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hoto by Reuters



 말문을 연 아이의 단어만큼이나 많은 수식어, 한여름의 폭염과 비만큼 상반된 생각을 여럿에게서 불러오는 작가. 이름이 브랜드 처럼 여겨지는 작가. 작품만큼이나 이름 하나로 주목받는 작가. 그의 단어, 문장, 이야기를 이제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은 작가. 




 평일 낮 대형매장에 독자들이 줄 서서 새로 나온 이 책을 받아들고 돌아갔다. 그보다 먼저 일본에서는 많은 이들이 발매 당일 자정에도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간 전, 제목만 알려졌을 뿐 내용 포함해 모든 것은 비밀에 부쳐졌고 출간 즉시 밤새 책을 읽고 쓴 리뷰가 속속 올라왔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읽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하루에 5700만 부 판매 돌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말하는 전작의 세 배에 달하는 예약 판매량. 이런 수치를 거슬러 올라가면 두 작품이 보인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와 태엽 감는 새. 각각 한국과 영미권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이다. 전자는 한국에서, 후자는 영미권에서. 그런데 작가 연보를 찾아보면, 상실의 시대는 1987년, 태엽 감는 새는 1994년 각각 출간되었다. 상실의 시대의 한국 발매 시기는 1989년인데 10만 부 돌파는 1994년이었다. 베토벤과 니체를 알아가며 밀란 쿤데라를 읽고, 운동권에서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것을 버린 세대에서 재즈와 싱글 몰트 위스키, 미국 문화를 바탕으로 어딘가 층계참에 걸쳐 앉은 세대로 책 읽는 가장 큰 독자층이 바뀌었다는 의미.





 기록. 전언. 집계. 

 무성한 소문에 비해 간결한 이야기, 단단한 뼈대, 인물의 단순한 반응. 

 하루키에 관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기록과 숫자가 있는데, 정작 하루키 작품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져 펼쳐보게 된 책의 뼈대가 꽤 단단했다. 책을 펴자 작가의 이름 뒤에 있던 작품이 얼굴을 내밀었다. '여유롭고 스타일리쉬한, 쿨한 싱글의 일상', 곧 스타일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잠시, 다른 방향에서 본 그의 단어들은 내게는 조금 달랐다. 




 쓰쿠루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끌어앉은 채 침대를 벗어나 파자마 차림으로 부엌에 갔다. 하이다는 벌써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누워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책에 의식을 집중하고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쓰쿠루가 얼굴을 보이자마자 책을 덮은 후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부엌에서 커피와 오믈렛과 토스트를 만들었다. 신선한 커피향이 풍겼다. 밤과 낮을 가르는 향기이다. 두 사람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낮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하이다는 평소처럼 짙게 구운 토스트에 꿀을 살짝 발라 먹었다. -책속에서




 질감. 양감. 촉감. 사람의 손끝과 코끝에서 빚어지는 숨소리. 하루키는 정밀한 시계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름표, 감정과 사건에 가장 간단하게 써서 박음질한 그의 표식. 

 낱말 카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하였는지. 그 '무엇'에 관한 묘사와 설명은 실제로 해보면 예상보다 어려운 것인데 하루키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대상에 저러한 양감을 불어넣는다. 주인공 쓰쿠루가 무척 친한 친구들에게서 버려진 다음, 쓰쿠루에 관해서는 이러한 묘사를 한다.




 죽음의 문턱을 헤매던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쓰쿠루는 몸무게가 7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비교적 통통한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마른 탓에 가느다란 체형이 되고 말았다. 허리띠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바지를 작은 사이즈로 새로 사야 했다. 벌거벗고 서면 갈비뼈가 불거져 나와 싸구려 새장처럼 보였다. 자세가 눈에 띄게 나빠졌고, 어깨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살이 빠진 두 다리는 가느다란 물새 다리 같았다.-책속에서




 그러니까 쓰쿠루를 독자인 내가 바라볼 때의 인상은 '싸구려 새장'이되 '죽음의 문턱을 헤맨 뒤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그가 만나는 여자 사라에 관한 묘사와 질적으로 다르다. 초반 사라의 얼굴 묘사-광대뼈와 입에 관한 부분을 지나면 나타나는 부분. 사라가 기분 좋게 돈을 치렀음직한 고급스럽고 자연스러운 옷. 그녀가 쓰쿠루에게 건네주는 싱가폴 면세점에서 산 입생 로랑의 넥타이. 자신이 하고 있던 넥타이를 풀고 사라가 준 새 넥타이를 하며 쓰쿠루는 자신이 하던 넥타이가 생각보다 허름해 보였고, 저도 모르게 매일 반복하는 부적절한 습관처럼 보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물, 상표, 묘사는 하루키의 작품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쓰쿠루도, 사라도 알 수 없다. 다루고자 하는 실존적 본질은 인물마다 각각 다른 테마에서 비롯된다. 누군가가 다른 이에 관해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은 곧 그 자신의 관점을 철저히 반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어떠한 대상도 전부 다 알 수는 없으므로. 

