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여행 - 모로코, 프랑스, 스페인 스케치 여행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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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행의 현실이 우리가 기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하다. 물론 비관주의자들은 현실이 반드시 실망스럽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단 현실은 기대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진실에 좀더 가까울 수 있고, 또 좀더 보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 내가 상상한 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말에 놀라기 전에, 그동안 내가 무엇을 상상했는지 먼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이 섬에 대한 나의 생각은 광고 팸플릿과 비행 시간표를 읽는 동안에 짜맞추어진 세 가지 고정된 이미지의 주위만 맴돌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특별할 것이 없는 이야기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일상의 이미지를 한 어촌에 살던 작달막한 거북의 기록으로 만들던 작가. 사막, 하렘, 현대 산업화의 흔적 사이로 스민 서사시를 만드는 그래픽 노블의 크레이그 톰슨이 '만화가의 여행'으로 펜 끝으로 여닫은 자신의 여행 일기를 공개한다. '만화가의 여행'은 그 책의 첫 장, 마지막 장에서 여행 일기를 쓰는 동안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눈과 펜을 사용했다는 것을 밝힌다. 단 두 가지의 예외는 그가 만난 이들의 옛날 사진을 활용한 두 컷이니, 여행하는 자의 기록 수단에 따른 다른 이야기가 슬며시 엿보이는 책인 것이다.




2004년 3월 5일부터 5월 14일까지, 유럽, 모로코. 엄마와 떨어져 앉은 아이에게 좌석을 바꿔준 답례로 항공사에서 제공한 샴페인을 누구와 함께 마실까 생각하며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 혹은 낯익은 얼굴이 주는 안정감. 덧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빵, 버터, 꿀, 그리고 캐러멜 차로 만든 아침 앞에서 그가 아는 간단한 프랑스어로 완벽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만화 가게에서 여는 사인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속삭속삭 걸치는 것은 그의 펜촉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바람이 머리카락과 귓등을 스쳐 코끝을 지나갈 때, 조금 차갑거나 뜨거운 공기가 입술에 닿을 때. 낯선 곳에서 만나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 마치 영화 니키타 같다고 그가 생각한 광경은 그의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와 만난 낯선 현실의 결과였다. 전혀 상관없는 두 점이 만날 때 열리는 풍경. 비밀 조직에 킬러로 양성되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파리에서 열리는 사인회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 출판사 카스테르만에서 나온 직원이 안내해준 아파트, 휴대전화 등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다른 것을 한 점으로 연결하는 여행자의 시선은 아직도 생생하고 활기차다. 지치지 않은 여행자의 들뜬 공기. 나중에 지칠 것을 예상치 못하는 사람의 홍조.




낯선 풍경을 만날 때 남기는 사진, 기록, 메모, 영수증. 혹은 핸드폰 문자, 현지에서 얻은 기념품. 크레이그 톰이 종종 여행에서 주목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이기도 하다.
낯선 풍경을 감싸는 나뭇가지, 커다란 나무. 더 거대한 건축물. 그 속에서 어떤 이가 앉아 그림 그리는 모습을 역시 자신의 스케치북에 남긴다.




3월의 모로코. 크레이그 톰슨의 모로코는 온통 검정과 흰색의 세계였다. 건조한 공기. 오후 다섯 시의 기도문 낭독. 서쪽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그가 살피는 북쪽의 제마엘프나 광장은 혼돈 상태의 커다란 고래 뱃속 같은 곳. 사람들이 파스티야를 먹고 어스름 밖에서 등불을 걸쳤다. 여행자의 등 뒤에서 뭔가를 슬쩍 하는 꼬마 아이가 있고 술잔을 기울이는 남자들, 뭔가를 요리하는 여자들이 있다. 그는 비록 자신이 너무 지쳐 살펴보기 커녕 식사도 겨우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을 남기는 열의가 수증기처럼 퍼져있음이 느껴진다.




