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Ivan Labanda - Robot Dreams (로봇 드림) (2023)(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Various Artists / Decal - Neon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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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다. 셉템버를 부르자, 로봇 드림을 보자!

X의 이 제목의 포스팅에는 몽글몽글한 그림의 도그와 로봇이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우연히 본 그 트윗으로 이렇게나 구월만 되면 눈물 바가지를 쏟게 된 것이. 이 대사도 없고 나와 상관도 없는 2D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마음이 손끝에서 눈앞에서 미어지듯이...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거칠게 넘어가도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Robot Dreams, 파블로 베르헤르의 2023년 스페인, 프랑스 합작 애니메이션






아마도 1990년대 풍경을 지닌 뉴욕, 혼자 지내던 도그는 로봇을 전화주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센트럴 파크에 가고, 길거리 핫도그를 먹고, 함께 집에 와서 잠들고, 해변에도 가고. 애니메이션의 결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대사는 없고 캐릭터의 양감도 납작하다. 무엇보다도 사소한 것이 가득한 화면. 도그와 로봇이 함께 '충분하다'라고 느낄 때엔 가득차 있던 화면이 로봇의 부재 후에는 그 빈자리를 의도치 않게 드러내는데, 이 모든 화면은 사소함으로 가득하다. 프레임을 아주 크게 잡아 길을 건너는 다른 사람(동물)들, 이 둘과 무관해 보이는 행인들, 길거리의 수정구슬, 지하철, 심지어 나중에 등장하게 될 라스칼이 앞선 장면에서는 둘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데, 이 모든 의도는 무엇일까. 

 이 사소함의 축제는 꼭 우리의 생활과도 같아서 번잡스럽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며 숨쉬듯이 스쳐지나가는 모든 일상을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일상의 디테일과 로봇과 도그의 관계, 만나고 헤어짐, 내 곁을 지나가거나 머무는 모든 사람들을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영리한 선택인가. 가득차거나 텅 비는 화면은 이 둘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다가도 관계의 부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도그가 떠난 뒤 혼자 남은 로봇이 누운 그 막막한 해변이라니. 머물렀던 새들은 머뭇거리다가 너무 커서 먹먹할 지경인 하늘로 떠나고, 이 작품 속에서는 종종 도그와 로봇은 아주아주 작게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 작은 둘이서 길을 걷거나 롤러 스케이트를 탈 때 마다 그 둘을 보는 내 머릿속에서는 로봇과 도그, 둘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만들어졌다가, 그 비율이 너무 크다..라고 느끼는 순간 세상에. 해변에 혼자 누운 로봇과 로봇에게 가려다 저지당하는 도그라니. 그순간 캐릭터는 작고, 네거티브 스페이스는 너무 크다, 라고 분석하는 대신 아. 저 작은 존재가 저기에 저렇게 버려졌다니....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애니메이션이 이렇단 말인가. 9월마다 보면서도 볼때마다 운다. 

 여기에 이 작품의 가장 큰 비밀이 숨어있는데, 보고나면 아무리 기분이 가라앉았더라도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거나 피자를 먹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친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사진첩에서 내가 한참 밥주던 고양이들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또는 9월이 왔으며, 더 기다리면 12월이 올 거란 생각. 그사이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과 슬픈 기일을 챙기기도 하고 단풍길을 걸어야지, 호박파이를 먹고 시나몬 향 가득한 솔방울도 들여놓아야지....이런 생각들. 

 요컨대 이 작품을 보고나면 이상하게도 삶의 온기가 전해져 오는데 역설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 행복한 장면은 초반에 얼마 되지 않는다.나머지는.......헤어지고, 만나려고 하지만 제지당하고, 기다리고 수십번을 상상하지만 찾아갈 수 없고, 심지어는 로봇은 온몸이 분해되기까지 하는데, 그사이 도그는 상심하고 괴로워하고 애쓰다가 경찰에게 끌려가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하는 불행과 절망과 그사이를 파고드는 소소한 일상으로 가득하다. 이 일상이 대체 무엇일까. 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픈데 다 보고나면 행복한걸까. 






 아마 이 잔인한 행복의 상당부분은 2D라서 가능해진 면이 있다. 화면은 너무너무 귀엽고 색상은 선명하다. 인물은 동물과 로봇이며 대사가 없고, 이 귀여운 세계에서 갑자기.