 아주 다른 생김에 관해 일러주는 단어. 그것이 다르다 하여 판에 박혔다든지 생동감이 덜하지는 않다. 인물에 따라 부여되는 생동감은 각각 다른 테마와 종류의 것이니까. 쓰루쿠에 관해 갈비뼈까지 묘사하는 빼기, 사라에 관해 옷자락을 묘사하는 더하기. 그러므로 하루키가 인물에게 다가가는 지점은 그 특정 낱말들까지이다. 마치 이정표와도 같이.


 


 그렇다면 왜 그는 굳이 이런 이정표를 심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하루키가 이 작품 속에서 만든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즉, 세계에 관한 인식이 먼저 필요한 작업이다. 

 

 

 

 신비함. 수수께끼. 알 수 없는 것. 장르 소설이 아님에도 추리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미스터리를 그의 스토리텔링에 사용한다. 하루키가 바라본 세계는 의문이 제기되고 그에 따른 행동이 있는 세계다. 바로 여기에 하루키의 특징이 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성실하게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쓰지 않았으나 인간과 인간의 유대에 관심과 공감을 갖고 있다. ...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것은 성장 이야기인데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상처도 크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관계에서 오는 기대와 배반. 절망과 상처.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소설 첫 문장




 상태 후 드러나는 정황. 그 뒤 그가 죽음만을 생각하게 된 계기.

 그러나 그 뒤 도사린 더 큰 궁금증.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 네 명이 다자키 쓰쿠루와 절교하는데 이유를 모르는 상황.

 죽을 듯 괴로워한 다음 그는 수영장에서 만난 하이다와 무척 친한 친구가 된다. 어느 밤, 하이다는 그의 부친이 겪은 의문을 사건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 쓰쿠루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쓰쿠루가 마침내는 역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사라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데, 사라는 마침 그에게 묻는다. '왜' 그 네 명이 그렇게 했는지를.

 

 

 



photo by Curtis Brown-literary and talent agency-http://www.curtisbrown.co.uk


 

 

 

 

  매듭 없이는 끈을 묶을 수 없다는 자명한 이치. 수수께끼는 풀려야 하므로 수수께끼이다.  마침내 쓰루쿠는 그들을 만나 대답을 듣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소설 속에는 수수께끼가 그대로 있다. 그가 얻은 것은 대답이 아니라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나누는 바람 소리. 




 쓰쿠루의 친구들은 저마다 색채를 띤 사람들이다. 일본어 이름의 한자 속에 깃든 색채. 

 유일하게 이름 속 색채가 아닌 '만들다'는 의미를 지닌 쓰쿠루가 집중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해나가는 일은 얼핏 보면 나아가는 일 같지만 실은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수영, 역 설계, 사라를 만나는 일.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쓰쿠루가 만드는 것이 역이라는 점이다. 도착했다 떠나고 만났다 헤어지는 공간. 더하기와 빼기가 이루어지는 공간.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어떤 계단 한 칸에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얻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판단해야 할 때가 있다. 막 성장하려는 쓰쿠루는 이유를 모르고 단념하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게 된 쓰쿠루는 의외의 결단력을 보여준다. 그는 답을 찾아내고 더해야 할 것과 빼야 할 것을 나눔으로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아마도 이 소설이 많은 독자에게 밝은, 희망 비슷한 감정을 안겨다 주었다면 아마 그것은 이 층계참에서 하루키가 슬쩍 독자에게 쥐어 주는 것이리라. 


 

 