동그랗게 몸을 말거나 무심하게 어딘가에 기대어 자는 고양이. 뭔가를 씹어먹는 노새. 여성을 그리기는 금지되어있었고 남자는 거절했으며 아이들은 돈을 달라고 했다.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는 슬쩍 그리고 찰칵으로 끝나는 카메라가 더 편했을 수도 있으나 대신 그는 고양이, 사람들의 뒷모습, 풍경, 궁전의 문양, 소화제 겸 설사약의 여행을 그린다. 이 개인적인 시선을 만드는 펜촉이 나는 늘 궁금했다. 무심하거나 개인적이어서 이타적인 행위. 나로서는 발돋움 해도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라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내가 그 펜촉을 이해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마조히스트가 사디스트를 알아볼 수는 있을지라도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과 같이, 소리와 빛이 다르듯이, 가는 지점이 같을지라도 가는 방법이 다른 지도를 크레이그 톰슨은 펼쳐 보인다. 어떠했다고 말하면서(그래픽 노블이라니까) 이런 것이다, 라고 그려 보인다.





낙타, 모래, 사막의 밤, 여성의 다양한 옷차림, 흐릿해져 가는 시야,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 어른거릴 때. 잠시 다른 여행자의 기록을 머릿속에서 들추어 본다. 박완서는 미국 여행 도중 몸이 아플 때 그 말을 한국말로 하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다. 들큰하게, 눅진하게, 싸아하게, 이런 소리 같은 단어를 그릴 때 여행자는 집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의 조야한 차이와 당연한 귀결. 무엇을 말해도 구태의연해지는 순간. 크레이그 톰슨의 여행은 이러한 순간을 서서히 드러낸다. 낙타를 보거나 사막을 건너기. 친구들을 그리워함. 평화와 위안을 찾고 풍경에도 놀라지 않고 익숙한 기억의 카펫을 펼쳐보기도 한다. 그러다 자신의 영웅 레너드 코헨이 묵었다는 호텔을 찾아 호화롭고 평안한 개인적 랜드마크를 찾아낸다. 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심사를 열없이, 조금은 계면쩍다는 듯이 그려내도 이상스럽지 않은 것은 그가 순전히 여행자라는 이유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거라 생각한다. 아, 이러한 말조차 오히려 사람을 너무 대단한 존재로 본다는 뜻일지도.





그러다 그가 돌아와 그리는 아르장티에의 샬레.





여행자의 전환된 흐름. 물결이 줄기를 바꿀 때의 유쾌한 소리. 놀라움, 피곤함, 지침, 놀라움, 피곤함, 지침. 이 사이를 조금씩 오갈 때 쉼표를 찍는 것은 마치 도서관 서고의 장서 표를 구경하는 일과 같다. 자신에게 익숙한 분류기호를 발견할 때의 관심, 익숙하지 않은 숫자 앞에서의 경계. 여행자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만 파고들면 얼마나 구태의연한 것이던가. 결국, 모든 것은 사람, 음식, 잠자리, 건물, 자연환경, 풍경, 상점, 사고파는 물건, 음악 등등이다. 모든 같음을 모든 다름으로 환산하는데,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붉은색 혹은 푸른색으로 분류한다. 이 색상의 명도와 채도는 순전히 여행자 자신의 머릿속 어느 작은 구름에서 시작하여 혀끝에서, 손끝에서 완성된다. 다녀와서 연인의 손을 잡을 수도, 손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수도 있다. 펜으로 남겼던 흔적을 어루만질 수도 있고 기념품을 생각할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어떤 혀끝 감촉을 다시 느끼겠다는 이유 하나로 훨씬 비싼 가격으로 들어온 음료와 음식을 위장 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그럴 때사물에는 어떤 그림자가 비친다.



아무도 손을 댈 수는 없는,

있는 그대로의 무엇.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것.





마음만 동한다면 찹잘한 감촉을 볼 수도 있으나,

그 열없는 객쩍은 웃음 끝에,

마음을 내는 그 사물만이 사물이 된다는 생각.

또르르 굴러가는 그림자, 똘똘 또아리를 튼 시간.