 갑자기 로봇은 해변에 버려지고, 도그가 접근할 수 없고, 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희망은 생겼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둘이 각자의 삶을 사는 것. 이 모든 것이 대사 없이, 별도의 멜로드라마 같은 초점 없이, 오히려 인물과 공간을 채운 다른 존재들과 함께 보여준다. 

 두 화면이 분할되는 느낌에서 점차적으로 넓은 화면 속에서 둘이 잠시 같이 있었구나, 정도로 변하기까지, 영화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이 그 영화의 내러티브까지 만들 수 있다는 기술적, 미학적 부분을 일깨워준다. 기술 자체가 이야기의 문법이 된 셈인데, 결국, 원작의 그림체와 무관하게(원작과 상당부분 유사함) 실사화와 3D까지 가능한 이 시점에 부러 감독이 선택한  2D는 스타일이 아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된 것이다. 




 


 이 방식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유달리 이 애니메이션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앞서 말한 프레임 사용 방식이나 네거티브 스페이스 활용 정도가 아닌.....그저 인물들이 화면 속에 들어왔다 나가버리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도그는 이 관계에 대해 그 무엇도 배우지 않는다.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다. 

 만약 실사 영화였다면 대사가 생기고, 감정은 좀 더 개인적인 것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인물이 클로즈업되고, 관계의 이름이 가족, 친구, 연인 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는 인물이 사건을 겪은 후 무언가를 배우거나, 머물거나, 혹은 앞으로 나아가는 등의 장면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덕 같은 인물은 프레임 속으로 들어왔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유없이 사라지고(엽서 한 장 달랑!), 얄미워죽겠는 개미핥기 커플은 끝까지 짜증나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심지어는 로봇 곁에 머물던 아기새마저 날아가 버리는데 이 모든 것을, 과자봉지 열기 같은 일상이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 과자봉지! 질소충전 과자봉지를 뜯는 도그의 모습을 화면에서 꽤 여러번 보는데 볼 때마다 아....저거 로봇이 뜯어줬는데. 싶다가 나중에는 버스 안에서 혼자 그것을 뜯으려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있었는데, 없구나. 그런데 하필이면 이 관계가 끊어진 것은 누가 잘못을 해서가 아닌(엄밀히 말하면 도그 네 잘못이다......), 사고였고, 상황이 꼬였고, 각자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쯤되면 생각하게 된다. 저 관계를, 짧은 행복한 순간 이후 나머지는 잔인하기까지 하면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저 관계. 저 관계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그와 로봇을 떠올리다 보면, 많은 것을 함께 나누다가 어쩌다 보니 헤어진 관계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누구 한 사람이 큰 잘못을 했다거나 사랑이 식어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도그와 로봇, 이 둘을 보자면 둘 사이에는 분명 사랑이라 부를만한 감정이 있다. 꼭 둘의 관계가 무엇인지의 서술은 이름 붙일 필요가 없다. 그저 둘의 삶에는 한때 서로가 서로의 중심이었다가, 서로가 함께일 때만 가능해지는 셉텝버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아, 마침내 영화의 말미를 보면 알게 된다. 

 대체 로봇과 도그, 사는 것이 왜 저리도 힘든지! 하며 보다가도 말미를 보면 이 몽글몽글함을 타고 다른 감각이 전해져 온다. 막상 이 둘이 사랑하다 헤어져서 슬펐다, 라고 본다면 그것은 감정의 시간적 구조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각자가 그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문법을 발견해 나가니까. 

 

 헤어지는 것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성공적인 관게였기에 이별이 힘들었던 사건. 어쩌면 너를 잃어버렸다는 감각이 지나가고 나서 너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감각으로 끝맺음. 이처럼 가치 계산이 명확한 작품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행복한 시간은 그것 대로 진짜였고, 끝난 것은 끝난 대로 진짜이다.






 로봇과 도그가 각자 반짝거리는 것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세계. 






 그래서, 구월이다! 로봇 드림을 보자!





덧붙이기 1
'9월이다 셉템버를 듣자 로봇드림을 보자'-문장의 출처는 구트현엑의 facingthettruth 님의 계정임.
 이와 별개로 `9월이다, 셉템버를 부르자`는 9월이면 돌아오는 earth wind and fire 팬들의 meme.

덧붙이기 2
트레일러 마지막에 이르면 로봇이 부르는 셉템버.

덧붙이기 3
정확히 말하자면 도그가 로봇과 헤어진 후 한가지 배운 것은 있지만(오일 바르는 대목), 이를테면 관계를 반추한 후 확장시키거나 돌파하는 식의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없다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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