잡히는 것일까. 별 하나에 1913년, 별 둘에 1913년의 사람들 이름을 붙인다. 어느 날 나의 손끝에도 현재라는 시간이 무성히 쌓이게 만드는 책. 시간은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어느 시간이 중요하다거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곧 그 순간의 사건이 앞뒤를 연결하며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뜻일게다. 아름다운 작품은 지천으로 널렸다. 아름다운 문장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것도 역시 매한가지다. 그러나 그게 왜 아름답고, 왜 올바르며 왜 의미를 지니는가? 말을 만드는 것은 가장 단순한 작업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 어려운 일이다. 나만 이해 못 한다 하여 알 수 없다고 단정 짓거나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만천하에 떠벌이는 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그리하여 더 알기 위해 들여다 보고 더 이해하기 위해 읽게 되는 역사의 한 페이지. 그렇게 조용 따라가게 되는 오래된 미래. 1913년의 1월부터 12월까지 시간을 사소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찬찬히 들여다 보면 태초에 있던 말과 그다음 생성된 의미가 보인다. 우리가 잡으려 했으나 더러는 놓쳤던 것, 우리가 상상했으나 더러는 실현했던 것이 백 년 전 일 년 열두 달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왜 하필 1913년인가. 저자 서문이 없어 저자 서문 대신 출판사 책 소개를 들여다보면, 1913년은 19세기의 끝과 20세기의 시작을 동시에 알리는 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국주의는 정점으로, 민족주의는 구심점으로, 영토 분쟁이 점조직처럼, 기술 발전은 박차를, 신경과민자들이 넘치는 도시가 꼭짓점에, 모더니즘이 요란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홉스봄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말하는 20세기는 엄밀히 말해 1914년부터 1991년까지이다. 1차 세계대전과 소련 몰락이 그 시작과 끝을 알렸다면, 그 직전, 1913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히틀러와 스탈린은 비엔나 쇤부른 궁전을 자주 산책했다. 아마 슬쩍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카프카는 그 소심해 미쳐버릴 지경인 오락가락 연애편지에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다. 키르히너는 포츠담 광장에서 창녀들을 그리느라 바쁘다. 모나리자는 도난당했고 뒤샹의 '계단을 내오는 누드'는 아머리 쇼의 간판 그림이 되었다. 뒤샹 형제는 미국에서의 명성 소식을 듣지 못하고 뇌이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한다. 카프카는 작년 12월에 보낸 '관찰' 이라는 책에 펠리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 속을 태우다가 몇 달 뒤 펠리체 바우어에게 청혼 편지를 급행으로 보내고, 예술은 추상을 향해 치닫는다. 뮌헨의 칸딘스키, 파리의 들로네, 러시아의 말레비치, 네덜란드의 몬드리안. 그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현실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 미래주의는 러시아 지방을 떠돌고 코코슈카는 알마에게 미쳐버렸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현대 산업건축 예술의 발전'을 독일공예연맹 연감에 발표한다. 잠시 그로피우스의 말을 옮겨보자면 이러하다.



 "산업의 모국인 아메리카에서, 독일 최고의 건축물을 능가하는 낯선 웅장함을 지닌 걸작 건축물들이 생겨났다. 그 건축물들은 어청난 설득력으로 관찰자에게 건물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시키는 확실한 건축적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다르게 말해보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나왔다. 버지니아 울프의 출항이 어렵게 빛을 본다. 사실 아내와의 성교까지 다이어리에 기록한 특성 가득한 남자 무질은 '특성없는 남자'를 낸다. 아나톨 프랑스는 '인생은 짧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너무 길다.'라고 말한다. 마르셀 뒤샹의 자전거 바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파리와 모스크바에서 선보인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객석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등장한다. 코코 샤넬의 모자 가게가 있었고 프라다의 첫 매장이 이때부터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사건의 나열, 우연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주치는 어떤 인물. 이것은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 가장 흔히 하는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서로의 학력, 거주지, 하다못해 여행지라도 들추어 보며 우연히 만났을지도 모르는 어떤 상황을 유추해 보는 일. 1913년은 모든 것이 바뀌는 해였다. 그전까지 몸에 맞은 옷처럼 느껴지던 역사에서 인간이 분리되었다. 그전까지 통제하고 구속하고 속박했던 모든 전통의 권위, 그 틀이 허물어지던 해. 그 모든 안절부절과 신경쇠약과 신경과민은 그러한 자유로움에서 온 것. 개인과 사회, 관계와 변형, 개인과 개인의 영속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해. 한마디로 융의 프로이트에 대한 친부살해와도 같은 일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난 것이다.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을 통해,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통해.




5월 29일 저녁에 모인 파리 관객은 구 유럽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교양있는 관객이었다. 특별석에 채권자를 피해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도망쳐 온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특별석에는 클로드 드뷔시가 앉아 있었다. 코코 샤넬은 1층객석에 앉아 있고 마르셀 뒤샹도 마찬가지다. 뒤샹은 나중에, 이날 저녁의 "아우성과 날카로운 부르짖음"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고대의 근원적인 힘을 무대로 불러냈다. 이미 표현주의 예술의 모범이 된 아프리카인과 오세아니아인의 원시성이 이제 문명의 중심, 다시 말해 샹젤리제 극장에서도 약동하는 생명으로 깨어났다. 