 그러나 앞서 말한 이 미스터리의 여운은 뜻밖에 오래 그림자를 드리운다. 뒤돌아 보면 안 된다고, 뒤돌아 보면 소금 기둥이나 돌이 된다고 신화와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일은 뒤돌아 보아야 한다. 훌훌 털어내기 위해서. 끈을 묶고 스스로 정직하게 바라보기 위해서. 그럼에도 미스터리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소설의 풀밭 곳곳에 있는 잔디와 엉겅퀴는 쓰쿠오의 알 수 없는 꿈으로, 하이다의 부친이 남긴 이야기로, 시로가 남긴 사건과 알 수 없는 결과로 여전히 그대로 있다. 질문과 답, 행위와 결과. 이것이 늘 짝으로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간결해질까? 신비롭기까지 한 사람의 시간은 인과와 논리의 뒷걸음질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관계와 세계에 관한 조명을 하루키가 시도했는데, 그의 유명세와 인세, 몇몇 작품에 관한 프리즘으로만 이 작품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행위, 결정, 모험, 연결. 이런 것이야말로 소설의 핵심 중 몇몇 부분일 것이다. 저마다 연결되어 소설을 구성하는 일부. 작품 속 하루키의 자아가 쓰쿠오라면, 그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끝까지 탐구한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이 따돌려지는 상황을 감내하려다 보다 쉽게 섞이는 것으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세상과 좀 더 쉽게 섞이는 도취가 아닐까?

 역설적으로 이 작품 속 어느 누구도 강렬한 도취를 체험하지는 않지만 다자키 쓰쿠오만은, 현실이 아닌 그의 꿈속에서 강렬한 성행위로 도취를 맛본다. 현실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맹렬한 질투를 경험한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그 질투가 작동하는 것은 작가가 숨겨둔 은밀한 꼬리표 같다. 이 꼬리표를 손에 쥐고, 다음 역을 찾아가는 일이 이제 남았다.



 다자키 쓰쿠오의 순례를 함께하는 독자에게 다자키 쓰쿠오는 곧 천천히 읽어야 할 글귀와도 같다. 다자키 쓰쿠오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입하고 그가 생각하는 땅콩이나 칵테일을 떠올리며 그와 함께 어느 바에 들어갔다가 마침내는 핀란드까지 떠나게 된다. 그런 다음 그가 연어와 허브를 오븐에 함께 구워 레몬을 뿌리고 포테이토 샐러드를 핀란드에서 먹는 부분에서는 마침내 독자 자신의 마음과 쓰쿠오의 상태에 관한 자료를 종합하여 확인에 이른다.

 쓰쿠오가 직접 옛친구들을 만나 들은 답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까지는 활용할 수는 있는 정보이다. 하루키는 답을 듣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그 점이 미스터리를 제시하고 이야기를 꾸려 나가며 독자로 하여금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게 하는 하루키의 힘일 것이다. 

 

 



 그의 힘은 자신이 사용하는 일상의 단어, 여전히 불확실하여 가려진 완전하지 않은 답으로 존재하는 결말에 있다. 세간의 평가처럼, 반하거나 변하는 감성, 혹은 감각적이거나 깔끔해 보이는 특정 사물로 드러나는, 또는 특수 연령층에 어필한다고들 하는 어떤 표현에 관한 판단을 잠시 보류하고, 질문으로 드러난 그의 태도를 들여다본다. 

 

 



 소설 속, 나타났던 모든 미스터리에 관한 답이 1:1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어떨까요? 난 모르죠. 그렇지만 아마도 그때 아버지에게는 믿느냐 안 믿느냐 문제가 아니었을 거에요(118 페이지)."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 법이죠(304 페이지)." 

 "그렇지만 지금은 새벽 4시고 새도 아직 눈을 뜨지 않았어. 내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고. 그러니까 앞으로 사흘만 기다려 줄래?(407 페이지)"  




 하루키는 모든 것이 기계처럼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설정한 알레고리를 통해 드러내 보인다. 어려운 것을 쉬운 것처럼 말하고자 하는 의지는 소설 속 인물들이 특정한 일에 익숙해져 마침내 일상으로 자리 잡곤 하는 부분에서 슬며시 드러난다. 

 

 



 일상의 정밀함 위에 드러나는 단순한 낱말들. 

 그 말 틈을 비집고 흘려보내는 작은 바람. 

 

 

 

 하루키의 소설 속 이정표와 이름표를 따르다 보면 일상 속의 이야기가 보인다. 그 사이 크고 작은 풀리지 않거나 대답하지 않은 상처가 드러난다. 잠시 작가에 관한 세간의 평가와 열기, 뜨겁거나 차가운 무엇을 내려놓고 천천히, 그리고 태연하게 순례에 동참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순례 끝에 되돌아갈 곳은 스스로 얻는 답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때로는 그것은 터널일 수도, 역일 수도, 생각지도 못한 어느 먼 이국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름이 오거나 겨울이 오니까. 우리는 몇 번의 겪지 못한 여름과 이미 겪은 겨울을 먼 미래처럼 바라보고 오래된 과거처럼 잊기도 하니까.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고 잠들었다. 의식을 꼬리에 매달린 빛이 멀어져 가는 마지막 특급 열차처럼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작아지더니 밤 가운데로 빠져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 -책 속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