비추는 그림자를 황홀이 바라보면, 마침내는 어떤 풍경이 펼쳐진다.

크레이그 톰슨이 발견해 나가는 것은 이 무심한 파장과 황홀한 심사이다.



그새 만나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 그는 그가 무척 존경하던 이를 만나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만나는 여자를 그리기도 한다. 옛 여자친구가 보낸 시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수양버들과 비교하는 가지 잘린 플라타너스. 수양버들을 여유로움으로, 플라타너스를 마음아픔으로 치환하는 것은 순전히 그의 심사에 달린 것이니, 이 주관적인 시각을 재미있어할지 미심쩍어할지는 순전히 독자의 마음이다. 그러나 이해와 공감이 다른 것이듯 읽는 내가 절대적으로 옳으며 나의 판단이 전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될 일.



잠자코 크레이그 톰슨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예상외로 이 작가가 비우고 그려내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충실히 기록하고자 했음이 보인다.







책 밖에서 찾은 이미지, 아이엠러브 속의 다른 곳 같은 느낌. 또다른 수평과 수직.




우연히 만난 여자가 있다.
사진에서 수없이 보아온 건축이 보인다.
나는 스페인의 구조 앞에서 내가 이전에 보았던 어지러이 아름다웠던 영화 '아이 엠 러브'를 떠올린다. 색상의 빛나는 조합과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의 수직 수평으로 어우러진 구조. 그 광경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긴장. 그는 그 앞에서 '저녁에는 라우레아노를 다시 만났는데, 우연히도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밤하늘과 뚜렷이 대조를 이룬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뻔했다. 라우레아노는 말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같은 무언가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살다 보면,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매일 보기 때문이죠.





제발 내가 잊어버리지 않게 해줘.




망각을 거부하는 인간의 마음을 내세우는 크레이그 톰슨은 이 여행일기의 뒷장에서 고백하듯 행복할 때 무언가를 더 잘 그리는 사람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을 열고, 옛날에 먹었던 오렌지의 신맛과 그 포들한 속살을 떠올리는 사람이다. 이 여러 개의 서랍 중, 이번에 잠시 열었다 닫은 여행 일기을 여닫게 한 손가락은 왜, 무엇 때문에 움직였던 것일까. 좀 계면쩍게도 크레이그 톰슨은 이 여행일기를 마감하게 된 까닭을 이렇게 밝힌다.



내가 이 책을 마무리하는 것은 내가 행복하기 때문일까?
아니, 사실은 훨씬 더 따분하고 한심한 이유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마감이라는 것이다. 나와 게약한 출판사에서는 앞으로 2주 안에 이걸 인쇄해서, 그로부터 2개월 안에 이걸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게다가 출판사에서 내게 요구한 분량은 딱 224페이지였다.



마지막까지 그가 매 순간 마주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비가 내릴 때 유리창에 생기는 진흙탕 길.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창턱. 옷 가방의 화물 표시. 점심으로 먹은 것이 엉킨 뱃속. 여자의 스커트 자락, 먼지로 뒤덮인 모자. 그새 모니터 뒤에 숨은 옛 모습도, 자전거를 타고 있는 새로움도, 결국 크레이그 톰슨 자신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사랑해!'라는 외침 속에 사그라질 뿐,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미래의 독자인 그 자신을 염두에 둔 일기가 꼭 어떤 결론을 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다.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한 무엇을 통해 환원하는 세계의 모습. 그 몸체가 그리 육중하거나 촘촘하지는 않다. 오히려 구멍이 많은 이야기라서 위험한 구석도 있고, 그 위험한 구석에서 비롯되는 매력도 있다. 개인적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글씨와 그림이 빚어내는 구멍과 들쑥날쑥함으로 만드는 개성이 이런 것이다. 결국,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방식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고 생각하느냐는 작가의 몫이 아닌 독자의 몫 아닐까, 하고 약간 능청스레 웃는 펜촉의 소리가 들린다. 이 하루하루 수많은 독자 중의 하나인 내가 보내야 하는 여행의 도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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