 -책 속에서(5월)




그러나 그렇다 하여 1913년의 사람들이 르네상스 인간처럼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까? 오히려 반대가 아니었던가? 과도기의 비엔나는 신경쇠약의 도시였음이 분명하다. 에곤 실레의 집도의와도 같은 여인 누드, 코코슈카의 침대 크기 화폭, 쇤베르크의 뺨따귀 음악회. 음색이 날카롭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뺨을 맞은 쇤베르크도, 알마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코코슈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누드를 그리던 에곤 실레도 아마도 융이 프로이트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 앞머리의 테두리 내에서 움직인 것일 것이다. 



 "제자들을 환자 다루듯 하는 교수님의 태도는 잘못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교수님은 늘 저 높은 곳에서 아버지처럼 품위있게 앉아 계십니다. 오로지 복종만 하느라 그 누구도 감히 예언자의 수염을 잡아당길 엄두도 못내죠. "


융은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도 말한다. "저는 사적인 인간관계를 끊자는 교수님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인지는 당신 스스로가 가장 잘 아시게 될 겁니다. 나머지는 침묵입니다."



 침묵 서약으로 시작된 절교, 서로의 방법론을 버리게 된 두 사람.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에는 자기파괴의 계기가 포함되어 있음을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설명한 바 있다. 원시 부족 사회의 친부살해. 자신이 죽인 아버지와 같은 가면을 쓰기. 이것은 그 전에 프로이트가 내린 것이 아닌가. 역사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통해, 자신이 내린 정의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의미를 가진다. 전과는 달리 어떤 시대 양식도 만들어내지 않는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 우리가 쉽사리 찾았던 일관성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단 하나 발견되는 지속적인 성질은 바로 작용과 반작용일 것이다. 서양미술사의 잰슨이 지적했듯이 다양한 '주의'는 물결이 퍼지듯 국가적, 인종적, 연대기적 경계를 허물어뜨렸고, 어떤 지역에서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1913년, 국가의 개념이 허물어지고 국가 대립항이 아닌 도시 대립항, 아니, 그보다는 개인의 산발적인 사건과 개별적인 작품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주의를 살펴보자면 심증은 물증을 얻기까지 한다. 잠시 책 밖으로 눈을 돌려, 잰슨의 서양미술사 한 단락을 들여다보면 역시 이런 부분이 보인다. 



 이런 주의 들은 끝없는 변화 속에서 서로 경쟁하거나 뒤섞이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근대의 미술에 대한 리의 분석은 국가 개념보다는 양식 개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로지 이런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지역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대 미술 역시 근대 과학처럼 국제적인 움직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잰슨, 서양미술사.




 이즈음 되면, 저자가 왜 한 가지 분야가 아닌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1913년의 풍경을 이렇게도 사적으로, 방만하게 보일 정도로, 가십까지 검증하고 때로는 추측도 과감히 옮기며 그려냈는지를 알 수 있다.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부분 부분, 그 조각 조각을 쭉 훑고 나면 전체가 보인다. 따로 떼어내서 한 가지만 보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어떤 그림, 어떤 시, 어떤 소설, 어떤 개론서, 어떤 조각, 어떤 기사, 어떤 건축, 어떤 무엇. 무형의 무엇과 유형의 무엇. 사람의 생각이 빚어내는 복잡함. 이 모든 것의 전체를 조망하고 부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호오의 기준만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1913년이라는 부분을 떼어내어 조망했지만 읽고 나면 저자가 보여주고자 한 맥락과 전체 역사 속에서 1913년이 드러내는 의미가 만져진다. 부분을 통해 흐르는 전체.





 그 가로 세로직조된 사건과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서서히 일어나고 변화를 겪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수많은 가정법이 있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결국, 사람이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린 일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소비하면서. 어떤 것을 이야기하거나 떠올리면서. 이 속에서 사람이 빚어낸 1913년의 자유, 역동성. 모더니즘은 예술가로 하여금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고 그에 따른 정의를 내리게 했다. 강렬한 도전의식, 리얼리티의 구조에 중심을 둔 추상주의의 관점. 미래에 대한 가능성, 직관과 양식, 모방과 재창조. 죽지 않은 과거, 오래된 미래. 머지 않았던 시간. 우리가 현재라 부르는 시점의 시작. 우리와 비슷한 우울, 우리와 비슷한 신경과민, 우리와 비슷한 강박. 지금 우리가 겪는 시간은 결국, 그때로부터 온 것이었다. 서로 무관한 사건과 상황의 입체적인 몽타주가 손끝에 닿을 듯 만져진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보이는 것인 1913년, 만져지는 것은 2013년. 아마 백 년 뒤에도 이러한 기획이 역사로 나타나겠지.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역사이며 조심해야 할 것은 부분만 따로 떼어 자신만의 기준으로 바라본 것을 전체라 우기는 일일 것이다. 

 

 




 "아주 새로운 안무와 음악. 완전히 새로운 비전, 처음 보는 것. 마음을 사로잡는 것. 그럴듯한 어떤 것이 갑자기 내 눈앞에 있었다. 예술이 아니면서 동시에 예술인 새로운 종류의 야만성이다. 모든 형식을 파괴하고, 혼돈에서 갑자기 새로운 형식이 나타난다." -캐슬러,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관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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